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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지 Jun 26. 2024

내 마음속의 '불안이'

고사미의 앵자이어티 VS 맹모의 앵자이어티

평소와 다름없다고 생각했는데 함께 산 지 20년이 된 남편이 조심스레 묻는다.


"당신 pms.. 야?"

"어...! 어떻게 알았어?"


pms는 'premenstrual syndrome'의 약자로 생리 전증후군을 말한다. 나는 pms가 유독 심한 편인데, 육체적인 증상보다는 정신적인 증상이 주를 이룬다. 심한 짜증과 불쾌했던 과거로의 회귀가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요즘은 젊었을 때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방심은 금물. 갱년기가 다가오는지 요 기분이란 녀석이 아주 종잡을 수가 없다. 그런데 나보다 더 난감한 건 우리 남편.


와이프는 갱년기가 올락 말락 하는 상태요, 첫째 딸은 고3 스트레스에, 둘째 딸은 초절정 사춘기를 지나는 우리 집은 남편에게 있어 버뮤다 삼각지대나 다름없단다. 남편 말로는 살얼음을 걷는 기분이라나.


그런데 나의 증상을 단순히 갱년기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게, 뭔가 설명할 수 없는 불안하고 조바심 나는 기분의 변화가 요즘 들어 내 핸드폰의 문자 폭발과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학원가 수업들이 기말고사 내신모드로 바뀌고, 그와 동시에 기말 후의 수강신청을 안내해 주는 시기이다. 뿐만 아니라 대학들의 수시 논술고사 전형과 일정이 발표되고 있고, 그와 동시에 학원과 대학들의 입시 설명회가 하나둘씩 열리고 있다. 그 수많은 정보들이 (심지어 같은 정보가 여러 곳에서) 마치 깔때기처럼 나의 핸드폰으로 쏠리며 문자폭탄을 투하하는 중인 것이다.  


그뿐인가. 당장 2025년 입시부터 의대 정원 확대로 인해 분주해진 대학가와 학원가의 설명회는 또 이렇게 많은지. 그 문자 하나하나가 주옥같은 정보이겠지만, 이미 우리 아이와 상관 없어진 대학과 과들도 있고, 무엇보다 미처 전공을 정하지 못한 아이의 입시에 어느 설명회를 다녀와야 하는지가 제일 막막하다. 그런데 그 와중에 '이걸 놓치면 늦어! 안돼!!' 하고 외치는 문자들을 보고 있으려니 내심 짜증이 솟구쳤던 것이다. 어떤 선생님의 수업을 신청해줘야 할지 아이와 상의가 끝나지 않았는데, 신청하려고 했던 강사의 '서바이벌 모의고사'가 벌써 마감되었다는 문자가 오니, 오늘은 말 그대로 맹모(?)의 앵자이어티(anxiety)가 폭발했던 것이다.


(사실 맹모라고 할 수는 없지만, 수험생 엄마를 칭하는 용어가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는 것 같아 차용해 본다. 다만 맹자엄마의 맹모가 아닌, 입시 달리는 맹렬한(?) 엄마라는 뜻에서.)


인사이드 아웃2에서 맹활약하는 ‘불안이’


얼마 전에 인사이드 아웃 2를 보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네 가족이 모두 가서 보고 싶었는데, 첫째는 영화 볼 시간이 없고, 둘째는 친구랑 보겠단다. 수험생과 사춘기가 그럼 그렇지 하며 남편과 둘이 오붓하게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이게 뭐라고 마음 한구석에서 또 봇물이 터져버렸다. 그냥 우리 첫째와 둘째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랄까. 정확히 말하자면 열세 살 라일리의 머릿속이니 우리 둘째의 경우와 비슷하겠지만, 수험생의 '불안'의 정도가 사춘기의 '불안'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아, 그냥 그 나이를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힘겨울 두 아이들이 생각난 것이다.


사춘기 아이들의 불안이 별일 아닌 것에 스스로 부여한 부정적 가능성의 극한을 체험하는 것이라면, 수험생의 불안은 당장 몇 달 후에 다가오는 수능, 그러니까 인생을 결정지을 수도 있다는 그 시험에 대한 불안의 최고조를 체험하는 것일 테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내가 폭주를 잠재울 수도 없는 일이니, 살짝 엿본 아이들의 마음을 자극하지 않게 노력하는 것이 최선일 수밖에. 그렇게 남편이 딛는 살얼음을 함께 딛어야지, 하고 마음 먹는데 문득 궁금해졌다. 갱년기를 맞이하는 내 마음은 지금 어떤 감정이 활약하는 중일까 하고.


오십쯤 살아낸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정말 다양한 감정이 다양하게 숨을 쉬고 있을 거다. 물론 같은 기쁨의 감정도 한 가지의 기쁨이 아닐 것이고 슬픔도 한 가지의 슬픔은 아닐 것이다. 수만 가지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그리움, 사랑과 후회, 질투와 시샘, 미움의 감정들. 혹은 이 모든 감정이 뒤섞인 미묘한 감정까지.


그 오만가지 감정 중에 내 오십즈음의 컨트롤 보드를 장악할 감정은 과연 무엇일까.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 개인차가 있겠지만,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그 감정이 연민 같은 사랑이었으면 좋겠다. 경쟁심과 성취욕을 불태워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젊은 시절을 내려놓을 수 있는 여유가 있기를. 그 마음 안에 불안이나 우울, 욕심이나 욕망 미움 질투 시샘 같은 피폐한 감정도, 오로지 나만을 위하는 이기심도, 그리고 한평생 주위를 돌아보지 않는 교만과 자만도 들어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그런 본능만 남은 감정이 아닌 고차원적인 감정이 내 감정의 콘트롤타워의 주인이면 좋겠어서 말이다.


그래서 연민. 그런 따뜻하고 인정많고 선한 마음이라면, 그렇게 내 주변 사람들 모두 너그러워진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갱년기 감정의 기복쯤이야 가볍게 넘길 수 있지 않을까.


어쨌거나 오늘은 앵자이어티가 폭발한 바람에 남편에게 버뮤다 삼각지대를 선사하고 말았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고 정리를 했다. 나는 맹모(孟母)도 아니요, 맹목적 엄마도 맹렬한 엄마도 아니므로 마감된 선생님 말고 다른 선생님 수업을 등록하는 것으로 끝내기로. 지난번과 같은 사태의 발생을 막기 위해 날짜와 시간만은 꼼꼼히 더블 체크했으니 일단은 됐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에 이까짓 고3엄마가 뭐라고 앵자이어티를 넘어 우울까지 소환되었을까. 인생에는 그보다 값진 순간에 느껴야 할 수만 가지 소중한 감정들이 도사리고 있는데 말이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아름다운 감정의 활약을 기다리는 것일 뿐 다른 것은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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