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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Feb 21. 2024

비록, 내 몸은 약하지만

그 또한 받아들여야만 한다.

비록

 - 아무리 그러하더라도


 며칠 째 잠만 자고 있다. 자도 자도 끝도 없이 잠이 쏟아졌다. 비몽사몽간에 일어나 밥을 먹고 약을 삼키고 또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베트남에서 돌아온 게 금요일 새벽이고 지금은 월요일이다. 하지만 좀처럼 몸 상태가 정상으로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이국 땅에서의 흥분과 감흥을 뒤로한 채 병마와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많이 아파서인지 꿈속에 돌아가신 아버지도 찾아왔었다. 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나는 언어를 잃어버렸다. 며칠째..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았다가 포기하고 눕기를 여러 번. 세상은 흘러가는데 나 홀로 모든 게 멈추어버린 상태. 그 상태가 끔찍하게 싫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내 몸이 엉망이 된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베트남 공기에 적응하지 못한 게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엄청난 매연 속에 며칠을 시달렸더니 호흡기 염증이 심각해졌다. 내가 여행을 간 기간과 베트남의 ''이라는 명절의 연휴 기간이 겹쳤다. 그래서인지 가는 관광지마다 어마어마한 인파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 오토바이들, 습한 공기에 들러붙어 사라지지 않는 매캐한 연기.. 그 속에서 내 호흡기는 병들었다.


 나는 특히 목이 취약한 사람이다. 교사 시절에도 몸이 고단하면 목이 제일 먼저 쉬었고 강행군을 하면 목소리가 아예 나오질 않았다. 말을 해야 하는 숙명을 타고난 교사이기에 목을 낫게 하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했다. 목구멍 안을 바늘로 찔러서 피를 쏟게 하는 병원에 간 적도 있었다. 피를 토했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그저 교사를 그만두고 말을 하지 않으니 병도 서서히 나아갔다.


 하지만 이렇게 공기 때문에 병이 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서울에 살 때도 더러운 공기 때문에 종종 후두염에 시달리긴 했지만 이 정도로 극심하진 않았다. 대한민국에 도착하는 순간, 맑고 청량한 공기가 어찌나 반갑던지... 매연이 별로 없는 우리나라는 얼마나 살기 쾌적한 곳인지를  새삼 깨달았다.


 하지만 모두가 나처럼 병들진 않을 것이다. 환경에 취약한 것 역시 내 육체가 지닌 한계 탓이리라.


 비록, 내 몸은 약하지만..

 그 또한 받아들여야만 한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다. 엄마 말에 의하면 나는 팔삭둥이쯤으로 태어났다고 다. 술에 취한 아빠가 밥통을 집어던지는 바람에 놀란 엄마의 양수가 터져 버렸고 뱃속에 있던 나는 아직 때가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느닷없이 세상에 나왔다. 이런 경우 애를 낳았다기보다는 애가 떨어졌다고 표현하는 게 더 어울릴 것이었다. 놀라면서 태어났기 때문일까? 나는 평생토록 작은 일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일이 잦았다. 때로는 곁에 있는 가족한테조차도 소스라치게 놀라서 상대를 무안하게 하곤 했는데, 놀람의 정도가 상식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잘 놀라는 것은 심장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심장병은 가족력까지 있으니 약한 심장이 언제 내 삶을 위협하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어린 시절, 아픈 엄마와 가출이후로 음식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물에 만 밥과 시어 빠진 김치뿐이었던 밥상이다. 먹을 것이 없기도 했지만 언제부턴가는 입맛이 극도로 없어져 버렸고 심한 기침을 달고 살았다. 병원 치료도  받지 못하때였던지라 나의 병세는 점점 심각해져 갔다. 엄마가 녹용을 넣은 한약을 지어 먹여  나를 살려냈다고 했다.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병원에서는 폐결핵을 앓은 흔적이 폐에 상처로 남아 있다고 알려주었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지만 용케도 살아남았던 것이다.


 살면서 육신이 내 삶의 발목을 붙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참으로 많았다. 건강 관리야 자기 하기 나름이라고들 하지만 내 노력이나 의지로 바꿀 수 없는 한계가 느껴지곤 했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생사를 다툴 만큼의 중병 없이 잘 살아왔고 그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현재 큰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육체가 마음대로 말을 듣지 않아 괴로운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육체적 고통과 한계는 누군가로부터 공감을 얻기가 어렵다. 소화가 잘 되는 사람은 만성 소화불량인 사람의 고통을 알지 못하고, 잠을 잘 자는 사람은 불면에 시달리는 사람의 고통을 알지 못한다. 겪어보지 않고는 쉽게 알 수 없는 게 다른 사람의 육체적 아픔인 것이다.


 육체의 강건함은 어쩌면 인생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자신에게 부여된 삶의 조건들이 어떻든 간에 받아들이고 살아야만 한다.  헬렌켈러는 ‘세상이 비록 고통으로 가득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는 힘 역시 세상에 가득하다.’라고 했다. 어떠한 생의 조건이든 우리 안엔 그것을 견디고 극복해 나갈 힘 또한 내재되어 . 비록 그것이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이따금 육체의 한계에 짓눌려 우울하고 주눅이 들 때도 있다. 활력이 넘치고 강인한 육체를 지닌 사람들이 한없이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신은 모두에게 공평할 것이다. 강점이 있으면 약점도 있고 약점이 있으면 강점도 있기 마련이지 않을까? 며칠 만에 혼미한 가운데  글을 썼다. 나의 에너지가 미치는 한계를 스스로 알기에 더 이상의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한다. 나에게 주어진 신의 조건을 불만 없이 받아들이자고 겸허히 다짐해 본다. 척박한 가운데에서도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작은 생명의 씨앗을 찾아내어 소중히 지키고 불씨를 지필 것! 그것이 진정한   시작이자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는 도약이 되어 것임을 믿는.


 비록, 내 몸은 약하지만..

 그 또한 받아들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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