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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개인 Jul 29. 2023

친절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맵문집 0004|


젊은 층에게 인기 좋은 핫한 동네에 있는 큼직한 와인바였다. 길 가다 괜찮아 보여 들어간 곳이었는데 알고 보니 온라인상에 호평의 리뷰가 꽤나 쌓인 곳이었다. 일차가 아니었기에 적당한 안주와 와인을 고르고 마주 보고 앉았다. 가로길이는 쭉 뻗은 롱다리처럼 길었던 반면 세로 길이는 일반 테이블의 1/3도 안 되는 이 가게에서 가장 높은 테이블이었다.  


세로 길이가 일반 테이블의 1/3도 안 되는 탓에 팔을 반만 뻗어도 반대편에 앉은 그의 팔꿈치가 손가락 끝에 닿았다. 평소보다 더 좁아진 간격 때문이었을까, 그와 나의 시선은 조금 더 다정했다. 가격 보고 적당하게 고른 와인은 생각보다 달달했다. 혀끝이 아닌 뇌가 달달해지는 맛이었다.


입으로는 안주와 와인을 음미하고 귀로는 가게에서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멜로디를 음미했다. 귀 안으로 들어오는 안주는 혀 끝에서 느껴지는 알코올보다 나를 더 감성적으로 만들었다. 처음 듣는 노래였고 멜로디가 마음에 들어 나중에도 꼭 듣고 싶어 노래 찾기 어플을 켰다. 주위 소음 때문인지 여러 번 시도했음에도 곡 정보가 잘 찾아지지 않아 온몸으로 아쉬움을 토로했다. 바로 그때 좁고 긴 테이블 위에 검정 글씨가 적힌 사각형 포스트잇이 조용히 놓였다.


포스트잇 위에 적힌 건 그와 나에게 와인을 가져다주신 직원분의 글씨였다. 그리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는데 노래를 찾지 못해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셨는지 방금 나왔던 노래라며 포스트잇에 제목과 가수를 적어 주셨던 것이다. 내가 직원분이었다면 나는 잠시 망설였을 것이다. 내게 직접적으로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괜히 먼저 포스트잇을 건네면 오지랖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망설이다 결국 펜을 들지 않았을 나다. 


그도 이와 같은 고민을 잠깐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그가 선택한 행동은 나에게 고마운 일이었다. 나에게 보여준 그 친절한 용기가 불현듯 떠올라 헤어진 연인과의 시간이었음에도 나는 쓴다. 전 연인과 나눴던 대화는 이제 기억나지 않지만 그의 용기는 점이 되어 마음속에 남아 있다.


모든 이에게 표면적인 친절을 행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누구에게나 친절하지는 못하다. 모든 이에게 친절할 필요는 없다는 것과,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으로 보일 필요는 없다는 것과, 무엇보다 내가 원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친절함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많은 이들이 나에게 내어준 용기에 힘을 조금 보태고 싶다.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고,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아프지 않아서 고맙다고, 가르쳐줘서 고맙다고, 나눠줘서 고맙다며 용기 내어 친절을 베풀고 싶다. 나의 작은 용기가 누군가의 하루 중, 인생 중, 잠시나마 따뜻하고 달달한 점으로 기억될 수 있다면 더욱더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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