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미가 가시질 않는다.
호텔에 들어선 뒤로 이틀째 시체놀이를 했다. 심지어 달콩이도 마찬가지. 강아지도 우주에서 멀미를 한다는 게 신기하면서 미안했다. 우리는 축 늘어져서 서로 부둥켜안고 버텼다.
아까운 시간을 허송세월하기 싫어서 이것저것 뒤적거렸다. 호텔에는 다양한 책자와 영상 자료가 많았으니까.
‘이 호텔은 짓는 데 얼마쯤 들었을까?’
가장 궁금했던 것부터 찾아봤다. 유서 깊은 명소에는 그럴싸한 연표가 있듯, 이곳도 꽤 다사다난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었다.
▶1960년대
미국의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먼저 착륙했다. 구소련 사람들은 경쟁에서 패배하자 좌절을 겪었다. 그들은 차라리 다른 방법으로 미국과 경쟁하려 했다. 우주에서 오랫동안 체류하는 방법을 연구했고, 이윽고 자신들의 우주선이 너무나 비좁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970~80년대
소련은 고심 끝에 우주정거장을 띄우게 됐다. 처음에는 10평짜리 원룸 크기의 원통 하나를 올렸는데, 차츰 자신감이 붙었는지 여러 개를 이어 붙이기 시작했다. 그것을 미르 우주정거장이라 불렀다.
▶1990년대
미르의 건설 도중 소련이 망했다. 하늘에는 짓다 만 골조가 흉물스레 떠다녔고, 보다 못한 다른 나라들의 도움으로 겨우 완성되었다. 허망한 우주 부동산 개발이었다. 그 뒤로 국제우주정거장이 만들어지면서 미르는 사라졌다.
톰 행크스가 출연한 영화 <터미널>이 생각난다. 주인공이 뉴욕에 도착할 무렵에 나라가 없어져서 졸지에 오도 가도 못하고 공항에 갇혀 사는 이야기다.
이와 비슷한 일이 그때 일어났다. 미르에 남아 있던 마지막 소련 우주비행사 한 명은 도중에 나라가 사라지자 몇 달간 지구로 돌아오지 못했다. 결국, 독일의 도움을 받아 새로 생긴 러시아로 돌아왔다. 우주에서 국적이 뒤바뀐 희귀한 사례였다.
이곳은 예전 우주정거장들의 먼 후손인 셈이다. 안내서에 따르면 그랬다.
소련이 개발했던 장치가 아직도 버젓이 쓰인다고 한다. 궁금했던 비용에 관한 이야기도 슬쩍 살펴봤다. 여기 호텔을 짓는 비용은 안 나와 있지만, 2011년에 완공된 국제우주정거장의 비용은 자세히 적혀 있었다. 실내 면적으로 따지면 122평짜리 우주정거장 짓는 데 천억 유로, 이걸 우리 돈으로 대충 환산하니까… 평당 1조 원!
강남 아파트 따윈 댈 게 아니다. 아무리 건축비가 내려갔어도 이 호텔은 분명히 세상에서 가장 비싼 부동산일 것이다.
“달콩아, 우리 지금 세상에서 젤 비싼 곳에 투숙한 거야. 그러니까 자꾸 벽을 긁지 말라고. 누가 보면 어떡해?”
여행 상식 #3 : 우주호텔의 구조, 높이와 궤도
여기 나오는 우주호텔은 한쪽 끝에서 끝까지가 30m 길이다. 그런 길쭉한 구조물 두 개를 십자로 겹쳐놨고, 풍선처럼 부풀린 내부 공간은 폭이 겨우 7m에 불과하다. 이곳에 서른 명 남짓한 여행자와 승무원이 거주한다.
우주호텔은 400km 고도에서 남위 50도~ 북위 50도를 오가며 하루에 지구를 15.6회 돈다. 지구에서 우주선을 타고 우주에 나가기까지는 10분이면 충분하지만, 실제 우주호텔에 도착하려면 발사 후 대략 대여섯 시간이 걸린다. 지구를 몇 바퀴 돌면서 서서히 접근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