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로부터 내려온 이 지랄 맞은 DNA는 양날의 검이다.
어린 시절 별명이 '차돌'이었다는 할아버지.
젊은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할아버지는 자신이 맡은 일은 야무지게 해내었다.
이 DNA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직업, 전문성에서는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디테일에 꽂혀 그 능력을 몇 배나 더 발휘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하지만 인생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나 시기, 사람에게 꽂혔을 땐 반대로 나를 찌르는 칼이 된다. 어느 날은 갑자기 '폭탄'이 되어 감정이 폭발하게 만들고, 기분을 한없이 가라앉게 하는 '추'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칼은 할아버지를 거쳐, 엄마를 통해, 나에게도 맞닿아 있다. 우리의 삶에 주어진 이 양날의 검은 어떻게 잡을 것인지가 숙제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할아버지에게로부터 온 이 칼의 손잡이를 만들어가는 인생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가는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말이다.
이 칼의 위력은 대단해서 가끔은 감당이 안 된 엄마가 스스로를 고통의 불구덩이에 던진 것인지, 아니면 우리를 위한 경고로 미리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무슨 형태였든 간에 엄마의 이 기나긴 고통의 여정은 나와 막내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다.
특히 골치 아픈 내 일도 남 일처럼 우스개 소리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해 주었다. 인생은 비를 피하는 법이 아니라 비를 맞은 채 춤을 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말처럼 말이다. 어쩌면 이 모든 순간은 영혼을 단련시키는 과정이었다고 믿고 싶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유약한 나의 영혼은 상처와 성장을 반복해 가고 있다.
이런 방법을 해봤다가, 저런 방법을 써봤다가. 시행착오를 통해 나는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내 마음에 출입국 관리소를 설치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마치 비자 없이는 각 나라를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내가 도장을 찍어주기 전까진 인생의 어떠한 시련도 내 영혼에, 허락 없이, 어떠한 부분도 닿을 수 없게 하는 것이다. 내 영혼이 상처 입는 것은 내가 그렇게 허락했기 때문인 것이다.
불법 이민자, 만료가 된 비자는 나가게 하고, 허락받은 것들만 들어올 수 있도록.
물론 내 마음의 국경 수호대는 아직도 허술한 면이 있어 어떤 상처는 여전히 자유롭게 오가기도 한다. 게다가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것들, 귀여운 동물들은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다.
하지만 전혀 다른 것들을 같이 품어 살다 보면 언젠가 괜찮아지는 날도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그 무엇도 소용없는 날이 있다.
어떤 삶이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지도 모른 채 지금 지나고 있는 구간도 벅찰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내 영혼의 모든 기쁨과 충만함, 마땅히 누려야 할 것들을 불시에 찾아온 어떠한 불행으로 인해 놓치지 않을 것이다.
'힘든 이 시간도 결국 지나가리라.'
혹여나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는다고 하여도, 이 시련은 결국 날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가 줄 것이라고.
이 일을 통해 내가 배워야 할 것들, 깨달아야 할 것들, 그리고 그저 묵묵히 견뎌내서 지나가야 할 것들이 지나가고 나면 언젠가 끝은 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다른 누군가를 내 고통으로 인해 상처 주고 싶지 않을 뿐.
이 깊은 겨울의 한가운데서,
나는 아무도 무너뜨릴 수 없는 여름이 내 안에 살아 있음을 깨달았다.
- 알베르 카뮈 -
그래, 나는 아무도 무너뜨릴 수 없는 여름을 맞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