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 그럼 퇴사해보겠습니다.

퇴사 준비생의 퇴사 일기

by 제이


‘팀장님,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라는 말 대신 ‘팀장님, 퇴사해보겠습니다.’라는 말이 불쑥 나오려고 한지 한 2~3달 정도 지났다. 그 시간들을 다 겪어낸 후 나는 결론에 겨우 다다를 수 있었다. 이 조직과, 이 사람들과, 이 일과 내가 맞지 않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걸 인정하기까지 만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회사라는 곳에 내가 속해있었기에 전세자금 대출이며, 신용대출이며, 분양권 중도금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적합한 사람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방패막이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매월 통장에 찍히는 300만 원이 주는 이로움보다 내 심신에 미치는 데미지가 더 컸다. 난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고, 더 이상 회사에서는 웃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내가 의견을 내도 그건 항상 부족한 생각이었고, 들어볼 가치가 없는 그런 생각이었다. 정말 그랬다.

팀장님은 항상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나보다 다양한 시각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러려니 했다. 내 생각은 부족하니까. 나는 소극적으로 변해갈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반영 안 될 의견이니까. 앞으로 나갈 수도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상황들이 자꾸 발생했다.


외국인 임원급 인사에게 영문 이메일로 서로 의견을 주고받아야 하는 업무가 있었다. 팀장님께서 한글로 초고를 쓰셨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나는 서론에서 회사에 대한 소개가 너무 긴 것 같다고 말씀드렸고, 회사에 대한 소개는 소개자료로 대체하고 본론이 먼저 나오면 좋겠다고 의견을 말했다.


팀장님은 나에게 그렇게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라고 한건 아니라고 하셨다.


‘응.....??? 뭐지???

그냥 생각하지 말고 번역이나 하라는 뜻인가....?’


그리고 대표님들께 한글 초본이 그대로 올라갔는데 다 좋다고 하셨고 내가 영문으로 번역해서 영문본이 다시 올라갔다. 윗분들께서 영어로 보니 서론이 너무 길다는 생각들을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서론의 회사 소개 내용은 다 빼는 게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하하………… ^_^………… 삽질했네……………….


그리고 영문본은 전문의 1/3를 드러내게 되었다. 애초에 이 글이 영문본으로 번역되어 보내 질 거라는 것을 몰랐던 사실도 아닌데….. 왜……? 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그래도 뭐 괜찮았다. 그렇게 영문본을 완성하고 나서 나는 계획했던 연차를 다녀왔다.


다녀왔더니 그 영문본이 해외대를 졸업한 다른 직원에 의해서 수정이 되어 있었다. 그것도 괜찮았다. 수정을 거치면서 영문본의 퀄리티가 올라간다면 나에게도 좋은 일이고 회사에도 좋은 일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제 그 영문본은 온전히 나의 책임이 아닌 우리의 책임이 되었다.


그리고 팀장님이 나를 다시 부르셨다.


팀장님: 여기는 왜 이 단어가 들어가지?

이거 Formal 한 표현이 맞나?

나 : 이 단어 자체가 저에게도 Formal 한 느낌이 아니에요. 이렇게 수정이 되어있었는데요, 제 생각에도 이 단어는 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팀장님: 아 그래? 이렇게 수정된 거구나. 그럼 이게 맞나 보네… 이대로 정리하자.

나 : …………………?????


아……………뭐지…………?


이건 나에 대한 신뢰의 문제였다. 내가 쓴 거면 틀린 것이고, 어색하더라도 해외대를 나온 직원이 수정한 내용이라면 그건 맞는 것이었다. 애초에 나에게 이 업무를 맡긴 이유가 뭘까.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반복됐다. 그러면서 나는 성취감은커녕 일을 할 수 있는 동력을 잃어갔다.


동력을 잃은 비행기는 추락할 수밖에 없고, 동력을 잃은 배는 파도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내가 조직에 남아있는 것도 조직에도 해가 될터였다. 조직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우리는 이별을 해야만 한다. 3년 동안 많이도 부딪쳤다. 대학원 졸업으로 인해서 동기들보다 빠른 승진은 오히려 나에게 독이 되었다.


승진을 못한 동기로부터는 '쟤는 뭔데 승진해?'라는 시선을 받았고, 팀장님과 본부장님께는...


‘지금 사원도 아니고, 일하는 퀄리티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게 말이 돼?’

‘1~2년 차도 아니고, 일을 접근하는 시각이 이렇게 좁아서야 원…’

‘너, 그 자리에 왜 앉아있니?’


그런 시선을 받았고 그런 얘기를 들었다.


그 말들은 나에게는 정말 비수처럼 꽂쳤다. 멘탈뿐만 아니라 몸도 조금씩 망가졌다. 나는 그냥 웃음을 잃은 정도가 아니라, 이제 숨을 잘 쉴수가 없었다. 한숨을 내뱉는 횟수가 늘었는데, 그건 그냥 단순한 한숨이 아니라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자 하는 나의 의지였다.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서 다른 길을 택해야만 했다. 그리고 결국 머릿속으로만 외치던 말을 꺼내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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