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고 짙은 어느 날, 나는 한참을 나무 밑에서 서성거렸다.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있자니 쉬이 발길이 떨어지질 않아서였다. 나뭇가지에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던 나뭇잎들이 눈에 담을 새도 없이 순식간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낙엽은 바람에 휘휘 날리며 춤을 추는 듯하다가도 느닷없이 투둑투둑 바닥을 들이받으며 발밑으로 추락했다.
짧은 찰나에 벌어지는 나뭇잎의 스러짐은 보는 이의 마음을 한없이 스산하게 했다. 나는 그런 낙엽에 마음이 붙들려 '하염없이' 그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돌아누운 낙엽의 서늘한 침묵 앞에서 나는 낙엽을, 아니생사를 건너가고 있는 무언가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렇게 어느 날 문득, 온 세상에 '하염없이'라는 말만이고추잠자리 떼처럼 맴돌고, 그 앞에서 캄캄하게 얼어붙어버리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면 나는
하염없이, 너를 바라보고 있어.
'하염없이'라는 말은 속수무책의 상황을 떠오르게 한다.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면서도 관성적으로 반복하게 되는 마음의 습관을 나타내는 말로, 그야말로 어찌할 수 없는 강력한 힘에 자꾸만 이끌리는 것이다. 의지를 벗어나 저절로 흘러가버리는 '하염없는' 마음에 우리는 종종 지배당하게 된다. 또 시름이 깊은 나머지 아무런 생각이 없이 멍해져 있는 상태일 때도 '하염없이'라는 말을 쓴다. 어찌 됐든 두 경우 다 '하염없이'는 이성이 조금 마비되어 있는 상태이다.
'하염없이'라는 말과 자주 붙어 다니는 말이 있다. 그것은 '바라봄'과 '기다림'이란 말이다. 특히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기다리는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기다리며 살고 있다. 기차를 기다리고, 사랑하는 이와의 약속 시간을 기다리고, 맘 편히 쉴 수 있는 주말을 기다린다. 이러한 기다림들은 우리에게 소소한 기쁨을 준다. 기다리면 반드시 이루어지거나 이루어질 가능성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기차는 제시간에 올 것이고, 약속한 사람은 눈앞에 나타날 것이며, 주말도 어김없이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아무런 기약도 없는 기다림을 한다. 실현가능성을 가늠할 수조차 없는 기다림, 누구 하고도 약속하지 않은 막연한 기다림! 기약이 있는 기다림은 기다리는 순간순간을 환희와 설렘으로 가득 차게 한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기다림이 때론 견디기 힘든 고통이 되기도 한다. 근데'하염없는 기다림'이란 어쩐지 후자에 더 어울리는 말 같다.
그럼아무런 기다림 없는 삶은 어떠할까? 지금 눈앞에 보이는 현재만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면, 삶은 한없이 시시하고 누추해질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끊임없이 삶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으려 한다. 그런데기다림이야말로 기다리는 동안의 삶을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만들어 준다. 또 기다릴 게 많은 사람은 지금이 순간이 더 행복할 수밖에 없다.
기다림의 필수 요소는 '희망'이 아닐까? 우리가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희망'을 가슴속에 품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희망이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기에 기다리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노해 시인의 말처럼 한 줌의 '희망'을 품고 기다림을 살아내는 것은 그 자체로 삶의 뚜렷한 의미이자 목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희망을 품은 기다림은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말 것이다.
꽃필 날
나태주
내게도
꽃필 날 있을까?
그렇게 묻지 마라
언제든
꽃은 핀다
문제는
가슴의 뜨거움이고
그리움, 기다림이다.
다만 얼마나 열렬히, 얼마나 간절히, 얼마나 하염없이 기다릴 수 있느냐가 문제일 것이다. 당신의 기다림은 무엇인가? 간절하고 하염없는가? 희망을 품은 뜨거운 기다림이 인생의 꽃을 활짝 피우게 한다. 아니 어쩌면 꽃이 활짝 필 때까지 '하염없이' 우리를 기다릴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그 기다림을 행복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