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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Feb 24. 2024

아무튼, 가족이지 않을까?

애매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

아무튼

 - 의견이나 일의 성질, 형편, 상태 따위가 어떻게 되어 있든.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어 만화책 삼매경에 빠져 있는 아들, 거실 창가에 앉아 유튜브 영상에 몰입하고 있는 남편, 테이블에 앉아 이제 막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기 시작한 나. 이렇게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세 명이 함께 모여 사는 우리 집. 아들이 갑자기 거실로 뛰쳐나오자 황급히 휴대폰을 끄고 책을 읽는 척하는 남편. 그걸 멀리서 바라보며 쿡 하고 웃는 나. 우리 가족의 낯익은 풍경들.

 

 가족이란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을 말하며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른이 넘어서까지 나의 가족은 부모님뿐이었다. 오로지 혈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선택이 불가능한 운명과도 같은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 가족은 혼인과 혈연이 뒤섞인, 선택적이고 유동적인 관계로 변화되었다. 특히, 남편은 전적으로 선택과 의지에 의해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어쩌면 어른이 된 후에 형성한 가족이란 울타리는 언제든 해체될 수 있는 나약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부부란 내가 얼마나 강하게 지키고 부여잡느냐에 따라 그 생명력이 유지되는 것일 뿐, 죽을 때까지 변치 않을 견고한 관계는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아무튼'이란 부사를 마음속에 떠올렸을 때, 번쩍하고 가슴에 불꽃이 튄 것은 '가족'이란 말이었다. 자식도 부모도 남편도 아닌 그저 한 덩어리로서의 가족!  애매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


 '아무튼 시리즈'가 꽤 유명하다. 이제는 하도 많아서 아무튼 뒤에 뭐든지 다 붙여 놓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내게는 이유불문하고 무조건적으로 좋은 것이 좀처럼  떠오르질 않는다. 좋으나 싫으나 미우나 고우나 만사 제쳐두고 '아무튼' 소중한 것이 있다면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아무튼, 가족이지 않을까?




 그동안 우리 집을 스쳐 지나간 반려 생물의 역사는 이러하다. 두 마리의 병아리, 하프문베타라는 열대어, 민달팽이 두 마리, 네온테트라라는 형광빛 물고기, 암수 장수풍뎅이 한 쌍. 현재는 모두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나는 그 생명체들이 죽을 때마다 절대로 다시는 아무것도 키우지 않겠다고 단언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아들은 어김없이 새로운 반려 생물을 들이자고 집요하게 요구했다. 아들이 궁극적으로 키우고 싶은 것은 강아지나 고양이이다. 하지만 나의 단호한 거부에 다양한 다른 생명체들이 차선책으로 우리 집에 들어왔고 짧은 시간 함께 지내다 떠나갔다.


 아들은 이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애완 로봇을 들이자고 한다. 자기가 그간 모은 돈 전부를 들여서라도 강아지 로봇인 '루나'를 사겠다고 나섰다. 홍보 영상을 보니 꽤 귀엽긴 했다. 하지만 기계이다 보니 움직일 때마다 소음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나는 아파트 층간소음 문제를 들면서 구입을 보류하자고 했고 아들은 실망감에 펑펑 울었다.


 솔직히 나는 식물이든 동물이든 로봇이든, 가족을 만드는 것 자체가 두렵고 버겁게 느껴진다. 평생을 혼자 사는 성직자가 되고자 했었고, 결혼한 후엔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딩크족을 자처하기도 했었다. 그런 내가 남편과 아들을 곁에 두고 살게 된 것만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가족을 만들고 가족의 외연을 넓히는 것에 유독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내가 생각하는 가족에 대한 사랑은 주어야 하는 사랑이며, 희생과 책임을 사랑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지나치게 무겁고 부담스러운 마음이 나를 오랜 세월 겁쟁이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우연 같은 필연으로 결혼을 아이까지 낳으면서, '가족'의 의미를 예전보다는 좀 더 가볍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가볍다는 게 하찮다는 의미가 아니라,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비장함 같은 것에서 조금은 놓여났다는 의미이다.


 그래도 여전히 무겁기만 한 사랑. 순수한 기쁨보단 부담스러운 책임감에 숨부터 막혀 오는 사랑. 그것이 내겐 가족에 대한 사랑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키우며 사는데 나는 왜 그 일이 그토록 어렵고 두렵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책임지지 못할까 봐 미리부터 먹고 뒷걸음질 치 소심한 사람이 되어버렸을까? 내게도 가족에 대한 사랑이 조금 더 편안하고 가벼워지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은 전적으로 마음에 달린 문제라는 것도 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주고받는 것임이 분명하다. 이 세상에 가족을 가지기에 부족하거나 모자란 사람이란 없는 것이다. 죄책감이나 책임감으로 사랑을 피해 다니려고만 했던, 내 마음의 오래된 장벽을 이제는 뛰어넘고 싶다. 언젠가 순수하게 기쁜 마음으로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맞이하게  날이 기를 꿈꾼. 그리고 조금 더 편안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가족을 사랑하고 가족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도 있게 되 빌어 본다. 아낌없이 서로!


 세상엔 좋은 것들이 많다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에게 가장 소중한 건


 아무튼, 가족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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