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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Dec 25. 2023

미국 시골집에서 보내는 두 번째 크리스마스


차분하고 고요하게 내려앉는 크리스마스의 이브 아침이다.



잔잔한 크리스마스 연주곡을 틀어놓고, 크림을 잔뜩 섞은 부드러운 커피 한 잔과 향초를 곁에 둔다. 온갖 향기가 공기를 가득 채운다. 블라인드를 걷고 창밖을 바라보며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스팟에 자리를 잡는다. 부엌 식탁을 홈 카페처럼 꾸몄더니, 가장 애정 하는 장소가 되었다.

   아침의 고요함이 주는 편안함에 빠져든다. 블라인드를 열고 창밖을 멍하니 바라본다. 미국인들은 가족과 고향의 품으로, 외국인들은 각자의 모국 혹은 여행지로 다 떠나고 텅 빈 동네가 눈에 들어온다. 오고 가는 감정들을 살며시 바라본다. 외로움, 쓸쓸함이 가장 먼저 들른다. 괜찮다. 마음에 들르는 어떤 손님도 거부하지 않기로 해본다. 이윽고 고요가 주는 차분함, 평안함도 다가온다.



   그간 여행이나 새로운 경험, 사람들과의 시끌벅적한 만남이 선사하는 짜릿한 흥분에 익숙해져 있지는 않았나 생각해 본다. 고요한 고독의 시간을 오랜만에 즐겨본다. 해외 생활은 특히나, 이렇게 덩그러니 남겨지는 연휴에 외로움의 파도들을 부드럽게 넘는 것이 생존의 핵심이 되지 않나 생각해 본다. 어차피 사람은 다 외롭다.


   그간 읽고 싶어 저장만 해두고 읽지 못했던 책들을 살며시 펼쳐본다. 이번에는 행복함이 다가온다. 이 감정을 통해서 비로소 이 시간을 얼마나 염원했는지 깨닫는다. 아마도, 2주 뒤 개강을 하면 이 장면과 이 시간을 가장 그리워할 것이라는 직감을 받는다. 외롭다고 불평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즐기고 저장해두자…….



   이번 연휴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소설 <꿀벌의 예언>을 완독하고, 지금은 에리히 프롬의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으로 넘어와서 읽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제목부터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는지, 정말 배우고 싶은 부분이다.



  내용도 좋은데, 가장 인상 깊은 구절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이다‘라는 부분이었다. 삶을 사랑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삶을 사랑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모습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공통되는 테마는 ‘살아있는 것’들과 연결되고 귀하게 여기는 것, 그리고 성장과 배움에 가치를 두는 것이다. 이번 연휴는 홈 카페에서 삶을 사랑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데 시간을 쏟아보려 한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니, 집을 꾸미는 것에 자연스레 관심이 많아진다. 미니멀리스트라 집이 안 그래도 단출한데, 데코레이션 마저 없으면 크리스마스인지 뭔지도 모르고 지나갈 것만 같았다. 계절마다 그 계절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을 경험하기 위해 애쓰고, 특별한 날은 특별한 기분으로 보내려고 노력하는 것도 내가 삶을 사랑하는 한 방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크리스마스 느낌이 물씬 나는 조화와 아름다운 유럽의 크리스마스 그림으로 구성된 500피스 퍼즐, 루돌프 캐릭터 장식들을 사보았다. 화병에 하나하나 꽂아보는데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더라. 꽃꽂이라고는 배워본 적도 없어서 다소 체계는 없지만, 마음 가는 대로 한 번 구성해 보니 기분이 썩 좋았다. 아래 사진은 완성작이다.


   다 큰 어른이에게 산타클로스는 없지만, 스스로가 얼마든지 산타가 되어줄 수는 있다. 열심히 천방지축 학부생들 가르쳐 번 돈으로 소박하게나마 셀프 크리스마스 선물을 건네본다. 가장 좋아하는 야생 동물인 사슴이 엄청 귀엽게 그려진 오너먼트다. 너무 귀엽다……. 만족스러움에 한참을 바라보고, 사진도 찍는다.


각자의 방식으로 모두 포근하고 즐거운 연휴 보내길 바라며, 별거 없는 미국 시골에서의 두 번째 크리스마스를 마저 차분히 즐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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