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했다. 잘했다.
삼각산재미난 학교에 보내게 되면서 걱정했던 부분은 ‘일반학교에서 6년을 보낸 아이가 자유로운 분위기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개인 프로젝트를 결정하고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등이었다.
삼각산재미난 학교의 중등 과정은 1~3학년 연령 통합반으로 운영된다. 각각 다른 학년들이 같은 공간에서 지내기 때문에, 이는 일반 중학교와 확연히 다른 점이다. 통합반 수업을 하면 형들과도 지내게 되는데, 같은 또래 집단에서 유발되는 경쟁심이나 소외감을 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낯을 많이 가리는 아이가 친구들뿐만 아니라, 형들과도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염려가 되었는데, 다행히 같은 취향의 만화를 좋아하는 형을 만났고, 만화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씩 친해졌다.
그 형은 취미로 도마뱀을 키우고 있었고, 도마뱀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아이도 형과 이야기를 나누며, 도마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용돈을 모아 도마뱀을 분양받은 아이는 도마뱀이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며, 직접 비바리움까지 만들고 매일 정성스럽게 돌봐주고 있다.
긴장감이 높은 아이는 변화가 있거나 새로운 걸 할 때마다 긴장을 많이 한다.
발표하는 날이 정해지면 며칠 전부터 걱정을 하며 잘못할 것 같다고 긴장했다. 3월 1일 열 음식에서 신입생 가족들은 각자 소개를 해야 했는데, 발표를 어떻게 하나 걱정하던 아이는 가족들과 같이 발표를 한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아이가 힘들어하는 순간을 곁에서 함께 해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걱정하고, 싫어하는 발표를 등업식 날 줌으로 하게 되었을 때, 학교에 안 간다고 할까 봐 조마조마했었던 나의 걱정과 달리, 아이는 연습도 많이 하고 친구들, 형들에게 발표 잘하는 팁도 전수받으며 교사의 격려와 지도를 받으며 떨면서도 해내었다. 줌으로 본 아이의 긴장한 모습에 덩달아 긴장한 나는, 발표가 끝난 후 한결 편안해진 아이의 표정에 안도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는 “해보니 별거 아니네. 그래도 발표는 하기 싫어. 나만 떨리는 줄 알았는데 다른 친구도 떨렸었대.”라며 홀가분한 표정으로, 배가 고프다고 했다.
‘그래, 집에 가서 맛있는 거 먹자. 애썼다. 우리 천천히 하나씩 다시 해보자.’
이제 좀 내 마음이 편해지고 있다는 신호일까? ‘어떻게든 되겠지, 뭐.’라는 생각이 들게 된 건 재미난 학교를 다니게 된 후부터이다. 아이는 아프지 않은 이상 빠지지 않고 다녔던 영어와 수학 학원을 더 이상 다니지 않는다.
디지털 드로잉 수업(일주일에 한 번씩)만 다니고 있다. 드로잉 수업은 개인 프로젝트로 친구들 얼굴 그려주기를 선택했기 때문인데, 처음엔 혼자 연습을 하다가 생각만큼 그려지지 않으니 전문가에게 배우고 싶다고 도움을 요청했다. 스스로 배움을 선택한 아이는 즐겁게 다니고 있다.
학교에서 영어와 수학 수업을 하고 온 아이는, 시키지도 않은 영어 숙제를 하고 테스트를 해달라고 했고, 수학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며 가르쳐 달라고 했다. 남편은 아이의 수학 선생님이 되어 지금도 투닥거리며 수업을 하는 중인데, 투닥거리는 저 소리가 듣기 좋을 줄이야!
아이 역시 마음이 편해지고 있는 것인지 예민하게 반응하는 행동과 말들도 많이 줄어들고 있다.
내 목소리 톤이 바뀌는 것,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도 예민하게 굴던 아이의 표정이 부드러워졌고, 발표를 할 때 발음이 좋지 않은 것 같다며, 고치고 싶다는 아이는 저녁마다 큰 소리로 책을 읽고 있고, 글을 잘 쓰고 싶다며, 집 근처 서점에 가서 <똑똑한 하루 글쓰기>라는 문제집을 사 와서 매일 몇 장씩 풀고 있는 중이다. 낮은 단계의 책을 산 아이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처음부터 차근차근 다시 공부하고 싶어서라고,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들을 스스로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