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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May 10. 2020

아빠 어디가…?

아빠가 짐을 옮겨주시다가 사라지셨다.

엄마 아빠에게서 독립한 지 벌써 3년이다. 30대가 되면서 나는 더욱더 내가 스스로 판단하고 어려운 일이 생겨도 혼자 해결해 보고자 하는 습관들이 생겼다. 나의 독립으로 인하여 3년 동안 몸도 멀어졌지만 특히나 부모님과 마음도 멀어졌다. ‘품 안의 자식’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인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엄마와는 통화도 자주 하고 매일매일 있었던 얘기도 나누는데 아빠와는 시시콜콜한 전화 통화는 없다. 어느 순간부터 아빠에게는 아빠 생일이거나, 어버이 날이거나 특정한 날에만 전화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아빠와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도 사실이다. 어릴 때는 아빠가 날 참 예뻐했었는데… 가끔은 아쉬운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매일을 그렇게 바쁘다는 핑계로 어엉부엉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를 제외한 여자 네 명이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아빠는 여행을 별로 즐기시지도 않아 어느 순간부터 여자들만의 여행을 자주 가곤 했다. 엄마, 언니, 나 그리고 치앙마이에서 만난 친구 S는 정말 오랜만의 나들이로 신이 났다.


2박 3일의 호캉스 여행이었지만 엄마와 나의 짐을 담으니 엄청 큰 캐리어가 꽉 찼다. 그리고 밑반찬과 과일을 담은 박스도 한 가득이었다. 그 많은 짐들이 우리가 얼마나 신이 났는지를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엄마 차로 이동을 하기로 했고, 아빠는 짐을 옮겨주시기 위해서 지하 3층 주차장에 함께 내려오셨다.


그리고 아빠는 짐을 엄마 차 트렁크 앞에 놓고는 사라지셨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기왕 여기까지 온 김에 캐리어와 박스를 트렁크에 실어주신다면 참 좋았을 텐데…….. 아빠가 그렇게 가버리시니까 사실 조금 서운했다.


서운한 마음도 잠시였고, 나는 예쁜 투피스 치마를 차려입었지만 짐을 트렁크에 실어야만 했다.

‘아.. 트렁크에 짐 실는 거 힘든데…’

나는 내 몸만 한 캐리어와 장을 본 박스를 낑낑거리며 겨우 트렁크에 실을 수 있었다.


다 싣고 나니 아빠가 저 멀리서 나타났다.

아빠는 나에게 다가와 뭔가를 건네셨다.


아빠: 제이야, 이거

나: 뭐야?

아빠가 건네는 물건이 뭔가 하면서 받아 들어 쳐다봤다.

그건 차에서 핸드폰을 충전할 수 있는 고속충전기였다.

아빠는 이걸 가지러 당신의 차에 다녀오셨던 모양이다. 아빠 차가 지하 3층이 아닌 지하 2층이나 지하 4층에 주차되어 있었던 건지 아빠는 조용히 아빠가 챙겨주고 싶었던 것을 가지러 가셨던 것 같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아빠가 왜 더 해주지 않는 건지 의문을 가졌던 것이었다. 아마 아빠는 가져다주시고 짐을 실어주시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제야 아빠 마음이 이해가 갔다. 더 챙겨주고 싶고, 더 해주고 싶은데 표현하는 방법이 달랐던 것이었다. 아빠는 그냥 말없이 챙겨주는 것이었는데, 나는 그 마음을 알지 못했다. 이렇게 30년 동안 엄마 아빠 밑에서 커오면서 아직도 나는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딸이었다. 그날따라 츤데레 같은 아빠가 내심 감동했다.


가족 간의 관계도 서로 노력이 필요하다. 아빠와의 관계 회복을 다시 차근차근 시작해 보려고 한다. 엄마 아빠를 위해서 시간을 내 가서 저녁도 먹고, 아빠에게 안부도 묻고 가끔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그런 딸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엄마 몰래 아빠 통장에 용돈도 넣어드려야겠다.


아… 아빠 계좌번호가 어디있더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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