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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Jun 08. 2023

동료가 필요해

프리워커는 혼자 일해서 외롭다는 오해

1인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가장 필요하고 간절한 건 동료이다. 혼자 있고 싶다고 몸부림치면서도 사람을 찾는 이 모순적인 상황. 의아하시겠지만 자, 제 사연은 이렇습니다. 


동료는 직장 다닐 때 나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아침에 함께 나누는 모닝커피, 같이 고른 점심 메뉴를 맛있게 먹고 업무의 어려움을 나누는 것. 창백한 내 얼굴을 보고 “다움씨 커피 마시러 갈래?”라고 말해주는 동료는 늘 고맙고 필요한 존재였다. 디자인 시안을 벽에 붙여 놓고 피드백을 나누며 때론 촌철살인 비판에 자존심을 구기는 시간이 좋았다. 누군가에겐 재미없는 사회생활이고 눈치 봐야 할 사람과 상황이 많아 스트레스가 되겠지만 파워 외향인이었던 사원 황다움은 사람과 함께 하는 회사가 좋았다.


하루 종일 혼자 일하면 자신에게 갇히기 쉽다. 시선과 생각이 1인분으로 좁아지면 마음도 덩달아 좁아진다. 좁아지는 나를 직감할 때면 불안이 엄습한다. 이대로 도태되는 걸까. 세상에 덩그러니 나 혼자만 남은 기분이다. 모니터만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작업하니다 보면 좋은 시안을 만들고 있는지, 잘하고 있는 건지 감을 잃는다. 타인과 대화로 환기하지 못한 생각과 감정에 지나치게 깊이 빠져들어 결국 고립된다. 나르시시트가 되는 건 한순간이다.


 8평 작업실은 혼자 쓰기에 다소 크다. 5평 정도가 내 크기에 적당할 것 같다. 텅 비어 있는 작업실 테이블에 동료가 앉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옆에서 어깨를 토닥여주는 동료가 있으면 얼마나 다행스러울까. “다움님 커피 마시러 갈래요?”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필요해.

그렇다면 내가 먼저 놀러 오라고 해야겠다. 작업실 사진을 SNS에 올렸다. ‘다움웍스에 놀러 오세요!’ 


도보 앞 1층 작업실의 최고 장점은 개방된 곳이라 초대하기 좋다는 점이다. 작업실이 도로변에 훤히 보이는 위치라 얼핏 보기에 알록달록한 편집샵처럼 보인다.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와 “여기 뭐 하는 데에요?”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문지방이 낮아지다 못해 거의 없어졌다. 덩달아 일수 대출 전단지와 ‘도를 아십니까’의 방문도 잦지만.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많이들 놀러 와주세요!!’ SNS의 내 소식을 보고 많은 연락이 왔다. ’다음 주에 놀러 갈게요!’, ‘저 근처인데 지금 가도 돼요?’ 이런 말들 정말이지 듣기 좋다. 많이 말해달라고요, 많이 와달라고요!


공간이 생기니 나는 타인을 먼저 초청하는 사람이 되었다. 환경은 사람의 태도를 바꾼다. 마음의 블라인드가 활짝 올라갔다. 작업실 문을 열고 새로운 얼굴이 몇몇 등장했고 그들로 인해 내가 바뀌기 시작했다.




왕복 4시간, 서울을 횡단하여 작업실을 찾아온 사람이 있다. 참 극성맞은 사람이다. 한 극성하는 나와 그래서 통했나 보다. 극성맞은 사람들끼리 극성맞게 수다 떨었다. 프리워커 에디터 B와 나는 혼자 일하는 사람으로서 대화가 찰떡같이 통해 금방 친해졌다. 대화가 정말 잘 통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막차 시간이 가까워 집에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아쉬워하며 자리를 마무리하는 대화.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살면서 몇 번이나 만날 수 있을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오래 알고 지낸 친구보다 더 솔직해지기도 한다. 그녀는 대화 내내 맑은 눈을 꿈뻑이며 등을 내 쪽으로 살짝 다정하게 기울였고, 평소에 남들에게 하지 못한 속 마음을 미주알고주알 떠들다가 이내같이 편지 프로젝트를 꾸렸다. 그녀와 1년간 편지를 주고받았고 이 편지는 곧 책으로 발행 예정이다. 그 외에 다양한 함께 다양한 일을 진행했다. 내가 기다리던 동료가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제 발로! 사람을 들일 수 있는 공간은 이렇게나 힘이 크다. 우리는 그저 마주 보고 앉아서 쉴 새 없이 이야기하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기다림을 자초한 편지 - Written by 보령다움


그녀에게 어떤 서체가 어울릴까. Melange  어울리겠다멜란지는 김뽐므 [여인에게] 앨범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나온 로고 시안 중 하나를 서체로 발전시킨 작업이다. [여인에게]는 생각과 감정을 아주 명료하게 표현하는 가사와 운율을 따라 고요함과 따뜻함, 그 속의 강인함이 풍겼다. 

Melange Serif Typeface

한 장의 앨범이 나오기까지 아티스트는 인고의 시간을 보낸다. 앨범의 완성과 함께 나비가 탄생하듯 한 꺼풀 벗겨내고 진화한다. 나비처럼 빛나는 실크 리본이 훨훨 춤추는 모습, 그게 멜란지다. 


Melange란 여러 가지의 혼합물 또는 지층이 크게 흔들리면서 복잡한 지질구조와 역단층이 발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혼합물에 의한 복잡합 구조라는 멜란지의 이름 뜻처럼 Serif이지만 Sans Serif의 디테일이 있는 복합적인 형상이다. 균열을 지나 단단해진 누군가의 모습을 담고자 했고 서체를 만드는 내내 나 또한 강인해졌다.

Melange Serif Typeface

멜란지 서체 더보기


나를 무장해제시키는 에디터 B의 부드러운 단단함 또한 인고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겠지. 감히 다 헤아릴 수 없는 균열을 용기 있게 지나온 이가 내게 전하는 다정함을 마주하니 깊은 곳에서부터 이야기가 솟아 나왔다. 


“저는 거절을 잘 못해요. 싫다고 야무지게 말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고 참아서 문제에요.”

“그런데요, 다움님. 말은 안 해도 얼굴에 다 드러나서 상대방은 다움님이 싫어한다는 걸 이미 알지 않을까요?”


푸하하! 그러네! 나 완전 솔직하잖아? 그녀의 대답에 착각이 와르르 깨져 웃음이 터졌다. 왜 세상을 혼자 다 이해하려 하며 참고 산다고 착각했을까. 이미 내 얼굴에 호불호가 다 쓰여있었다. 늘 참고 살았다는 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자기 우월의식에서 나온 자만이다. 너를 위해 이 한몸 희생한다, 그러니 나로 인해 모두가 편할 것이라는 기괴한 착한 척이었다. 하지만 나는 싫다고 말하지 않아도 표정에 확연히 티가 나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까지도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는 착각에 빠져 살았을 것이다. 새로운 사람이 나를 새롭게 한다.


그녀에게 수많은 고백을 했다. 내 입으로 말하면 인정하게 되는 것 같아 말하지 않고 참아온 진심을 자꾸만 털어놓게 되었다.  


“사실 전 저를 사랑하지 않아요.”


나를 사랑하지 않음을 누군가에게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의 연약함을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니까,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하니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단단한 사람이고 싶었다. 적어도 그렇게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 고백에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지요. 지나치게 해치지지만 않는다면요.” 


이 한마디에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꼭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연약한 것도 아니고 나를 사랑한다고 해서 강인한 것도 아니다. 사랑하지 않는 상태를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니 괜찮아졌다. 높고 낮음, 못나고 예쁨을 비교하며 구분할 필요가 전혀 없다. 사랑하든 말든 개인의 자유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니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자책하던 내가 이상하지 않았다. 이 모습 또한 나의 일부. 나의 개성. 바꾸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누군가의 한마디면 되는 거였다.


우리는 쓸데없는 것 같아도 쓸데 있다고 자부하는 심오한 대화를 즐긴다. 불현듯 추상적인 질문을 툭 던진다. “지금 행복해요?”, “언제 가장 편안함을 느껴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게 아니라 아예 안 받는 방법은 없을까?” 스트레스를 아예 안 받고 살수 있으려나. 애초에 말이 안 되는 뜬구름 같은 질문도 던진다. 진지하게 시작한 대화는 대게 헛소리 드립으로 마무리되고, 오늘 먹은 점심과 저녁에 갈 맛집 얘기에 들뜬다. 고민으로 시작한 대화는 깔깔 웃음으로 마무리된다.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참 다행이다.




그리고 한 번에 4명의 동료를 만났다. 그야말로 넝쿨째 굴러온 당신들이다. 이름하여 구천즈라 애칭을 지었다. 나 포함 총 5명의 청년이 작업실 길에 들어왔다. 베이킹, 캔들, 희귀 식물, 메이크업, 각자의 영역에서 꿈과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대표님들이라 끈끈하게 잘 통한다. 세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의 상황을 이미 알고 있어 수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의 대화 주제는 다양하다. 겨울에 꽁꽁언 수도를 어떻게 녹여야 하느냐, 전기세를 줄이려면 계약 설정을 바꾸는 게 좋다, 세금 다들 잘 내셨느냐 등등, 월세살이와 자영업자의 고달픔을 바탕으로 심도 깊은 에피소드를 나눈다. 이들과 대화하다 보면 위로와 열정, 웃음이 넘친다. 좋은 동료를 만나게 해준 구청의 청년 지원 사업이 고마울 따름이다. 

이들  a.k.a 세 사장님은 내게 꼭 필요한 사람이다. 헐렁하고 무해한 개그와 취향이 잘 맞아 만나면 망상을 늘어놓는다. 늘 긴장하고 힘이 빡 들어간 나와 달리 그녀는 힘을 빼고 산다. 힘이 하나도 없어서 금방 날아갈 것처럼 펄럭거린다. 일을 할 때 나는 예민해지고 조급하다. 더 빨리, 더 많이를 속으로 외친다. 혼자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있으면 그녀는 나풀나풀한 발걸음으로 두 반려견을 데리고 작업실 앞을 지나가다 말을 건다. "사장님 바빠요?"라고 아주 느긋한 말투와 발그레한 표정으로 인사를 한다. "날씨가 좋아서 한강이나 가야겠어.", "오늘 술 한잔 각인데" 대게 실없는 진심을 말한다. 자신의 꿈이 한량이라고 자주 말한다. 이미 한량인데 말이다.


대표님이랑 있으면 예민하던 제가 말랑해져요.”, “왜케 우껴요?”(웃겨요라고 카톡에 쓰지 않음. 우껴요ㅋㅋ큐ㅠㅠ 이렇게 씀) 터지기 일보 직전의 빵빵한 풍선의 바람을 쓱 빼주고 가는 사람이다. 감당하지 못한 나의 우악스러운 모습을 타인이 스르륵 완화해 준다.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산다. 


‘사람이 지긋지긋해. 세상 혼자 사는 거야. 이제 아무도 만나지 않을래. 나만 보고 살래.’라고 숱하게 말했지만 실은 나는 사람이 그리웠던 거다. 작업실에서 좋은 사람들이 제 발로 걸어왔다. 그들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햇살 같은 사람들. 마음의 블라인드를 여니 햇살이 한가득 쏟아졌다. 정말이지 작업실이 나를 위해 스스로 찾아온 게 분명하다.


동료란 나와 같은 소속을 가지고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만이 아니다. 물리적 거리는 떨어져 있어도 같은 가치를 지향하며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고 연락할 수 있는 사이라면 모두 동료다. 개인 사업자 동료, 프리워커인 동료뿐만 아니라 직장인 동료도 있다. 직장을 다녀도 비전과 대화가 통하면 동료다. 동료의 범위를 넓히니 더 많은 동료가 생겼다. 관점을 바꾸니 더 이상 나는 외롭지 않다.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 좋아요를 눌러주는 사람도 동료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수많은 전 세계 랜선 동료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이 글을 통한 인연이 나중에 어떻게 이어질지 모르니 기대하며 살아봅시다. 


꼭 일로 만난 사이가 아니어도 된다. 고등학교 친구가 10년 만에 연락이 닿아 작업실에 놀러 왔다. 10년의 공백이 무색하게 어제 만난 사이처럼 왁자지껄 떠들었다. 교회에서 만난 친구들은 작업실 한구석에 밀어둔 오래 전 굿즈 제작 외주로 만든 보드게임을 처음으로 플레이한 1호 손님이 되었다. 내게 무해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작업실 언제 한번 놀러 와!”라는 초청으로 시작했다. 초대하고 문을 열어 맞이하면 인연은 저절로 이어진다.


작업실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려니 그들과의 만남이 참 소중해서 쉽게 써지지 않는다. 고마운 인연을 예쁜 문장에 진심을 담아 적고 싶은데 투박한 내 글로 잘 전해질까.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결국 사람으로 치유된다사람은 사람과 함께 성장한다사람들에게 받은 것이 많아 나는 이제 주고 싶다내가 가진 거라곤 시간공감지지응원 이런 것이다필요하다면  가져가시라거저 주는 것을 거져받으면 거지 근성이 생긴다고 은사님이 말씀하셨다거저  것을 감사히 받아 감사히 돌려주고 싶다그것이 내가 세상에 지어져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리이다세상에 베풀며 살아야 한다. 내가 받아온 것들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다. 가지 것 없이 살아온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넘치게 받았다. 세상에 나만 덩그러니 살아온 줄 알았는데 내 곁에 소중한 이들이 든든히 나를 지키고 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누는 대화,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공간, 작업실은 나를 변화시켰다. 


그리고 나의 단골손님 지물포 사장님이 문을 두드렸다.


“한게임 바둑 머니 충전을 해야 하는데 이거 좀 도와줄 수 있나? 미용실이 지금 바쁘다네” 


이게 다 무슨 소리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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