평어와 별칭
재미난 학교에서의 나는 ‘동그리’. 동그리로 불린다.
처음 별칭을 고민할 때, 아이가 “엄마는 빼락이가 어때?”라고 제안했다.
“엥? 빼락이라고! 내가 언제 빼락 빼락 소리를 질렀어? 빼락이라니 너무하지 않아?”
“엄마, 엄마만 모르는구나, 엄마 말할 때 빼락 빼락 거렸었어.”
“내가? 그래도 사람들이 이름 대신 부르는 건데, 빼락이’를 별칭으로 쓸 수는 없잖아?”
“치, 빼락이가 딱인데......”
부끄럽다. 뾰족한 말과 생각으로 다른 사람이 다칠까 봐, 나를 해칠까 봐 며칠을 고민한 끝에 부르기 쉽고, 동글동글 한 귀여운 동그라미가 되고 싶어서, ‘동그리’로 정했다.
별칭은 사람들 간의 거리를 좁히고, 더 자유롭고, 친근하고 편안한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재미난 학교에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호랑이, 연두, 백호, 해피, 하늬, 나비, 아뜰, 중도, 키키라는 별칭을 쓰는 교사들과 재미난 별칭을 가진 부모들이 있다.
00 엄마, 00 아빠 대신 쪼코, 완자, 늘보, 호린, 달팽이, 치타로 부를 때 아이의 표정은 재미있고, 부드러워진다. 각자가 가진 독특한 별칭은 이곳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재미난 학교에서는 평어도 사용한다. 평어? 평어가 정확히 무슨 말이지? 반말인가? 그냥 우리가 쓰는 반말은 아닌 것 같고, 예의 바른 반말인가? 알 듯 모를 듯 생소한 말이었다.
재미난 학교에서 평어와 별칭을 쓰는 이유는, 아이들과 어른들의 평등한 관계를 위한 하나의 장치라고 한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이끌거나 아이들에게 요구할 수 없도록, 아이들과 ‘같이 이야기하고 같이 결정할 수 있는’ 체계를 구성하기 위한 것이다.
재미난 학교와 재미난 카페를 드나들며, 평어와 별칭을 쓰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평어와 별칭을 통해, 아이들은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존댓말이 위계질서를 따르는 엄격한 말이라면, 평어는 수평적 소통을 위한 온화한 말이고, 반말은 상대방을 얕잡아보는 부정적인 느낌을 줄 수 있지만, 평어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말이다.
어린이집에서부터 초등학교 9년 정도의 공교육을 받은 아이는, 아직 교사에게 평어를 쓰지 못하고 있다. 평어가 어색해서일까? 그렇게 교육을 받아서일까? 아이의 성격 탓일까?
(그나마 ‘연두’를 ‘연두 선생님’이라 부르지 않고, ‘연두’라고 부르는 것만으로도 큰 발전이다.)
재미난 학교는 단순한 학교가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다.
가끔 나를 엄마 대신, ‘동그리’라고 부르는 아이의 얼굴에서 미소를 본다. (우리 학교에는 ‘미소’도 있다.) 아이는 며칠 전 학부모회에서 만들어 준 ‘가족사진 포스터’를 냉장고 앞에 붙여놓고는, “아! 이 사람이 oo이구나!, oo의 별칭이 너무 웃겨!”라며 한참을 바라보다가 방으로 들어간다.
별칭 하나만으로도 대화가 늘어났다.
다른 아이들의 부모들에게도 편하게 별칭을 부르며, 다가가는 아이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예의 바른 반말로 나누는 대화 평어. 나이를 걷어낸 대화 평어. 아이가 평어의 세계에 빠져들어 새로운 경험을 얻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