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도 점호를 이렇게 해?” 외국어 구사자=만능 전문가라는 착각
대한민국에서 군필자라면 처음 입대했을 때 군대 용어를 몰라 당황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강원도 102보충대에 입대한 첫날, ‘세면백’을 지급받고 조교의 물품 확인을 받는 자리에서 그 충격을 맛보았다.
“링밴드, 있습니까? 없습니까?”
“요대, 있습니까? 없습니까?”
“바클, 있습니까? 없습니까?”
정체불명의 단어들이 쏟아지는데, 무슨 뜻인지 알려주지도 않고 무조건 “있습니다!”라고 답해야 하는 분위기였다. 군대에서 쓰이는 용어란 미필자에겐 생소한 말투와 암호 같은 단어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만약 군에 외국어 구사자가 신병으로 들어온다면? 그 곤란함은 배로 불어난다.
“중대장이 일본어로 뭐야?”
“사격 개시를 일본어로 해봐.”
“전역 축하한다, 이건 또 뭐라고 해?”
심지어 질문하는 사람도 정답을 모르면서 마구잡이로 묻는다. 한국어로도 평소 말해본 적 없는 표현들을 외국어로 대답하라니, 답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진짜 황당한 일은 자대 배치 이후였다. 내가 일본어를 한다는 사실이 이미 알려진 상태에서, 행정보급관이 점호가 끝난 직후 내게 물었다.
“막둥아, 우리는 이렇게 점호를 하는데, 일본군도 점호를 이렇게 하냐?”
이 질문은 지금도 내 인생에서 가장 황당했던 질문 세 손가락 안에 든다. 나는 그저 일본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사람일 뿐인데, 어느새 일본군의 군사 제도를 꿰뚫고 있어야 하는 전문가가 되어버린 것이다. 모른다고 했다가는 괜한 비난을 받을 상황이라 그저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갔다.
그 후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일본이 왜 섬나라냐?’ 같은 지리학 질문부터 역사, 문화, 정치까지, 일본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다면 모조리 내 몫이 되었다. 고작 외국어를 안다는 이유 하나로.
게다가 “외국어를 잘한다 = 머리가 좋다”라는 인식까지 더해졌다. 그래서 내가 어떤 일을 못하더라도 항상 이런 말이 따라붙었다.
“너는 일본어 잘하잖아. 머리도 좋은데 왜 탄도 계산을 못해?”
“왜 선임들 이름을 하루 만에 못 외워?”
“왜 용접을 못하냐?”
내 주특기와 아무 상관 없는 일들이었지만, 사람들은 ‘쟤는 일본어 하니까 뭐든 다 잘할 거야.’라는 이상한 법칙을 나에게 적용했다.
군대만큼 황당한 경험을 쌓은 곳도 없었다. 외국어 구사자로서의 삶이 늘 순탄했던 건 아니지만, 군대는 그중에서도 차원이 달랐다. 별의별 질문과 억지 기대치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곳이었으니까.
혹시 이 글을 읽는 독자 중 곧 군대를 가야 할 외국어 구사자가 있다면, 진심으로 조언하고 싶다. 군대에서는 절대로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지 말라. 당신이 일본어, 영어, 중국어 중 무엇을 잘한다고 말하는 순간, 어느 간부나 선임이 다가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넌 외국어 잘하니까 머리도 좋잖아. 그럼 이번엔 기후 위기 해결책을 한번 생각해봐.”
군대에서는 외국어 하나로도 순식간에 만능 학자, 과학자, 전략가가 되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