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곧 자신을 정의한다.

24년 11월 7일. 오전 8시 21분.

by 와온

누군가를 알려고 할 때, 그 사람이 속한 집단들을 살펴보면 그 사람을 직접 만나지 않고서도 꽤 많은 부분을 파악할 수 있다. 결혼정보회사의 회의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처럼 들리는가? 그러나 나는 한 사람이 하루 동안 보내는 삶과 그 대부분의 행동이 그 사람이 속한 집단(공동체)의 성격에 묶여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행동들은 그 사람의 가치와 사상으로 이어진다. 당신은 국가, 사회, 공동체, 직장, 학교, 가족이라는 사슬에 옭아매진 존재인 것이다.


그 사람이 어느 사회에 속하는지, 어떤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지, 누구와 어울리는지 살펴보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변화는 연속적이기에 이는 현재 상태를 단면으로 잘라 본 것에 불과하다.


만약 당신이 피로 이어진 가족을 등지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당신의 본질과 사상의 중심에는 가족의 영향이 가장 클 것이다. 수많은 다양한 사람을 마주할수록 나는 깨닫는다. 나는 부모의 그늘에서 자라난 아이이며, 사회에 나가는 순간, 그 수많은 부모의 영향을 받은 아이들이 서로 부딪히며 살아간다는 것을. 그렇게 부딪히고, 각자가 속한 공동체의 기준에 따라 깎여나간다. 결국, 완전히 개인적인 ‘나’에 대한 정의는 쉽게 내릴 수 없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만큼 우리의 삶이 우리가 보통 인식하는 것과 달리 온전히 주체적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는 말을 하고 싶다.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쌀농사와 과거 품앗이 문화에서 비롯된 집단주의적 경향은 우리를 안전한 공동체라는 강한 울타리 안으로 더욱 깊이 끌어들인다.


이런 기준에서, 1인 가구로 살아가는, 연애하지 않고 결혼하려 하지 않는 현시대의 청년들은 그들이 공동체를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이는 기존에 그들이 속한 거대한 공동체가 강한 기준과 잣대로 자신들을 옭아매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는 내가 속할 공동체를 바꿀 수 있는 자유 또한 주고 있다. 경제와 자본주의 경쟁의 논리에 따라 다분화된 공동체를 선택하건,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공동체를 만들건, 자유라면 자유이다. 따라서 개인이 주체적으로 변화하는 방법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바라보고, 판단한 뒤, 그 공동체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 순간 당신의 삶 또한 바뀌게 될 것이다.


공동체는 나를 성장시킬 수도, 나를 묶어놓을 수도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다양한 공동체를 넘나들었다. 이러한 경험은 내가 다양한 관점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당신만의 공동체를 만들어라. 당신을 옭아매고, 엮으며, 쉽게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그리고 그것이 사랑인지 증오인지 깨닫기 어려운 공동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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