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의 왕국'으로 알려진 인도의 실상에 대하여
"여자 혼자 위험하지 않아요?”
"여자만, 여자 혼자, 여자끼리 위험하게."
인도여행을 준비하는 여성들의 십중팔구는 듣는 이야기다. 여성인권이 최악의 나라이며 여성 안전도 바닥을 치고 있다고 인식되어 있는 나라, 인도. 그런 나라에 동양계의 여성 혼자 배낭을 들쳐 메고 여행을 떠난다는 것 자체를 곧게 보는 사람들은 사실 별로 없다. '강간의 왕국'이라는 인도의 이미지는, 2012년 12월 델리의 버스에서 일어난 집단 성폭행 사건이 보도되면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이 사건을 필두로 인도의 성범죄에 대한 다양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2012년에 델리에서 일어난 집단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가 불과 며칠 뒤 사망하며 이 사건은 인도 전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분노케 만들었다. 집단성폭행 사건의 가해자 6명은 사건이 발생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검거되었다. 가해자 대부분이 범죄를 인정하고 일부는 독방에서 자살하거나 교도소 내에서 심한 집단 구타를 당하는 등의 일도 있었으나, 가해자 일부는 사건의 동기 자체를 여성에게 돌려 '늦은 시간에 남녀가 겁도 없이 돌아다닌다'는 발언을 했고, 이에 격분한 인도 수천 수 만의 국민들은 수도인 델리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시위와 서명운동을 벌였으며 곧 주변국인 네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로도 옮겨갔다. 가해자들 모두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가해자 중 유일한 미성년자였던 한 사람만 3년형을 선고받고 풀려났고, 이 판결을 토대로 인도의 소년범죄에 대한 처벌과 규제 법규가 크게 개정되었다.
델리 집단 성폭행 사건이 벌어진 이후 인도의 성범죄에 대한 기사들은 전 세계 언론들의 각별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스위스, 독일, 영국 여성들에 대한 성폭행 사례와 더불어 일본, 태국 그리고 한국의 사례도 생기기 시작했다. 델리 집단 성폭행 사건과 유사한 강간 사건들이 델리, 캘커타, 아그라, 바라나시 등을 등지로 생기기 시작했고 자국민을 대상으로 했던 범죄는 여성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집중되는 등의 일들이 이어져 인도 내에서도 매우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수도권 거주의 여성들이 먼저 움직여 단체를 꾸리고 여성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 즈음이었다. 이렇게만 놓고 본다면 인도는 '성범죄의 왕국'이라는 이미지는 가정이 아닌 사실이라는 판단이 서며 정부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여행을 금지해야 한다는 생각마저 든다. 인도는 여행금지구역, 여성들이 반드시 피해야만 하는 야만적인 국가일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리고 그중의 대부분은 미디어가 만들어낸 편견 위에 싹튼 이야기들이다. 인도의 성범죄 비율은 영국, 미국 등의 나라들보다 훨씬 적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심지어 한국과 비교하여도 낮은 편으로, 인구 대비의 성범죄율은 다른 아시아 나라들에 비해서도 적은 편이다. 이 수치는 의미 없는 것일 뿐 실상 성범죄를 신고하지 않은 절대다수의 통계를 반영하지 않은 것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성범죄의 신고비율은 비단 인도만 낮은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나라든 비슷한 비율을 유지할 것이다. 물론 수치적인 잣대로 모든 사건들을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인도가 '강간의 왕국'이라는 이미지를 뒤집어쓴 채 인도를 여행하려는 여성들에게 '제 발로 폭행당하러 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무지에서 비롯된 실언을 서슴지 않게 남발하는 사람들에겐 매우 중요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다수의 한국인들에게 쌓인 인도 자체에 대한 이와 같은 불신은 편파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를 하는 일부 미디어들의 영향이 전부였다고 생각한다. 델리 성폭행 사건 이후 성범죄에 대한 여성의 안전을 되찾자는 운동이 인도 내에서 불붙듯 번져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에 외신들은 이에 집중해 인도를 '성범죄의 국가'로 포장하기 급급해왔다.
물론 인도는 오래전부터 관습적인 영아(여아) 살해나 명예살인 등이 빈번하게 일어났으며 이와 같은 문제가 불거지면 언제나 전통과 종교의 경계 아래서 판단하게를 강요해왔다. 누군가 강간을 당하면 그건 여성이 처신을 잘못했거나 빌미를 제공했다는 사회적 분위기도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왔다. 신고되지 않은 사건들의 대부분은 이런 식으로 묻히는 범죄들이거나 종교적 분쟁 속에 일어나는 집단 강간, 성폭행들이 될 것이다. 실제로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예는 인도의 중앙수사국의 국장 란지트 신하가 도박을 예로 들며 '성폭행도 피할 수 없다면 도박과 같이 즐겨야 할 것'이라 말했던 사건이었으며, 이는 곧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새에 성범죄 관련 법안을 모두 뜯어고치고 이와 관련한 처벌은 점차적으로 강력하게 상향하는 등 인도의 정부는 최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외국인 여성들에 대한 성범죄도 이에 포함되어 각 주 별로 보다 엄격하게 대처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으며, 범죄에 대한 신고율이 현저히 낮은 시골마을들에도 관련 기구를 두어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대부분 분노한 인도의 여성들이 만들어 낸 결과이다. 성범죄에 대해 쉬쉬하는 관습과 문화가 한 번에 바뀔 수는 없겠으나 적어도 이제는 해당 사건을 접했을 때 목소리를 내어 저항하고 맞서 싸울 수 있는 통로가 조금은 확대된 셈이다. 근 몇 년 사이에 개정되어 시행되기 시작한 인도의 성범죄 관련 법규와 처벌 강도를 보면, 오히려 한국보다 더 강력하고 공정하게 집행되는 항목도 있어 조금 놀랍다.
인도를 여행한 여성여행자치고 성추행을 한 번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속설이 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굳이 큰 사건이 아니더라도 시장통이나 사원 등 사람들로 정신없이 북적거리는 곳에서 엉덩이나 가슴, 허리 등을 스쳐가는 알 수 없는 손길들을 여전히 꽤 높은 확률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왈리나 라마단이 끝날 무렵, 그리고 특히 홀리와 같은 혼란스러운 축제 때는 여지없이 그런 불특정의 손들과 크고 작게 마주해야만 했다. 하지만 과거에 조용히 속으로 앓으며 지나갔던 행동들을 이제는 그 손을 붙들고 소리 질러 분노하고 크게 대항할 수 있게 되었다. 2017년 대비 2018년 한 해 동안 인도 전역의 성범죄율은 여전히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런 통계수치를 눈 가리고 넘어가는 사람들은 현저히 줄었다. 더 이상 과거와 같지 않다는 말이다.
인도는 걷기만 해도 성추행을 당하게 되는 나라도,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성폭행을 당하는 나라도 아니다. 수많은 미디어에서 보도하는 인도여행에 대한 편견과 불안의 조장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성범죄가 자주 일어나는 국가는 맞지만 성범죄를 마치 미덕인양 삼는 나라는 아니다. 혼자 다니는 여성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나라도 맞지만 그렇다고 여행을 기피하고 금지해야 할 정도의 나라는 아니다. 타지의 여성으로서 주의한다면 피할 수 있는 범죄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금지된 구역 가지 않기, 낯선 사람의 초대와 합석 등을 기피하기, 현지인을 숙소로 초대하거나 방으로 들이지 않기, 낯선 사람이 주는 음료수나 음식 받아먹지 않기, 도를 넘은 친밀함을 기피하기, 밤늦게 돌아다니지 않기 등이다. 말은 어이없을 정도로 쉽지만 여행 중에는 좀처럼 이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많으며 여행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들의 대부분이 이를 토대로 일어난다. 비단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니며 남성들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것들이다.
인도를 겪어보거나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무조건 '인도는 강간의 왕국'이라 부르는 사람들에겐 거울을 들어 자국, 한국의 범죄들을 바라보며 비교해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여성인 나의 '진짜 공포'도 인도가 아니라 오히려 한국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실종된 한국인이 1,000명에 달한다'는 잘못된 기사가 한창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이 기사는 외신에서 다룬 것으로, 실종이 아닌 비자 만료 후 비자를 연장하지 않는 등의 이유로 신고된 사람들을 포함한 다양한 케이스를 한 군데 모아 단순히 'Missing'이라 표기하여 혼란을 야기했던 해프닝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루머였지만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믿었고, '실종', '1,000명'과 같은 단어들의 파편이 근거 없이 여전히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눈에 잡히지 않는 불특정의 것에 대한 편견을 세우고 헐뜯는 것이 얼마나 빠른 시간 동안 일어나는 일인지, 또 그것을 바로잡기 위한 추후의 노력과 정보들은 또 얼마나 빠르게 묻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