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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Jul 25. 2024

가장, 좋아하는 걸 말하기

나의 마음이 당당하게 그것들을 알아채기를...

가장

 - 여럿 가운데 어느 것보다 정도가 높거나 세게


 누군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것에 대해 물으면 난감하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으면 선뜻 말하지 못한다.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 뭐냐고 물어도 어쩐지 대답하기가 곤란해진다. 생각이 잠자리처럼 이리저리 맴돌 뿐 하나의 대상 위에 가만히 내려앉지 못한다. '가장'이란 말을 들으면 온몸의 근육이 바짝 긴장되면서 부담스럽고 자신 없어지기 때문이다.


 단지 나의 선택일 뿐인데도 그것을 입 밖으로 내어 말하는 순간, 거짓말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스스로에 대한 불확신, 선택하지 않은 대상에 대한 묘한 죄책감까지 한꺼번에 일어나 머릿속을 마구 헝클어놓는. 그래서 "아무거나 다 좋아." 같은 무색무취한 대답이 튀어나와 버리고 마는 것이다. 나 같은 부류의 사람을 가리켜 흔히 선택 장애가 있다고들 한다. 또는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뜨뜻미지근해서 매력 없는 사람이라평가하기 한다.


 가장, 좋아하는 걸 말하기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르겠는데 말까지 하라고?




 예전엔 아이들에게 말도 안 되는 짖꿎은 질문을 했었다. "너는 엄마가 좋니? 아빠가 좋니?" 생전처음 보는 낯선 어른이 이런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져놓고는 생글거리며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어서 대답하라고 재촉하는 눈길 앞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쩔쩔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도대체 그런 무례한 질문은 애초에 누가 만들어낸 것일까? 기억이 닿는 어린 시절부터 꽤 자랄 무렵까지도 나는 똑같은 대답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둘 다 좋아요." 굳이 한 사람만 고르라면 엄마가 더 좋았고 때로는 둘 다 밉기도 했지만 말이다.


 아들도 어김없이 사람들로부터 같은 질문을 받았다. 그런데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대답하는 게 아닌가?  "나는 엄마가 더 좋아요. 세상에서 가장 좋아요." 이제는 제법 자라 열 살이 된 아들이 내게 이런 고백도 했다.

 "엄마랑 아빠가 헤어진다면, 물론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겠지만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는 엄마랑 살 거야."

 하, 등골이 쭈뼛해진다. 묻지도 않았건만 마음속에 노선 정리까지 이미 확실히 해 둔 이다. 나는 아주 진한  한 사발을 들이켠 듯 입안이 쓰고 머리가 어질어질해진다. 어쩌면 저렇게 선명하게 자기의 마음을 알고 거침없이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뒤통수를 퍽하고 후려치기 때문이다.


아들의 대답은 엄마인 내게조차 무척 불편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도대체 불편한 것일까? 아빠를 배제시키는 듯한 표현에서 원인 모를 죄책감이 생기 때문이었다. 또 사람들이 아들과 아빠의 관계를 오해하는 게 아닐까 싶어 걱정스럽기도 다. 모든 건 나 혼자서 만들어낸 두려움이었다. 막상 아들에게 아빠에 대해 물으 해맑게 대답하곤 했었다.

"아빠도 좋아. 누가 싫다고 그랬어? 나는 아빠 없으면 못 살아."  


 나의 불편함은  선의에서 온 것일까,  불안으로부터 온 것일까! 아마도 후자일 가능성이 다. 나의 취향, 생각, 감정을 뚜렷이 말하지 못하는 것은 누군가를 진심으로 배려해서라기보다 나에게 올 비난의 화살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빠 둘 다 좋다고 말함으로써 나는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착한 아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어떤 부정적 평가도 받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처절히 깨달은 것은 내 마음을 숨기면서 얻어낸 가짜 칭찬은 결국 나에게로 향하는 자학의 칼날로 변해버린는 것이었다. 그것이 아무리 도덕적으로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마땅히 옳은 일이라 할지라도.


 늦은 아침, 내게로 파고드는

 아이의 여린 숨결과 조그마한 포옹

 아이의 머리맡에서 나는 살 냄새

 아이와 꼭 맞잡은 손에 흐르는 온기

 카페에서 들리는 나지막한 두런거림

 차 한 잔과 함께 읽는 책들

 적막 속에 울려 퍼지는 자판 두드리는 소리

 가족과 함께하는 단란한 저녁

 좋아하는 음식의 첫 한 입

 남편과 아들의 시끌벅적한 거실

 늦은 오후 졸음이 밀려오는 도서관

 여행을 떠나기 전 날 밤의 설렘

 어느 날 문득 떠오르는 옛 추억

 서서히 열기를 품어 가는 늦봄,

 여전히 열기를 품고 있는 초가을

 아직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런 날들

 마른 빨랫감에 배어 있는 해의 향기

 아스라이 사그라드는 그믐달

 어스름한 새벽녘의 처연함

 해 질 녘 하늘의 붉게 물든 찬란함


 새소리, 바람 소리, 풀벌레 소리, 물소리

 그리고 당신의 숨소리

 

 이 모든 것들을 저는 좋아합니다.

  

 언젠가 블로그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낙서처럼 기록 적이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선뜻 고르지 못하지만 좋아하는 것들을 무작위로 떠올리꽤 많은 것들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취향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단지 취향을 선택하기 어려워하는 사람인 건 아닐까? 선택은 늘 '배제'를 낳고 배제는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거나 모두 다 선택해 버리면 사람들은 심심한 인간이라며 지루해할 것이다.


 세상은 이도저도 아닌 회색인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색이 지나치게 선명한 단색인간도 좋아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나는 늘 나만의 답을 찾기보다는 어떤 게 올바른 답인지 고민하면서 살아왔다. 눈치 보던 내가 선택한 방식은 취향, 생각, 감정 모두 사람들이 내가 선택하기를 바라는 걸 스스로도 원한다속이며  것이었다. 원하는 대답을 듣고 대의 눈빛을 스쳐가는 안심과 만족을 내 존재에 대한 긍정의 신호받아들이면서 말이다.

 

 지금도 나는 가장 좋아하는 게 뭔지 잘 알지 못한다. '가장'을 붙이면 모든 게 모래성처럼 허물어져 내린다. 가장 먹고 싶은 게 뭐야? 가장 갖고 싶은 게 뭐야? 가장 하고 싶은 게 뭐야? 가장 가고 싶은 곳이 어디야? 그런 질문들 앞에서 나는 영악한 참새 앞에 서 있는 허수아비처럼 무력해지고 만다.


 우울증으로 긴 세월 고생하는 남편은 나보다 더 심각하다. 그에 비하면 나는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들이 아예 없지는 않으니까. 우리는 서로 가련해한다. 가장 좋아하는 것이든 가장 싫어하는 것이든 당당히 말하지 못하는 서로를 보며, 각자의 공허에 얼굴을 파묻고 눈물 흘린다.

 '근데 그건 우리의 죄가 아니야. 우리 마음속에서 '가장'이 없어졌때문이야! 스스로에게 하는 오래된 거짓말은 결국  자신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법이니까.'


 나와 아들의 열 살을 비교해 본다. 아들의 열 살이 훨씬 타당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가장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좋다고 말할 수 있고, 가장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고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열 살! 그 당당함과 티 없음을 사랑하고 지지한다. 나는 이제 그때로 되돌아갈 수도 없고 그때의 나에게 거짓말하거나 숨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줄 수도 없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꼭 알려주고 싶다. '가장'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가장'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기 위해, 이제부터라도 마음속에서 당당히 그것들을 떠올리며 살라고. 마음까지도 끊임없이 눈치를 보고 두려워하는 겁쟁이로 살다가 죽지는 말자고!!


 가장, 좋아하는 걸 말하기

 마음이 숨어버렸는데 말할 수는 없잖아요.

 나의 마음이 당당하게 그것들을 알아채기를...

 

 가장, 좋아하는 걸 좋아하고 가장 싫어하는 걸 싫어하기!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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