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쇼, 펑크
한 번쯤은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은 했다.
러닝 시작한 지 채 한 달도 안 되었는데 이리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지만.
눈이 많이 와서 살얼음이 얼은 도로를 도저히 뛸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오늘은 헬스장도 문을 닫는 일요일이다. 쳇. 젠장. 마음은 달리고 싶은데.
왜 나를 막는 것인가? (기분이 좋습니다. 좋지 않습니다. 정신 챙겨!)
<2025. 1월 5일, 일요일> (20일 차)
- 날씨 1도, 걷기
- 걸은 시간 4시간
- 운동거리 7.8km
- 소모칼로리 360kcal
- 걸은 장소 : 화서역 -> 수원역, 여기저기
눈이 많이 왔다.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봤지만 달릴 방법이 안 떠오른다.
남편이랑 등산화 신고 걷기로 타협을 본다.
운동량을 채울 만큼 많이 걸어야 용서(!)가 될 거 같아서 많이~~ 걸었다.
같이 걸어준 남편에게 심심한 사과와 고마움을 전하는 바이다.
총 걸었던 시간을 모아 모아 런데이가 기록한 칼로리도 모아 모아 하루치 운동량으로 끼워 넣는다.
러닝에 강박을 갖고 싶진 않다. 인간적이라고 말하면 너무 너그러운가.
<2025. 1월 6일, 월요일> (21일 차)
- 날씨 -2도
- 운동시간 35:00
- 운동거리 3.5km
- 소모칼로리 188kcal
- 뛴 장소 : 아파트 주변
헬스장으로 갈까 하다가 그냥 동네로 뛴다. 샥즈 첫 착용 하는 날. 너무 좋다.
장비가 하나씩 늘어난다. 버즈가 귀가 아프고 자꾸 빠져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선물로 사줬다.
겉으론 툴툴 대며 운동 나갈 때마다 뾰로통하더니 은근히 잘 챙겨준다. (고맙소!)
퇴근하고 저녁을 먹고 소화 좀 시켰더니 금방 밤 11시다. 마음이 급해서 부랴부랴 스트레칭을 해본다.
인적이 확 줄었고, 드문드문 가로등 불빛이 전부다. 슬로우 조깅으로 뛰면서 사람이 보이면 갑자기 반갑다.
그러다 점점 가까워지면 긴장이 되었다. (왜 이럴 땐 잔인한 범죄영화가 생각나는가)
또 멀어지고 다시 혼자가 되면 또 다른 게 무서워진다. 흰 옷을 입은 머리 긴 언니들?
시간이 밤 12시가 다 되었다는 머릿속에 정보가 그런 공포를 더 증폭시키는 거 같다.
퇴근길에 우연히 후배를 만났다. 요즘 유치원생 아들을 키우면서 내 책을 재밌게 읽고 있다면서 근황을 알려준다. 헤어져 집으로 오는 길에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p.s : 운동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니 그제야 밤 11시임을 깨닫는다. 엇, 시간을 잘못 봤었네.
혼자 쫄아서 뛰었던 한밤중의 러닝에 피식 웃음이 났다.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네.
<2025. 1월 7일, 화요일> (22일 차)
- 날씨 -7도
- 운동시간 38:00
- 운동거리 4.38km
- 소모칼로리 246kcal
- 뛴 장소 : 서호공원 주변
기온이 뚝 떨어진대서 껴입었더니 덥다.
오늘은 한 치 앞만 보며 달리는 러너에서 눈에 뵈는 게 없는 러너가 추가되었다.
마스크를 쓰고 안경을 포기한다. 마스크와 안경은 친해지기가 어렵다. 안습.
뛰고 나서 보니 마스크 안쪽이 미스트 뿌린 듯 촉촉하다. 피부도 땅김 현상 없고 좋네.
땀이 안나는 체질이었는데 지금은 땀이 많아졌다. 나이 탓인가 체질이 바뀌었나.
그나저나 10킬로를 뛸 수 있는 날이 과연 올까?
새로운 습관이 드는데 21일이면 된다는데, 나는 아직인가?
여전히 뛰는 게 힘드는데. 무겁게 뛰고 온 날은 이런 의구심이 가시지 않는다.
<2025. 1월 8일, 수요일> (23일 차)
- 날씨 -1도
- 운동시간 38:00
- 운동거리 4.91km
- 소모칼로리 283kcal
- 뛴 장소 : 아파트 주변 멀리까지
오늘도 한 치 앞만 보며, 눈에 뵈는 거 없이 달리는 러너다. 런데이 마지막 8주 차 첫 번째 시간.
20분 연속으로 안 쉬고 뛰기가 첫 등장한다. 20분? 그 까짓거, 껌이지.

달릴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뛸 거 같지만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을 두서없이 하게 된다.
내일 한파주의보라는데 괜찮을까? 하는 걱정을 미리 사서 하기도 하고.
'마트나 편의점에서는 1+1 행사도 하고 덤으로 주는 이벤트도 종종 한다'는 생뚱맞은 주제까지.
1+1, 2+1 행사도 덤도 없는 정직하기만 한 러닝.
어떤 일이 되었든 노하우가 생기고 요령이 생기면 수월하게 넘어가는 부분이 있다.
러닝은? 얄짤없다. 내 두 발로 뛴 거리만 에누리 없이 기록한다.
이 세상 어떤 것보다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다. 그래서 참 고되다.
매일의 러닝은 자기와의 싸움이다. 오늘도 나와의 싸움을 걸고 이기고 돌아온다. 굿잡
가는 길에 계란 좀 사가자. 반찬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