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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Jul 07. 2023

너이기 때문에, 나태주와 정밀아의 '꽃'

인연은 가슴에 박힌 꽃이고 별이다.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 


나태주 시 / 정밀아 노래


예뻐서가 아니다

잘나서가 아니다

많은 것을 가져서도 아니다.

다만 너이기 때문에,

네가 너이기 때문에

보고 싶은 것이고, 사랑스러운 것이고,

안쓰러운 것이고

끝내 가슴에 못이 되어

박히는 것이다.

이유는 없다

있다면 오직 한 가지

네가 너라는 사실

네가 너이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고,

사랑스런 것이고

가득한 것이다.

꽃이여, 오래 그렇게 있거라.



출처  Pixabay


https://tv.naver.com/v/2531146


하염없이 듣고 또 들었던 노래이다. 더는 설명이 필요 없는 나태주의 '꽃'이란 시에 정밀아가 서정성 짙은 곡을 붙여 노래로 만들었다. 정밀아는 따스하고 맑은 목소리로 시종일관 조용히 읊조리듯 노래한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나는 어쩐지 향기로운 꽃보다 밤하늘의 '별'이 떠오른다. 새까만 밤하늘에서 별똥별 하나가 하얀 선을 그으며 떨어진다. 가느다란 한 줄기 빛은 땅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오직 나에게로 향한다. 그 빛은 나의 가슴을 가득 채우고 환하게 밝혀준다. 나는 포근한 빛 한가운데에서 소중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존재들을 떠올려 본다. 꽃이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꽃이  존재들을 말이다. 내게는 꽃이 별이고 별이 꽃이다. 윤동주도 타국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 하나에 추억과 / 별 하나에 사랑과 / 별 하나에 쓸쓸함과 / 별 하나에 동경과 / 별 하나에 시와 /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라고 노래하지 않았던가?


그럼, 나의 가슴에서 향기 나는 꽃이 되고 빛이 나는 별이 되는 존재들은 과연 누구일까? 추억 속에 묻힌 이들도 있고 지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들도 있다. 현재 내 곁에 있거나 없거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가슴속에서 늘 그리움과 애틋함으로 짙게 물들어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왜 그들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가? 이유는 없다. 그저 너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고 소중한 것이고 사랑하는 것일 뿐이다. '너이기 때문에'라는 말 한마디가 시를 읽어도 노래를 들어도 귓가에 계속해서 맴돈다. 이 단 한마디 말이면 모든 것이 다 설명되지 않는가!


출처  Pixabay


엄마? 엄마는 내가 엄마한테 올 줄 알았어?

그럼, 엄마는 처음부터 네가 올 줄 알았어.

어느 날 밤하늘을 보는데 말이야.

별 하나가 유난히 반짝이고 사랑스럽고 예쁜 거야.

저 별을 내게 꼭 보내달라고 하느님께 열심히 빌었단다.

그랬더니?

네가 딱 나한테 와줬잖아.

엄마, 실은 나도 하늘에서 보니까 엄마가 제일 마음에 들었어.

그래서 엄마 아들로 온 거야.

하하하하

너는 엄마가 왜 맘에 들었니?

엄마는 내가 왜 맘에 들었는데?

그냥 너라서. 너라서 좋았지 뭐. 

나도 엄마라서 그냥 좋았어. 


언젠가 아들이 어릴 때 잠자리에서 나눈 대화를 약간 각색한 것이다. 여전히 신비한 동화 속 세계를 믿고 있는 아들은 별이었던 자기와 내가 서로 한눈에 반해 엄마와 아들로 만나게 된 것으로 안다. 근데 이 말은 허황된 이야기만은 아니지 않은가. 아이의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 순간부터 나는 무조건적으로 아들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가장 보고 싶고 소중하고 아름답고 사랑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신기한 것은 이 사랑이 아들에게만 국한되지는 않더라는 것이다. 나는 아이를 낳아 기르기 전에 비해 내 안의 사랑 주머니가 몇 배는 더 커진 것을 느낀다. 비단 자식이 아니라도 존재 자체를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경험은, 우리 안에 숨어 있던 무수한 사랑의 씨앗들이 일시에 싹이 틔도록 만들어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들에 대한 사랑은 남편에 대한 사랑으로, 부모님에 대한 사랑으로, 시부모님에 대한 사랑으로, 벗에 대한 사랑으로, 동료에 대한 사랑으로 넓게 퍼져 나갔다. 더불어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이 더욱 깊어지기도 했다. 이유는 없었다. 너라서 그라서 그녀라서 내겐 사랑하는 존재들일뿐이다. 그리고 나 자신은 그냥 나라서 사랑한다. 굳이 이유를 찾는다면 '인연'이란 두 글자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 줄은 세상인데 이 세상 아무 곳에다 작은 바늘 하나를 세우고 하늘에서 아주 작은 밀씨 하나를 뿌렸을 때 그게 그 바늘에 꽃일 확률. 그 계산도 안 되는 확률로 만나는 게 인연이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교사인 이병헌이 학생들에게 해준 말이다. 이 말을 곱씹으면 인연의 놀라움과 소중함에 겸허해지기까지 한다. 꽃처럼 별처럼 내 가슴에 못이 되어 박힌 이들은 모두 나의 인연이기 때문에 그리 된 것이다.  


'꽃이여, 오래 그렇게 있거라.'  시와 노래의 마지막에 나온 구절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렇게 오래 있어 달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꽃은 언젠가 시들고 말 것이다. 인연도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우리의 바람은 꽃 같은 인연을 언제까지고 내 곁에 붙잡아두고 싶지만 그것은 욕심일 뿐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이미 시든 꽃이나 떨어진 별도 내 가슴속에서는 언제까지나 향기롭게 피어 있고 환하게 빛날 수 있다. '꽃이여, 오래 그렇게 있거라.'라는 말은 네가 나의 곁에 있든 없든 인연이 끝이 났든 아니든, 나는 오래도록 너를 가슴에서 아름답고 소중한 꽃으로 간직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나는 오늘도 내 안에 박혀 있는 못이 된 꽃과 별들을 들여다본다. 이 못은 뽑아내고 싶은 아픈 못이 아니라 영원히 가슴에 박아두고 보고 또 보고 싶은 사랑이다.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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