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쿠니 가오리의 에세이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를 읽었다. 사랑 에세이라지만 그녀의 소설들에서 느꼈던 남녀 간의 애틋함이나 설렘 같은 건 없었다. 조금은 슬프고 어쩌면 지루해진 사랑. 그러면서도 어쩔 수없이 오늘도 몸과 마음이 기대어지고 들러붙게 되는 이상한 사랑! 그것은 남녀 간의 사랑과는 조금 다른 색깔을 지닌 부부간의 사랑 이야기였다. 책장을 덮고 나는 잠시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시시해진 우리결혼에도 나는 대체로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대체로.' 완벽하진 않지만 전반적으로 그러한 상태. 전부는 아니지만 적당히 가득 차 있는 상태를 두고 '대체로'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대체로'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사는 게 인생이다. 언제나 백을 원하는 사람도 있기는 할 것이다. 내 경우엔 젊을 때 유독 그러했다. 무엇을 하든 백이 아닌 것에 대한 갈급함이 늘 따라다녔다. 빈틈은 언제나 나를 흔들리게 했고 불안하게 했다. 하지만 완벽한 사랑도 빈틈없는 행복도 이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수많은 실패와 좌절, 그리고 상처를 통해 배워왔다.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대체로'에 만족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대체로, 나의 결혼은 행복하다.
나를 만나기 위해 밤이고 낮이고 달려오던 남자는 이제 집에 가면 쉽게 만날 수 있는 나를 향해 숨차게 뛰어오지 않는다. 나의 감정 하나하나에 예의주시하던 남자는 이제 일일이 말로 하지 않으면 나의 마음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때로는 말을 해도 못 알아듣거나 적당히 무시하기도 한다. 우리 사이에 축제처럼 펼쳐지던 '아름다운 곳, 맛있는 음식, 낯선 공간'은 사라지고 '익숙한 집, 내가 만드는 밥, 우리들의 냄새가 밴 공간'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에쿠니 가오리가 긴 여행을 가야 한다고 말했을 때 남편의 첫마디가 '그럼 밥은?'이라고 했다는 대목에서 씁쓸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부인할 수도 없었다. 어쩌면 '밥'을 함께 먹기 위해 함께 살고 있는 게 부부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날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나의 결혼은 '대체로' 행복하다.
같은 것을 봐도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 통하는 것보단 어긋나는 것이 더 많은 사람.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 생활방식이 다른 사람. 세상에 대한 가치관이 다른 사람. 애초에 모든 게 그냥 나와는 다른 사람. 그러나 나는 그 다름이 익숙해서 놀라지 않는다. 그가 아플 때, 그가 건강할 때, 그가 화낼 때, 그가 웃을 때. 그의 얼굴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안다. 그래서 어떤 얼굴을 하고 있더라도 놀라지 않는다. 낯설지 않다는 건 그 자체로 내게 엄청난 매력이 되어버린다. 낯설면 두렵고 두려우면 불안하기 때문이다. 나는 적어도 그를 보며 불안해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체로, 나는 그를 믿는다.
우리 역시 처음 만났을 때엔 수도 없이 싸웠다. 싸움의 원인을 한 꺼풀, 한 꺼풀 벗기다 보면 가장 밑바닥에 남는 건 불안이었다. 나는 사랑하지만 믿을 수 없는 상대를 향해 '믿음을 달라. 사랑을 증명하라.'며 무수한 칼날을 휘둘렀다. 그러고는 상대에게 낸 상처를 보고 미안해서 쩔쩔맸고 나에게 난 상처에는 화가 나서 쩔쩔맸다. 내 마음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이별'이란 백지수표를 쉽게 던져버리곤 했다. 상대가 그 백지수표를 받아 버린다면 관계는 끝. 하지만 매번 내가 내민 백지수표를 그 자리에서 박박 찢어버린 남편 덕분에 우리의 관계는 나락 속으로 추락하지 않았다. 어쩌면 대체로, 그가 우리의 관계를 지켰다.
그가 아플 때, 나는 동정심, 의리, 사랑 그중 하나이거나 아니면 그 모든 것인 마음으로 그의 곁을 지켰다. 일상이 무너져가는 삶을 망연히 바라보면서 내 안에 오래 감금되어 있던 '불안'이란 사냥개가 목줄을 끊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함부로 짖고 날뛰며 삶을 짓밟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과 맞서 싸웠다. 이제는 불안과 싸울 수 있을 만큼 강해진 나를 보고 스스로도 놀랐다. 그리고 이번엔 내가 우리의 관계를 지켰다.
그렇게 우리는 오랜 시간을 부부라는 형태로 함께 살고 있다. 그것에 굳이 사랑이란 이름을 붙여도 붙이지 않아도 상관없다. 나는 에쿠니 가오리의 말을 빌려 '들러붙다'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나는 여전히 그에게 들러붙어 있고 앞으로도 들러붙어 있고 싶어 진다. 그가 의존할 만한 대상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믿을 만한 사람이냐 아니냐도 결국 중요하지는 않았다. 내가 그를 믿게 되었고 내가 그에게 의존하게 되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