맵문집 0005 |
"또 언제 잃어버렸어?"
"아 잃어버린 지 오래됐는데 버티고 버티다가 만든 거야. 근데 이것 봐라? 요즘 주민등록증 사진 핸드폰 찍은 셀카로도 가능하다? 진짜 잘 나왔지?"
"오? 진짜? 봐봐, 어 진짜 잘 나왔다"
지난주 주말 유자차와(엄마) 나눈 대화다. 또 언제 잃어버렸냐는 유자차의 말을 시작으로 그다음 우리가 주고받을 대화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안 들어도 들은 것 같은 잔소리는 생략하고 싶어 유자차의 물음에 대답하며 바로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화제는 주민등록증 사진. 방어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우리 대화는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예전에는 주민등록증을 재발급받으려면 최근 6개월 이내 찍은 실물 증명사진을 들고 동사무소로 갔어야 했는데 지금은 가이드라인에 맞추기만 하면 집에서 핸드폰으로 찍은 셀카 사진으로도 온라인에서 재발급 신청이 가능했다. 주민등록증이 다 만들어졌다는 문자를 받으면 찾으러 한 번만 가면 된다. 동사무소를 두 번 가지 않는 것도 좋았지만, 제일 좋았던 건 돈을 들여서 쓸 곳도 없는 증명사진을 찍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블로그에 내가 했던 편한 방법을 공유하고 싶어서 새 글쓰기를 눌렀는데 갑자기 예전에 물건을 잘 잃어버려서 혼나고 우울했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온라인으로 민증 재발급 신청하는 방법은 나중으로 미루고 오늘은 글이 쓰고 싶어졌다.
내가 중학생 때, 부모님이 맞벌이셨기 때문에 학교가 끝나면 혼자 열쇠로 문을 따고 집으로 들어가야 했다. 우리 집에는 도어록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침에 열쇠를 깜빡하고 등교하는 날이나 열쇠를 어디선가 잃어버린 날에는 가족 중 누군가가 빨리 오기를 기다리거나, 주인집 아주머니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열쇠를 빌려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유자차에게 항상 '왜 이렇게 물건을 잘 못 챙기냐고, 한두 번도 아니고'라며 귀에 딱지가 앉도록 혼나곤 했다. 그런 일이 잦아질수록 원망할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도 그런 내 모습이 싫었다. 근데 성인이 된 지 벌써 10년이 넘은 지금도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고 온전히 지켜내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어느 순간부터는 오늘 아침까지 내 가방 속에 있던 휴대폰, 지갑, 립스틱들이 마치 본래 내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물건을 잃어버려도 속상해하거나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는 경지에 다다랐다. (단, 무척이나 의미가 있는 물건은 예외다.)
성인이 되기 전에는 열쇠를 잃어버리면 유자차에게 받은 돈으로 열쇠를 다시 맞춰야 했고, 교통카드로 쓰라고 줬던 유자차 명의의 신용카드를 잃어버리면 유자차가 직접 카드사에 전화를 걸어 귀찮은 분실신고와 재발급을 해줘야 했다. 신용카드 분실 및 재발급 역시 한 두 번 있는 일이 아니었고 또.. 오늘도.. 분실에 대해 운을 떼야하는 날에는 집으로 가는 발걸음과 마음이 너무 무거워서 스트레스도 받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도어록이 달린 집에서 살고 있고 매일 챙겨야 했던 구릿빛 열쇠 따위는 없어진 지 오래다. 그리고 지금 내 카드지갑에 있는 체크카드와 신용카드는 모두 내 명의의 카드이기 때문에 전화 한 통이나 휴대폰 어플 클릭 몇 번이면 유자차에게 분실에 대해 운을 떼지 않고도 얼마든지 카드를 재발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무료고 빠르면 하루 만에 카드가 직장으로 배달된다. 정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스스로가 '잃어버림'에 익숙해지고 무뎌진 게 좋은 건 아니니까 요즘에는 친구의 조언대로 교통카드는 핸드폰 케이스에 무조건 끼워두고 사용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잘 지키고 있다. 언제까지 갈지는 잘 모르겠지만... '잃어버림'에 낯설어지기 위해 애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작은 것부터 내 것을 지키는 훈련이라고 생각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