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운 Oct 10. 2018

콜센터 퇴사를 앞두고

작년에 세운 목표 중의 첫 번째는 취업준비를 열심히 해서 지금의 직장보다 더 나은 곳으로 이직하는 것이었다. 연초 목표의 대부분이 그렇듯 실패했다. 다시 세운 금년의 목표도 작년과 같다. 단, 작년에는 '지금의 직장보다 더 나은 곳으로'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지만 올해는 조건 없는 퇴사다. 2018년이 4개월도 채 남지 않았고 이직 준비는 하나도 되어 있지 않지만, 어쨌든 나는 그만둘 것이다. 5년 다닌 지금의 콜센터를.


대책도 없이 5년 다닌 회사를 그만둔다는 결정은 쉽진 않았지만. 나가야 할 때가 맞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나에게는 조금 미안한 표현이지만 지난 5년 동안의 나는 살아가기보다는 죽어가고 있었거나, 어쩌면 딱 죽지만 않고 있었다. 아무런 의욕 없이 겨우 하루씩만 버텨내던 나를 지배한 건 나의 밥벌이인 콜센터였다. 5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하루에 한 시간씩 영어공부를 했어도 꽤 실력이 쌓였을 것이고 책을 읽어도 몇 백 권은 읽었을 것이다. 나는 지난 5년간 콜센터 상담원 일을 하며 무엇을 얻었을까. 스트레스로 인한 폭식과 음주로 인생 최대 몸무게를 경신했다. 눈가와 이마 주름은 늘어가고 머리숱은 줄어만 간다. 항상 피곤하고 의욕이 없어 쉬는 날에는 집에만 있고 싶다. 친구들과도 잘 만나지 않아 가뜩이나 좁았던 인맥은 이제 한 줌이 되어버렸다.

이게 다 망할 콜센터 때문일까. 아니다. 콜센터는 죄가 없다. 나 때문이다. 콜센터도 내 발로 들어갔고, 때려치운다는 말만 하면서 그만둘 용기를 내지 못했던 것도 나다. 목표한 퇴사일은 가까워져 오는데 이렇게 콜센터 일을 끝내버리면 지난 5년의 세월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리는 것 같아 갑자기 초조해졌다. 4개월 만에 뭐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을 할 수는 없을 듯하고 그간의 콜센터 생활을 글로 남기고 싶어 졌다. 기록이라도 남아야 지난 5년의 세월이 아주 무의미한 시간은 아니었다고 포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콜센터 밖에서는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쓰고 싶다. 나를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하다가 내가 직접 겪어오고 나만 알고 있는 이야기를 써보겠다는 생각에 이상하게 벅차오른다. 누구나 이용하면서도 그곳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지 못하는 게 콜센터다. 안에서 일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사실을 솔직하면서도 재미있게 쓰고 싶다. 그만두는 마당에 못할 얘기가 어디 있나. 잘 쓰지는 못해도 막은 써보려 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