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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꿈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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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 Feb 23. 2020

회식 자리에서 나는 없었네

#꿈의 기록: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꿈속에서 나는 예전에 다녔던 동물권 시민단체의 일원, 즉 활동가였다. 일을 마치고 회식 장소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채식식당을 예약해 놓은 상태였다. 어느 백화점 같은 건물 안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무심코 아래를 내려다 보니 평소 복장이 아닌 검은색 정장 차림이라는 걸 깨달았다. 핏이 엉망이어서 놀랐다. 바지 기장은 너무 길었고 신발도 구두가 아니라 투박한 운동화 같은 걸 신고 있었다. 촌스러웠다. 누가 볼까 싶어 민망했다. 쭈그리고 앉아 바지 기장을 정리하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수습이 불가능한 지경이었다.


식당 입구에 도착했다. 전경 사진을 찍으려고 폰을 꺼냈다. 이상하게 초점이 잘 맞지 않아 애를 먹었다. 떨림이 심했다. 먼 곳에 있는 피사체를 망원 렌즈로 최대한 당겨 찍을 때 그러하듯. 식당 점원 중 한 명이 입구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나를 의식해 몸을 숨겼다. 그러다 다시 고개를 내밀었고 여전히 사진 찍고 있는 나를 보며 다시 숨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신경이 쓰여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사진 찍기를 포기하고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 사이 회식 분위기는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는데 입구에 신발이 엄청나게 많았다. 신발을 벗으려고 보니 어느새 운동화가 구두로 둔갑해 있었다. 한 짝을 벗은 뒤 문을 닫고 안쪽으로 들어서서 다른 한 짝을 벗으려고 끙끙댔다. 당황한 탓인지 신발이 잘 벗겨지지 않았다. 입구에서 점원들이 바라보는 시선을 의식해 그걸 피하려고 했을까.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스스로도 우스꽝스럽다고 느꼈다.


큰 방 안에 여러 대의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사람들이 복잡하게 뒤엉켜 앉아 있었다. 퀴즈 타임이었다. 모두 앉아 있는 가운데 사회자가 서서 진행을 하고 있었다. 퀴즈를 내면 사람들이 정답, 정답 하고 앞다퉈 소리를 질러댔다. 퀴즈 내용은 이 단체의 조직 개편과 관련된 것이었다. 현실에서 나는 그 단체를 그만둔 지 오래였는데 꿈속에서도 내부 사정에 밝지 않았다. 그곳이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고, 그러니 퀴즈 답도 맞출 수 없었다. 내가 왜 이곳에 있는 거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순간 혼란에 휩싸였다.


분명 익숙한 사람들이 곁에 있었던 것 같은데 나를 챙겨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이 한참 식사를 하고 난 뒤여서 음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누구도 내 음식을 챙겨주지 않았다. 퀴즈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남은 음식을 한참 찾다가 이거다 싶은 걸 앞에 끌어다 놓았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왁자지껄한 분위기였지만 어느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기 어려웠다. 내게 관심을 보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2019년 7월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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