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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Feb 14. 2024

도저히, 못 견디지 않을까?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김 OO 찾기' 중이다.

도저히

 - 아무리 하여도.


-힘들게 여기까지 왔잖아.

-그래. 여기까지 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

-그런데 오십이 다 되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게 현명한 일일까?

-현명하진 않겠지. 쉽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해.

-지금까지 대체 몇 번이나 방향을 틀었던 거야?

-꽤 여러 번이었어. 시작은 중고등학교 교사였지. 학교를 나온 후, 수녀원으로 갔어. 하지만 수녀가 되지 못했고 무작정 상경하여 출판사에 들어갔지. 여러 출판사를 전전하다가 직업상담사가 되었고 중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다시 만나기도 했어.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내려오면서 프리랜서 편집자로도 생활했었지. 그리고 다시 시험을 봐서 공무원이 되었고 지금은 휴직 중이야. 그런데 휴직 중에 덜컥 소설가가 되었지. 어쩌면 너무 뜬구름처럼 살아온 건지도 모르지.

-다른 건 몰라도 공무원을 그만두는 게 괜찮을까? 그것도 두 번씩이나? 어리석은 일은 아닐까?

-내가 이루어놓은 것,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놓아 버리고 빈손으로 되돌아간다는 건 매번 두려운 일이었어. 하지만 다른 삶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 유혹을 '도저히' 떨쳐버리기가 힘들었어.

-그럼 이번에도 너는 방향을  거야?


글쎄

도저히, 견디지 않을까?




 살다 보면 '도저히' 참지 못하는 일들이 생긴다. 먹지 않으면 도저히 못 참겠고 지 않으면 도저히 안 되겠고 하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그런 것들. 그런 일들 앞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해왔던가? 반복되는 선택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지금의 나를 본다.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더라도 '도저히' 앞에 항복했던 수많은 순간들을 존중하려 한다.  내가 선택한 직업, 내가 붙잡은 인연, 내가 만들어온 몸, 그리고 그 밖의 많은 '도저히'들이 일궈낸 지금을 말이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 나는 자취방 한가운데 몇 꾸러미 안 되는 짐을 쌓아놓고 밤새도록 고민했다. 다음날이면 집으로 돌아갈 것이었다. 그러면 곧 임용고사를 본 후 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눈에 훤히 보이는 미래가 내 앞에 있었다. 하지만 나는 것이 진짜 길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부모님은 가정형편을 고려해 내가 교사가 되어 집안을 책임져 주기를 바랐다. 나는 그런 부모님의 바람을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다. '도저히'에 굴복한 나는 결국 교사가 되었고 가장이 되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았던 그 길에서 그만 중도하차하고 싶었다. 도저히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내 인생을 찾고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었기에 수녀가 되기로 결심했다. 한 번 굳어진 결심은 '도저히'  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도저히'가 이끄는 방향으로 나는 결혼식날 도망치는 신부처럼 앞도 뒤도 보지 않고 내달렸다.


 그 이후로 내 삶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광야 위에 홀로 내던져것처럼 황량하고 막막했다. 수녀가 되었다면 삶이 달라졌을까? 신에게조차 버림받았다는 죄의식을 품은 채, 나는 앞이 보이지도 않는 길을 계속해서 달렸다. 그래도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나의 떠남에는 언제나 '도저히'의 마음이 깔려 있었기에 간절하고 절박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인터뷰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치유할 수 있는 소설 창작이야말로 그간의 어지러운 혼돈에 종지부를 찍어 줄 열쇠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젠 현실에서의 방황을 멈추고 남은 생을 소설과 함께 한 방향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쓰지 않고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쓰기 시작했고,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도저히'가 이끄는 대로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도저히'를 이겨내고 꺾어버리는 사람만이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생의 승자가 되는 법이라면서.  


 실제로 나는 많은 사람들의 의혹 어린 시선을 받곤 했다. 왜 교사를 그만뒀어? 왜 수녀가 되지 못했어? 왜 거기를 나왔어? 왜? 왜? 왜? 지금 공무원을 그만두고 무명작가의 길을 걷겠다고 하면 또 나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뒤에서 수군거릴지도 모르겠다.  그걸 그만둬?


 그런데 내겐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그건 인생을 지금 있는 그대로 견디는 것이다. 아마도 나는 여전히 꿈을 꾸고 싶고 방황 속에 있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나 같은 사람은 죽을 때까지 떠돎을 멈추지 못할 것이다. '도저히'


 하지만 누구에게 자기만의 '도저히'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 대상이 서로 다를 뿐이다.  음식을, 옷을, 여행을, 사랑을 도저히 참지 못하는 사람들도 지 않은가? 그 밖에도 '도저히'의 대상은 무한하고 다양하다. 그동안 살아온 경험을 토대로 내린 결론은, 나는 나의 정체성을 찾아가고자 하는 갈망을 '도저히' 참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오래전부터 '김 OO 찾기' 중이었던 것이다. 그다지 성과가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영원히 참나를 찾지 못한 채로  인생이 나버릴 수도 있다. 그래도 '도저히'가 이끄는 곳에 진실의 열쇠가 숨어 있으리라는 희망을 저버릴 수가 없다. 내가 이 길을 걷지 못하게 막아버린다면 나는,


 도저히, 견디지 않을까?


 당신의 '도저히'는 어디에 있나요?


출처  무아

#도저히

#부사

#공감에세이

#참지 못하는 것

#자아찾기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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