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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운 Oct 11. 2018

나는, 사람들은 왜 콜센터를 다니는가

내가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하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그것도 34살이 되도록 5년 동안이나. 깊이 고민하지 않고 정한 건축공학이라는 전공은 나와 어울리지 않았다. 대학 생활 동안 전과를 하거나 다른 공부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땐 아무 생각이 없었다. 미래에 대한 고민은 하나도 없이 졸업만 하자는 텅 빈 마음으로 수업에 들어가던 대학생이었다. 대학 4년을 그렇게 보내다 보니 학점도 보통, 토익도 평범, 자격증이나 대외활동도 겨우 구색만 맞춘 아무런 특색 없는 취업준비생이 됐다. 50개가 넘는 건설회사에 입사지원을 했는데 대부분 서류심사에서 걸러졌고, 면접을 본 몇 개의 회사에서도 탈락했다. 


그렇게 졸업과 동시에 백수가 됐고, 고향인 제주도로 내려갔다. 몇 개월을 놀다가 운 좋게 지방은행에 입사하게 됐다. 백수생활을 청산하고 돈을 번다는 사실에 잠깐은 기뻤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현실감각이 없었다. 능력은 없으면서 눈만 높아서 이 회사에서 일하기는 내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같이 저녁 10시 넘어서 끝나는 일도 힘들어 6개월 만에 퇴사했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를 마음대로 그만둬놓고 손을 벌릴 수는 없었기에 공기업에서 청년인턴으로 일했고, 그 후에는 항공사의 제주지점에 용역업체 소속으로 일했다.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고, 설렁설렁 일하거나 일 못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도 못 참는 성격이라 열심히 했다. 그 모습을 좋게 봐준 지점장님의 추천으로 운 좋게 서울 본사에 채용되는 기회를 얻었다. 29살 무렵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뭐라도 시작할 수 있는 젊은 나이었는데 그때는 대학을 졸업해 수도권에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100만 원 조금 넘는 월급을 받으며 변변찮게 사는 내가 참 초라해 보였다. 서울에서 일할 수 있다는 생각에 별로 고민하지 않고 바로 상경해 월세방을 구했다. 야심 찬 신입사원의 포부로 출근한 지 2달 만에 나는 회사를 그만뒀다.


고향 부모님 집에 얹혀살 땐 퇴사가 참 쉬웠다. 서울에 혼자 자취하며 생계를 꾸려가는 지금. 퇴사는 쉽지 않다.


일은 적성에 맞지 않았고 비전도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 사수였던 직속 상사가 능력은 있는데 참 괴팍한 사람이라 출근하는 게 두려웠다. 이전의 직장에서는 적어도 일 못한다는 소리는 안 들었는데, 여기서는 매번 실수하는 바보 같은 내가 한심스러웠고 그때마다 날아오는 꾸지람에 내가 쪼그라들다 못해 투명해지는 느낌이었다. 견디기 힘든 마음에 내가 잘할 수 있고, 진정 원하는 일을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사표를 썼다. 그때는 사표를 쓰는 마음이 나의 진심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회사를 그만두기 위한 핑계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을 적성으로 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비전이 있는 일은 무엇이란 말인가. 고작 2개월 된 신입이 실수하는 건 당연하다. 불같은 성격의 사수는 지금 생각해도 무섭지만, 어딜 가나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에 대한 객관화가 잘 안 되었던 것 같기도 하고, 사회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몰랐던 듯도 싶다.


조금만 준비하면 금방이라도 꽤 괜찮은 회사에 들어갈 줄 알고 한 석 달 즘 신나게 놀았다. 내 적성은 백수였나 싶게 행복했고 내 통장 잔고는 금방 바닥났다. 그제야 생활비 걱정이 되어 취직자리를 구해보려 했지만, 변변한 능력도, 경력도 없는 채 나이만 먹은 29살의 나를 받아주는 회사는 없었다. 당장 월세 낼 돈이 필요해 최대한 빨리 일할 수 있는 회사를 구직사이트에서 찾다가 콜센터의 구인공고를 봤다. 그때까지만 해도 직장으로서의 콜센터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콜센터의 악명에 대해서만 조금 들어 알고 있었다. 화장실에 가는 시간마저 제한당하다 방광염에 걸린 상담원, 악질 진상 고객을 만나 멘탈이 바스러져서 콜센터를 그만두고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그런 얘기들. 나에게는 큰 문제가 안 되었다. 딱 3개월만 다니면서 급한 불만 끄고 번듯한 직장에 들어갈 요량이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났고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내가 여기 다니는 이유. 자기 계발, 자아실현... 그런 건 없다.


콜센터에 들어오는 사람도 참 제각각이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어린 친구들, 대학 졸업 후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젊은이들, 여러 콜센터를 거쳐온 통산 10년 경력의 상담원, 결혼하면서 직장을 그만두었다가 아이를 다 키워놓고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해보려는 주부. 그들이 여기에 들어오게 된 속사정은 각자 다르겠지만 다들 비슷한 이유로 여기에 들어왔을 것이다. 일은 해야 하는데 마땅한 능력이나 경력, 기술이 없어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여기가 나왔을 거다. 나 역시 그렇게 이곳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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