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솔직하지 못한 편이다. 싫어도 싫다고 대놓고 말하지 못하고 아니어도 아니라고 직접적으로 부정하지 못한다. 솔직함의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음껏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해 버리고 나서는 일그러진 상대의 얼굴에 대고 '스스로 뒤끝 없는 사람'임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도저히 그런 사람들의 행동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할 말을 다 했으니 뒤끝이 없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가 쏜 솔직함의 화살에 맞은 사람은 어찌할 것인가! 어쩌면 그 상처로 평생 동안 고통스러워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에게조차도 대놓고 뭐라고 하지는 않는 편이다. 솔직한 그도 상처는 받을 것이기에. 호불호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나의 태도가 그들 눈엔 음흉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진실로 나는 '솔직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 어느 쪽이 더 나은지를 모르겠다. 물론 악의를 품거나 가식으로 진실을 숨기는 것은 분명히 나쁠 것이다. 하지만 그 밖의 상황에서는 나의 진심을 숨김없이 다 드러내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솔직히'는 미덕도 되지만 '함부로'라는 무기가 되어 상대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근데 어디까지가 '솔직히'이고 어디서부터가 '함부로'일까? 이 지점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함부로'가 될 수도 있잖아요?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가장 어려우면서도 중요한것은 뭘까? 그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일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만난 부모, 자라면서 사귀게 되는 친구, 사랑하는 연인, 긴 세월을 함께 살아야 하는 배우자,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지내는 동료, 수십 년을 키워야 하는 자식까지 인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수많은 '인간'과의 얽힘과 설킴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 인간관계를 얼마나 잘 맺고 아름답게 유지하느냐가 행복한 삶의 필수조건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살면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대체로 '솔직함'을 무기로 휘두르는 사람들이었다. 가족이나 지인 중에도, 학교나 직장에서도 그런 사람은 꼭 있었다. 그들은 내게 솔직했을 뿐이겠지만, 나는 그들의 '함부로'에 상처받았고 아파해야 했다. 각자가 느끼는 언어의 온도는 그렇게나 천지차이인 것이다.
솔직함이 꼭 필요한 때도 있다. 진실을 밝히거나 지켜내기 위해서일 때이다. 나에게 닥칠위험이나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도 솔직해지 위해선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솔직함이 아닌 '나 자신에 대한 솔직함'일 것이다. 거짓을 등에 지고 진실로 향해 나아가기 위한 용기 있는 발걸음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솔직히'가 상대를 향할 땐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나의 말과 행동이 '함부로'로 전락하지는 않을지 고민해야 한다. 모로코 속담에 '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깊다.'라고 했다. 실제로 몸에 난 상처는 세월이 흐르면 아물고 언제 어떻게 다쳤는지조차 기억이 흐릿해지지만, 누군가의 말에 입은 상처는 오래도록 살아서 마음을 끊임없이 새롭게 괴롭히기도 한다. 그래서 타인에 대한 '솔직히'는 늘 조심해야 할 태도인 것이다.
이따금 나도 솔직해지고 싶을 때가 있다. 나의 생각과 감정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마음껏내뱉고 싶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렇지만 그 말들은 결국 내 안에서 잘게 부스러져먼지처럼 흩어지곤 한다. 나는 그 말들이 부서지고 부서져 사라질 때까지 참고 또 참는다. 사실 이렇게하고 싶은 말을 무조건 참기만 하는 것도 문제이긴 할 것이다. 하지만, 진실로 나는 어디까지가 '솔직히'이고 어디서부터가 '함부로'인지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이 끝나지 않는 도돌이표 같은 물음 속에서 나는 오늘도 말을 삼킨다. 적어도 내 말이 누군가에게 화살이나 칼이 되는 것만은 피하고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