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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쓸모’만 따지면 절대 못 한다.

세상은 계산기보다 열정으로 움직인다.

by 조슬기

“자격증 따서 어디다 써요?”


아마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일 것이다. 어디다 쓰느냐고? 사실 나도 모르겠다. 보통 직접적으로 일상생활에 가장 많이 쓰이는 자격/면허를 꼽으라면 운전면허증이겠지만 난 뚜벅이니 운전면허증조차 쓸 일이 없다. 그럼 대체 뭐 하러 따는 것일까? 과연 나는 의미 없는 짓을 하는 것일까?


흔히 이런 말들을 한다.


“학교에서 배운 거 사회에 나오니 하나도 쓸모가 없더라.”


이 말을 들은 수많은 사회인들은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솔직히 반대다. 학교에서 배운 것이라 하면 보통 국어, 영어, 수학 같은 교과를 말하며 국영수 배워봐야 아무 쓸모없다는 것이 그 사람들의 생각일 것이다.


내 조부모 세대라면 학교를 못 다닌 분들도 많았던 세상이었지만, 내 부모세대만 생각해 봐도 초중고 12년은 학교를 다녔을 것이다. 12년간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한번 생각해 보자.


국어시간에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가?


고등학교 시절만 떠올리면 문학, 비문학, 수능모의고사 밖에 기억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더 과거로 가보자. 일단 한글부터 배웠을 것이다. 자신은 하늘이 내려준 천재라 태어날 때부터 한글은 물론 외국어를 다섯 개쯤 알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면 모든 사람은 태어나서 말하는 법을 먼저 배웠고 그 다음에 학교에 가서 문자를 배우고 더 나아가 글 쓰는 법, 논리적으로 말하는 법 등을 배웠을 것이다. 12년간 학교에서 배운 국어적 능력을 바탕으로 회사에선 상사에게 보고서를 제출하고, 기획서를 작성하여 결재를 받으러 갈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아닌데? 난 회사에서 상사한테 깨져가며 글 쓰는 법 배웠는데?”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당신은 학창 시절에 배웠었다. 그저 그 당시에는 시험 위주로 공부하느라 하기 싫었던 일을 억지로 했었고, 시험이 끝나면 휘발성으로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을 뿐이지만 나도 모르게 뇌에 각인됐었지만 떠오르지 않던 옛 기억이 회사라는 환경에서 필요에 의해 다시 떠오른 내용과 추가적으로 배운 내용이 합쳐져 현재의 보고서라는 결과물로 탄생한 것뿐이다.


즉 자신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지만 이런 식으로 ‘나도 모르게’ 예전에 배운 무언가가 내 삶에 녹아들어 있다는 이야기다. 그 ‘쓸모없는’ 무언가가 필요에 의해 내 삶에 나타나는 경우는 흔하다. 그저 배운 내용이 언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스스로가 인식을 하지 못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학교에서 배운 건 쓸모가 없다고 느끼는가? 그렇다면 회사에서 한글 공부부터 다시 해야 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이렇듯 우리의 삶 속에서 과거의 지식이 빛을 발하는 순간은 의외로 많다. 다만 그 빛의 근원이 과거에 자신이 배운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누군가는 나의 이런 생각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철저히 계획된 ‘쓸모 있는 일’만 하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인생이 어디로 갈지 모르기에 오늘도 아무 쓸모없어 보이는 일에 기꺼이 몰두한다.


“쓸모? 몰라요.”

“근데 꽤 재밌거든요.”

“그래서 그냥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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