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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Oct 10. 2022

나의 중력

에세이

어린 시절의 나는 걷는 걸 어색해하곤 했었다. 항상 어디서나 누군가가 날 지켜보는 것만 같아서 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정확히 걸으려고 노력했다. 그런 나는 가끔 발을 헛디뎠고 왼발과 왼팔을 같이 내밀었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일 게 뻔했다. 나는 그럴수록 더욱 나를 신경 썼고 도보 옆 매장 유리에 비친 나를 보며 걷기를 연습했다. '거울 속의 나는 완벽해야 한다.'라는 주문은 나를 더 광대처럼 보이게 만들었고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과 휴대폰 속 카메라를 들여다봤다. 그때의 나는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 나와는 달리 자기애가 가득한 사람들이 있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과 자기애가 가득한 사람. 아주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 같지만 두 부류는 완전히 다르다.


 당연한 말이지만 자기애는 자신을 특별히 여기는 데서 시작한다. 각 개인은 자신의 감각에 갇혀 있다는 특수성 때문에 자신의 감각정보를 매우 특별히 여긴다. 그런 모든 감각 정보를 받아들이는 '나'라는 존재는 얼마나 특별한가? 가슴이 터질 듯 설레는 감정과 찢어질 듯 아픈 이별의 고통, 살갗을 파고드는 타인의 날카로운 시선. 이 모든 것들이 지시하는 나는 무대 위가 아닌 관객석에 있음에도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자기애는 삶을 지속하게 만들지만 간혹 스스로 중단시키게도 만든다. '나'라는 특별함은 나를 고귀하고 사랑스럽게 만들면서 간혹 참을 수 없도록 천박하고 소름 끼치게 만든다. 나의 아름다움과 추악함 모두 자기 자신을 특별히 여기는 데서 온다니 무서운 일이지 않은가?


 자기애가 강한 사람인 나는 주변의 모든 사물과 사람을 나에게로 끌어당겼다. 나는 보이는 모든 것들을 내 손에 접합하려 하고 입에 댈 수 있는 건 모두 입에 대보려 했다. 그런 중력 작용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어딜 가나 모든 이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것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다. 하지만 언젠가 아이는 성장을 하고 손과 입으로 타자와 세계를 자신에게로만 끌어당기는 일을 그만둬야 한다. 그러나 만족을 모르는 자기애 강한 인간은 블랙홀과 같아 도통 가득 찰 줄을 몰라 그 일을 그만두질 않는다. 자기애는  강해지기만 할 뿐 차오르지 않는 것이다. 내가 그랬다. (어쩌면 여전히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게 어른이 되면 세계는 그에게 경고를 던진다. ‘너의 중력이 너무 강해서 가까이할 수 없어.’


 반면으로 자기애로 가득한 사람들이 있다. 사실 속으로는 세상 어디에 그런 사람이 있겠냐만은 하고 생각하지만 가끔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자기애가 가득해서 더 이상 팽창하지 않고 타자와 세계를 삼키지도 않는 유한한 세계에 무한히 관심을 가지는 인간. 자기에 대한 확신 때문에 두 번 확인하지 않는 사람. 내가 본 것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 걸음걸이를 신경 쓰지 않는 사람. 그의 중력은 사실 꽤나 강해서 눈을 뗄 수 없지만 전혀 거슬리지 않는 사람. 아이 같으면서도 어른스러운 사람. 이렇게 나열하고 나면 완벽한 인간 같아서 어딘가에는 흠이 있을 거라 생각하게 되는 사람. 그리고 조용히 그 흠을 인정하고 마는 사람.


 나는 이런 사람이 참으로 신기하고 한편으론 미운 마음까지도 든다. 자연스러운 질투다. 인간적이지 않은 인간에게 드는 고약한 인간적인 마음.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자기애로 가득 차서 타자와 세계를 자기 내면으로 집어삼키지 않아도 되는 사람.


 어느 날 나의 중력은 조금씩 느슨해지기도 하고 차가워지기도 했다. 삶의 무게는 어느 날 각 개인에게 맞춰 조금씩 가감되나 보다. 적응하나 보다. 집어삼키고 손에 쥐려고만 했던 습관은 차츰 줄어들고 타자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을 시작한다. 진정으로 세계와의 대화가 시작되고 흙밭을 일궈내 그 안에 사랑의 싹을 움트게 만든다. 쏜살같이 흐르던 시간도 이제 제자리를 찾아간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간혹 두려워한다. 어느 날 나의 중력이 당신을 삼킬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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