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노래를 듣는 순간, 시아의 음색에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개성 있고 호소력 짙은 그녀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가수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한 낯섦과 신비로움이 담겨 있었습니다. 갈라지는 듯한 거친 목소리가 신경을 날카롭게 건드리며 귓속으로 타고 들어왔다가는 이내 폭발하는 고음과 함께 저의 심장에 일격을 가하더군요.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일순간 모든 것이 정지되고 그녀의 목소리만으로 온 세상이 가득 채워진 듯한 느낌을 받곤 합니다. 우리나라 판소리의 소리꾼과 비슷한 창법이라고 해야할까요. 내면의 절절한 고통과 한을 목소리 하나만으로 끌어올려 분출하는 듯합니다. 그녀가 부른 노래들 중에서도 특히 '샹들리에(Chandelier)'라는 곡이 그러합니다. 저는 피아노 버전의 '샹들리에'를 좋아합니다. 그녀와 나 둘만이 있는 텅 빈 공간 속에서 오로지 그녀의 목소리에만 귀기울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샹들리에(Chandelier)'에는 난잡한 파티에서 미친 듯이 술을 마시는 한 여자가 등장합니다. 시아 자신이기도 한 이 여자는 '내일은 없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술잔을 들이키며 환락에 빠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마시는 술은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삶을 붙들고 있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뿐이었지요. 샹들리에를 타고 흔들린다는 것은 만취하여 세상이 온통 빙글빙글 도는 것을 표현한 말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나를 도와달라는 그녀의 외침이 애절합니다. 오늘 밤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다는 그녀의 반복적인 중얼거림이 흔들리는 샹들리에의 불빛과 함께 저의 머리를 어지럽힙니다. 그녀의 바닥을 긁는 듯한 절규가 가늠할 수 없는 고통의 심연을 느끼게 합니다.
이 노래는 뮤직비디오가 엄청난 유명세를 탔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시아의 목소리에 이끌렸던 터라 뮤직비디오는 한참 후에 보게 되었습니다. 시아 자신을 표상하는 단발머리 소녀의 파격적인 안무는 보는 이를 압도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매디 지글러는 11세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춤 실력과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지요. 행위예술에 가까운 이 소녀의 몸짓이 놀랍게도 시아의 노래와 하나로 잘 어우러집니다. 이 노래와 뮤직비디오로 시아는 세계적인 가수로 발돋움할 수 있었지요.
폭발적인 가창력과 뛰어난 작곡 능력,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목소리를 지닌 그녀이지만 무대에서는 본인의 얼굴을 철저히 가리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눈을 가린 그녀의 모습은 노래를 부르는 행위 자체를 한 편의 예술 작품으로 느껴지게 합니다. 그녀의 행동을 단지 내면의 아픔으로 인한 기이한 일탈일 뿐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는 그녀가 심연에서 끌어올린 아름다운 노래로 고통을 치유하는 '상처받은 치유자'라고 생각합니다.
출처 무아
어린 시절의 불안과 두려움, 죽음이 갈라놓은 사랑, 약물과 술에 빠져 흘려보낸 망각의 시간들, 음악가로서의 고뇌,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인한 고통 등 그녀의 삶이 한꺼번에 녹아 있는 것 같은 이 노래를 듣다보면 저도 함께 고통스러워집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알 수 없는 위안도 받게 됩니다. 가슴은 떨리고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지만, 그 안에 선명히 서린 생의 아름다움이 날카롭게 빛나는 순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술의 힘일 테지요. 지금 삶이 힘겨운 이가 있다면 이 노래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제 정신으로는 살아낼 수 없을 것 같은 고통에 절규하는 이 노래가 당신의 찢어진 가슴을 가만히 어루만져 줄 겁니다. 오늘 밤도 잠못 이룬, 생의 절박함에 매달려 있는 그대에게 시아의 시린 위로를 선물합니다.
* 이렇게 시야를 흐리게 할 정도로 거세게 내리치는 빗줄기를 보고 있노라면, 저는 '시아'의 절규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만 같습니다. '슬픔'을 오롯이 슬퍼할 수 있게 해주지요. 저의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