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청춘의 시작은 대학교 졸업한 이후부터
버텨낸다는 말이, 뭔가 행복하지 않은 상태에서 억지로 한다는 느낌에 ‘버틴다’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하루하루 내가 일상에서 함께하는 이것들이 없었다면 과연 이 삶을 버틸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든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나의 취미라고 한다.
대학교, 스무 살부터가 어른이 됨으로써 ‘청춘’ 이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20대만이 즐길 수 있는 나의 청춘을 위해 하루하루, 낭만을 쌓아왔다. 그리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깨달았다. 청춘은 지금부터 구나. 정말 아무 곳에도 소속되어있지 않은, 아니 온전히 모든 것을 나의 힘으로 사회에 나와서 시작하는 지금부터가 진짜 청춘이구나. 대학생 때는, 청춘의 낭만 한 방울 정도를 느끼며 즐길 수 있는 나이이다.
하지만, 행복만 있지 않을 것이라는 ‘청춘’ 은, 그래서 진정한 청춘은, 나 하나의 인격체로 시작될 때 청춘이 시작되었다. 새내기와 스무 살은 어른이 되었다는 타이틀만 가진다. 청춘이 대학교 이후에 시작되는 만큼, 졸업하고부터가 정말 어른의 시작점이지 않을까.
‘인생의 정답’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하지만, 살면서 확신이 들지 않는 순간들이 있을 때가 있다.
죽기 직전까지 아무 정답은 없고 앞으로 어떤 미래에 대해 모두가 100%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확신보단 믿음이. 100%라는 스스로에 대한 나의 믿음들이 언젠간 내가 원하는 대답을 불러올 것이라는 것을 장담할 뿐.
‘집중’
나의 시간을 보내기에 불필요한 것들을 없애고 정말 필요하고 집중해야 할 것에 시간을 보내야 할 때.
그것을 인지하고 정말 필요하고 중요한 시간으로 사용하고 할애해야 할 것. 선택과 집중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지만 가장 어렵기도 하다.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 노력하고 끊임없는 생각으로 고찰하고 되돌아보는 것 자체가 얼마나 많은 노력인지 모른다. 모든 생각은 그것으로 가치가 있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았을 뿐.’
계산적이고 치밀하게 살지 않고, 그때그때 살고 싶은 삶 살다 보니, 결과에 아무것도 남은 것 같지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사는 게 정답은 아니었던 것인가,
그럴 때마다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이 내려지지가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며 살기 위해서는 정녕 진짜 무언가를 포기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일까.
끊임없이 내가 추구하는 행복도 바뀌기에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달라지지만, 그렇다면 모든 순간에 행복할 수 있는 방향만 쫓으면 되는 것일까.
‘벌써 시간이 이렇게.’
시간은 제한적이고 나이가 먹고 흘러가는 것과 매우 연관이 있다. 사람들이 조급해지고, 불안해하는 것은 이 제한적인 물리적인 한계 때문이다.
나도 사실, 벌써 졸업한 지 1년이 되었다. 따지고 보면, 그 시간마다 최선을 다했고 그렇기에 그냥 시간으로 보이는, 수치를 귀담아들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1년이나 지났네 가 아닌, 1년밖에 안 지났네..
‘빈틈 그리고 새로운 시작 3월.’
지금까지 내가 빈틈없이 27년을 살아왔었구나. 그리고 이렇게 빈틈없이 살다 보면 나에게 결과는 자동적으로 제공되는 건 줄 알았다. 이렇게 살다 보면 나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끝이 자동적으로 부과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마지막까지 내가 힘을 다해 만들어가야 하는 과정이었음을 깨닫는다.
3월은, 개강 신학기 준비. 등 나에게 항상 새로운 학기를 위한 준비를 하는 시기였던 것 같다. 이런 시기에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이 처음이다. 처음으로 나에게 빈틈이 생겨, 더 이상 한 학기를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시기가 왔다. 그리고 저들이 부럽지도 않다. 너무 다 해보고 반복되는 저 새로움은 이제 나에게는 더 이상 새롭지가 않다. 그리고 이제 나에게서 점점 멀어지는 저들의 새로움이 좋다. 이제 나는 모두 경험했기에 아쉬움도 미련도 없이 다른 새로움을 찾고 싶다.
배가 고파도, 먹고 싶은 게 있어도 하고 싶은 것을 다 하지 않으려는 스스로에 대한 인내.
참을성을 기르고 싶어졌다. 내키는 대로 하면 행복할 때도 있지만 신기하게 결과가 행복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리고 무언가를 참으면 다른 어디선가 보상을 받는 느낌이 세게 든다.
그러한 욕구를 인정하고 감내해 보겠다. 어떤 결과가 있을지. 그때가 좋았지 않았어도 그저 좋은 것만 기억해라. 미화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안 좋은 것을 생각하면 좋았던 순간마저 부정당하는 것은 너무 슬프지 아니한가.
모든 순간이 완벽히 좋고 행복할 순 없지만 그래도 좋은 게 70 프로는 넘을 수 있도록 생각하자.
안 좋은 감정이 더 강하게 남을 수 있지만 실제로 모든 순간들은 생각해 보면 좋은 게 70 프로 이상이다.
그렇게 생각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