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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 Aug 22. 2018

무채색의 유화 같은, 먹먹한 희망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

무심코 고개를 드니 충충하고 희부연 하늘과 아파트, 그리고 가로등에 층층이 시선이 꽂혔다. 무채색에 가까운 유화 같은 풍경. 우울에 잠긴 듯한 도시. 가다 멈춰서고 가다 돌아서서 멍하니 바라보기를 반복했다.


그런 색채를 띠는 과거를 누구나 하나쯤은, 혹은 그 이상을 마음 속에 품고 있을지 모른다. 황정은의 『계속해보겠습니다』를 보면 몇몇 장면에서 그런 풍경이 떠올라 멈칫, 하는 순간이 온다. 이를테면 소라, 나나가 나기 엄마인 순자에게 도시락을 얻어먹는 장면 같은 것.


고등학교 때 한동안 점심을 못 먹은 적이 있다. 복잡한 가정사 탓이지만 간단히 말하면 급식비를 못 내서다. 그래서 점심시간이면 그저 남들 눈에 안 띄게 교실을 나오곤 했다. 그걸 어찌 알았는지 어느 날 친구 하나가 매점에 데려가 우유와 빵을 사주었다. 그때의 기억을 가족은 물론 다른 누구와도 나누지 않았다. 엄마는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나도 입을 다물었다.


소설에서 자식들에게 무기력한 모습으로 일관하는 애자의 모습은 한편으로 처연하다. 비참한 사고로 남편을 잃기 전까지 남편에게 ‘전심전력’을 다한 터라 생의 의지가 휘발된 것인지. “언제고 그런 식으로 중단될 수 있는 것이 인생”이므로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으로 세계를 채워야 한다고 애자는 말한다. 소라는 그런 애자와 가장 닮아 있다. 기대를 접고, 세계를 회피한다는 점에서.


그러므로 애초에 아기는 만들지 않는 게 좋다. 아기를 낳지 않는다면 엄마는 없지. 엄마가 없다면 애자도 없어. 더는 없어. 애자는 없는 게 좋다. 애자는 가엾지. 사랑스러울 정도로 가엾지만, 그래도 없는 게 좋아. 없는 세상이 좋아.


나나는 애자의 ‘전심전력’을 경계한다. 냉소로 일관하는 애자와 소라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인지. 아마도 어린 시절 나기가 나나의 뺨을 때리며 "남의 고통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 괴물"이 되지 말라고 가르친 덕분인지도.


사랑에 관해서라면 그 정도의 감정이 적당하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윽고 괜찮아지는 정도. 헤어지더라도 배신을 당하더라도 어느 한쪽이 불시에 사라지더라도 이윽고 괜찮아,라고 할 수 있는 정도. 그 정도가 좋습니다.


나나의 시점으로 귀결되는 소설 말미에 나나는 나지막이 삶을 긍정한다. 인간은 덧없고 하찮지만,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버텨가고 있으니까. 다분히 극적인 끝맺음.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척 포즈를 취할 수는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 마지막 문장에 찍힌 마침표에 마침내 도달할 때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가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것은 가슴 한편의 응어리에 가닿아 묘한 파장을 낳는다. 계속해보겠습니다, 덤덤하게 내뱉는 이 한마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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