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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내리는창가 Aug 18. 2023

원시 대자연에서 문명의 품으로

떠나볼까요, 아이슬란드? - 여행 9일 차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레이캬비크이다. 가는 길에 제법 긴 터널을 지나게 된다. 원래는 아이슬란드에서 유료도로가 두 곳이었는데 그중 한 곳이 최근에 무료가 되었다고 하는데 아마 이 터널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본다. 휴게소에서 쉬어 갈 수도 있다. 아이슬란드 외곽지역에는 제대로 된 휴게소를 찾기가 힘들다. 어쩌다가 주유소에 딸려 있는 작은 식당이 나오는 경우가 있지만 대체로 다음 마을에 진입을 해야 편의시설을 갖춘 곳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대도시 인근 지역이라 그런지 꼭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 같이 대형 주차장에 카페테리아, 편의점, 기념품 가게에 아웃도어 매장까지 갖춘 휴게소가 있었다. 이런 시설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이슬란드는 인공적 시설을 배제하고 자연보호에 진심인 나라이다. 

이날은 토요일이었다. 레이캬비크 근처에 오자 시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차량이 줄지어 있었다. 길게 늘어선 차량 행렬을 보니 이제 정말 문명의 세계로 돌아왔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드디어 레이캬비크에 도착을 했다. 여긴 여행을 시작하는 첫날 하루 머물렀던 곳이니 내겐 분명 낯선 곳이었다. 그런데 다시 돌아온 레이캬비크가 왜 그렇게 친숙하게 느껴졌던 걸까? 한동안 오지만 떠돌아다니다 보니 나도 모르게 문명이 그리워졌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돌아온 레이캬비크는 시내부터 둘러볼 생각이었다. 할그림스키르캬 근처에 주차를 하면 시내 투어는 도보로 할 수가 있다. 그런데 토요일 낮이라 주차할 곳을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주변을 몇 바퀴 돌다가 결국 숙소로 향했다. 숙소가 시내에서 멀지 않아서 거기 주차를 하고 걸어오는 게 주차 해결의 최선의 방법이었다. 체크인 가능 시간이 아직 남아 있어서 차만 주차하고 곧바로 시내로 향했다. 숙소에서 얼마간은 한적한 주택가가 이어진다. 사실 이런 곳이 관광지는 아니지만 우리 같은 사람에겐 이런 곳도 훌륭한 관광자원이다. 소위 유럽감성이란 걸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길가에 고양이가 휴식을 취하고 예쁜 조경으로 장식한 따뜻한 토요일 오후의 한적한 유럽 골목길. 맘속에 평화와 휴식이 깃든다. 조금 더 걸어가면 할그림스키르캬가 보이기 시작하고 그때부터는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교회만 보고 걸어가면 되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들른 곳은 할그림스키르캬 전망대 였다. 원래부터 갈 계획이긴 했지만 우선 화장실에 들러야 했기 때문에 먼저 찾아갔다. 그런데 그런 이유로 교회에 간다면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당황스러운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안내판이 하나 세워져 있다. ‘이곳에는 화장실이 없습니다.’라고.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단지 화장실에 가기 위해 할그림스키르캬에 들어갔을지를 생각하면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비싼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가는 전망대에는 화장실을 하나 설치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사실 거기에도 사정은 있다. 내가 입장권을 살 때 매표소는 되게 한산했는데 전망대에는 사람들이 붐볐던 걸 생각하면 전망대에 얌체 관광객들이 다수일 것이다. 그러니 교회를 이해해 줘야 한다. 

고층 건물이 많지 않은 레이캬비크에서 할그림스키르캬 전망대는 최고의 전망대이다. 전망대에 들어갈 때는 조심해야 한다. 임산부나 노약자, 심신 미약자는 큰 일 날 수 있다. 입구가 천장에 걸려 있는 종 바로 아래인데 내가 들어가는 순간 종이 울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엄청 큰 종소리를 들었을 때 정말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 전망대에서는 시내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사방팔방으로 탁 트인 시내 전경이 기분까지 시원하게 만든다. 하르파와 선 보이야저, 티외르닌 호수 등 유명 관광명소가 가까이에 위치해 있는 걸 확인할 수 있고, 레이캬비크를 감싸고 있는 바다 건너편 산의 모습도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보였다. 무지개 거리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가는 동선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도 있다. 할그림스키르캬에서 북쪽으로 유명한 레인보우 거리가 이어지는데 그 길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바둑판 모양으로 촘촘하게 중심가가 형성되어 있었다. 다음 종이 울릴 때까지 여유롭게 풍경을 보며 기다리다 종소리를 한번 더 듣고 내려왔다. 

곧바로 레인보우 거리로 갈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화장실이 문제였다. 우리가 찾은 해결책은 바로 보너스마트! 가까운 곳에 보너스마트가 있었는데 레인보우 거리와는 반대 방행이었다. 그래도 5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곳이어서 그곳에 가긴 했는데 마트 안에서도 화장실을 찾을 수는 없었다. 화장실만 해결하고 나가는 여행객들 때문에 여기도 화장실은 없는 듯했다. 다행히도 길 바로 건너편에 여행자 안내센터가 있었다. 구세주를 만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구세주는 야박했다. 여긴 공중화장실이 없으니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바에 들어가서 음료를 사 마시라는 것이다. 

어디를 가야 할지 가게를 물색하고 있던 중 눈에 띄는 가게가 하나 있었다. 아이스크림 가게! 여행을 오기 전 친구 녀석이 아이슬란드 가면 꼭 아이스크림 사 먹으라고 돈을 주는 것이다. 아이슬란드에서 아이스크림이라니. 그 녀석 다운 발상이었는데 정말 아이스크림 가게가 거짓말처럼 우리 앞에 떡 하니 나타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닌가! 화장실도 해결하고 친구 주문도 수행하고! 일본인이 운영하는 예쁜 아이스크림 가게. 난 주인의 발음을 알아듣기가 힘들었는데 여기선 아이들이 나보다 더 잘 알아듣고 주문을 했다. 신통방통한 일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가게에도 화장실은 없었다. 대신 옆에 붙어있는 술집에 가면 화장실을 쓰게 해 준다는 것이다. 아이스크림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옆가게에 들어가니 점원이 흔쾌히 쓰게 해 주었는데 문제는 사장이었다. 저쪽에서 점원과 나의 대화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고 있던 그는 내 앞을 가로막고서는 무슨 일로 왔냐기에 화장실을 가려고 한다고 하니 단호하게 나를 내쫓아 버렸다. 실패한 내게 아이스크림을 건네주며 주인은 할그림스키르캬 바로 옆에 공중 화장실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반가우면서도 허무했다. 여행자 안내센터에서는 왜 공중화장실을 알려주지 않았을까? 아이스크림 가게 사장은 왜 이제야 공중화장실을 알려줄까? 뭐 어쨌건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다. 

거기서 할그림스키르캬까진 대략 3,4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 느긋하게 아이스크림을 맛보며 천천히 걸어갔다. 문제를 해결한 후 먹는 아이스크림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하지만 나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공중화장실이 있다고 알려준 그곳에 공중화장실은 없었다. 아무리 봐도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방법은 한 가지뿐. 숙소로 가는 것이다. 더 이상 지체했다가는 위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숙소에 가서 볼일을 해결하고 다시 시내 관광을 하러 나왔을 때 그제야 그곳에서 공중화장실을 발견했다. 거기에는 분명히 크게 WC라고 표시가 되어 있긴 하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모습의 공중화장실만 애타게 찾던 나에게 그것은 화장실이라고 인식되지가 않았다. 길옆에 예전의 공중전화 부스같이 생긴 게 하나 덩그러니 서 있는데 누가 이걸 화장실이라고 생각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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