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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 만한 조과장 Dec 19. 2021

 생전 처음 상담을 받으며 알게 된 나의 모습

생전 처음 상담을 받으러 갔다. 대단한 일이 있어서 상담센터를 찾아간 건 아니었다. 단지 회사에서 직원 대상 무료 상담 프로그램을 작년부터 실시하고 있는데, 올해 무료 상담받을 수 있는 자리가 하나 남았다고 하여 상담 받아보라는 제안이 있었다. 작년만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거절했을 나였지만, 그날은 문득 그냥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상담을 받아보겠다고 했다.


토요일 오전 10시 생전 처음 받아보는 상담을 받으러 상담센터로 향했다. 어린 시절 처음 치과를 갔을 때, 홀로 훈련소로 들어갈 때처럼 가보지 않는 곳에 대한 두려움이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도착한 상담센터는 수많은 상가빌딩 속에서 간판 하나가 겨우 보일 정도의 작은 센터였다. 안내를 받아 간 상담실은 단칸반 하나 정도의 작은 룸으로 범죄영화에서나 보던 취조실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상담실은 미드에서 나오는 큰 공간에 널브러진 소파와 그리고 각종 상담 서적이 꽂혀있는 책장에 둘러싸인 곳일 줄 알았는데!!!!)


상담을 기다리는 동안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감이 잘 안 왔다.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면 그 자리가 어색하지 않게 말을 꺼내는 편이었지만, '상담'이라는 생각만으로도 머릿속이 약간 하얘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다행히 나를 맞이한 상담사분은 내가 생각해왔던 상담사의 이미지와 유사했다. 중년의 선한 이미지를 가진 여성 상담사였다. 책상 하나를 두고 마주 보며 앉았지만 어색함이나 불편함은 없었다.


그렇게 나의 첫 상담이 진행되었다. 왜 상담을 신청하게 되었는지 간단한 질문이 시작되었고, 자연스럽게 나는 요즘 느끼는 감정과 최근 몇 년간 있었던 일들을 솔직하게 얘기했다. 사실 요 글레 힘든 사건이 있었거나, 인간관계에서 내가 풀지 못할 일들이 있지는 않았다. 단지 올해 유독 지쳤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전에는 지치더라도 금세 회복해서 올라갔는데 점차 시간이 갈수록 회복탄력성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상담사 분은 내 이야기를 들으며 이야기 속에서 생략되는 주제들을 끄집어내어 물어보았다. 예를 들어 유년시절의 아픔이나 경험, 그때의 느꼈던 감정, 본인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모습 그리고 지금의 관계 등 잘 생각하지 않았던 주제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 대해 하나하나 답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살아온 인생이 연결되었다. 그때의 감정과 모습들이 지금의 내 모습으로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상담사는 친구관계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좋다'라고 했다. 귀찮고 혼자 있는 게 편해서 친구들을 잘 안 만나기도 하지만, 유년기나 대학시절, 그리고 지금의 직장생활까지 친구관계는 대부분 좋았다. 이어서 상담사는 친구들은 본인이 힘들 때 어떤 얘기를 해주었냐고 물었다. 나는, '잘하고 있어', '중압감이 컸겠네'라는 말을 친구들이 전했다고 했다. 그러다 문득 그때 친구들의 말들을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러자 상담사는 나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참 혼자서 애를 많이 쓰셨겠네요'라고 전했다. 


'애썼다' 


나는 항상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했다. 왜냐면 나보다 더 열심히 살고 젊은 나이에 원하는 것을 이룬 사람들이 많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나는 '애쓰긴' 했다.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했다. 어려움이 있어도 내 힘으로 해결했고 가족에게는 내 힘든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지 않았다. 병원생활로 아픈 가족들에게 나까지 짐이 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나라도 잘해서 힘이 되고 싶었으니까 말이다. 


홀로 애쓰는 과정에서 나는 약간 가족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 아버지, 엄마, 동생은 서로를 돌보고 챙기기 바빴기에 내 힘든 감정까지 케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감정을 가족에 털어놓기보다는 가족이 아닌 다른 곳에서 나 홀로 내 감정을 발산했다. 가족과 얘기하기보다 서점을 찾아갔고, 머리가 복잡할 때면 동네를 뛰며 생각을 정리했다. 집에서 우울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다시 기운을 빨리 차리고 싶었다.


상담사는 그런 모습을 보며 내게 건강한 기질이 있다고 말을 이어갔다. 본인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감정에 대해 솔직하고, 무엇보다 이를 풀어가는 방법과 역량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내가 가진 '외로움'에 대해서도 직시하게 해 주었다. 왜 끊임없이 무언가를 성취하고자 하는지, 본인은 잘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왜 괴로워하는지,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왜 상담을 오게 되었는지 본인이 생각한 점을 전해주었다. 


상담 이전에는 이런 위로의 말들이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위로의 말보다는 동기부여의 말이 내 삶을 지탱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힘들 때면 동기부여 영상을 보고, 책임을 읽으며 더 강해지고 단단해지는 법을 배워갔다. 하지만 막상 나의 외로움에 대해 직면하고 보니 나는 사실 맘 속 깊은 곳 어딘가에서 너무나 위로가 필요하다고 외쳤던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인 초등학교 4학년 이후로는 가족에게 내 마음을 온전히 기댄 적이 없었다. 어린 시절 치과를 갈 때도, 20살 군대 훈련소를 들어갈 때도 나는 항상 혼자였다. 수능을 보고 마중 나온 사람이 없을 때도, 홀로 친척 장례식장에 갈 때도 나는 그냥 이해해야만 했다. 가족에게 좋은 아들이 되기 위해, 주변에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던 순간 뒷모습에는 맘 속 외로움도 커져가고 있다는 걸 조금은 알게 된 거 같다



상담시간은 나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감정의 결함 혹은 상처를 가지고 살아감에도, 정작 내 결함이나 상처에 대해서는 무덤덤하게 대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에 상담을 받은 것도 그동안 무덤덤하게 대했던 감정들이 더 이상 눌러지지 않고 터진 것이 아닌가 싶다. 항상 괜찮은 적 잘해야 된다는 마음으로 살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내가 속한 회사 안에서 잘하려고 노력을 했고, 결국 그 속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은 받았다. 그렇지만 사회라는 곳은 회사 안에서만 인정받았다고 모든 걸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회사 밖을 넘어 인정받아야 할 대상이 생겼고, 점차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 많아진다는 게 숨통을 조여 오는 기분도 든다. 결국 나는 잘 해낼 거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면서도 말이다.


내가 빛나면 인간관계가 편해진다. 그래서 나도 이 말에 따라 순간의 감정보다 내가 잘한 결과로써 말해주는 게 편하다. 그렇지만... 그러면서도 삶에 있어 우리는 누군가의 '정서적인 지지'를 받으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결과 없이 온전히 지지하고 믿어주기란 어려운 현실이다. 현대인들이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고 혼자를 추구하는 것도 일종의 본인을 지키려는 방어기제일 것이다.


대한민국 청년들을 보며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는 빈곤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한다. 청년들이 방황하며 여행을 떠날 때 나는 그들과 다를 거라고 다짐하며 걸어갔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넓은 세상에 나와 비슷하게 사는 사람이 어디 없겠는가. 다 비슷한 고민을 가지며 나와 비슷한 길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모두에게 가끔은 이야기를 털어놓는 상담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공감대가 조금은 더 커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대들에게도 상담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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