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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Aug 22. 2024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나를 온전히 내맡기고 지금 여기에 존재할 수 있기를...

지금

 - 말하는 바로 이때에

  (부사이지만 명사이기도 한 단어임을 밝혀 둡니다.)


 이십 년 가까이 마음속에 품어 온 말,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끝도 없는 우울과 절망에 침잠되어 목줄에 묶인 개처럼 끌려가듯 살던 젊은 시절, 어느 날 나는 서점 매대에 쌓여 있는 에크하르트 톨레의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를 우연처럼 운명처럼 집어 들었다. 비좁은 서점 한 구석에 서서 호기심과 의심이 뒤엉킨 눈으로 낯선 책 한 권을 들고 있던 내 모습은 지금 이 순간에도 생생히 떠오른다. 그때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신선한 충격과 놀라운 감동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불치병에 걸린 환자가 획기적인 신약이라도 손에 쥔 것처럼 나는 책 속의 한 글자 한 글자를 꼭꼭 씹어 삼키며 읽고 또 읽었다. 책에서 얻은 깨달음 덕분인지 컴컴한 심연에 잠겨 있던 나는 어둠을 휘발시키고 한결 가벼워질 수 있었다.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깨달음의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답습하듯 원래의 무의식적인 상태로 되돌아갔고 고통과 불행을 나라는 존재와 동일시해 버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럴 때마다 이 책을 다시 찾아 읽으며 존재가 품고 있는 근원적인 빛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과거나 미래의 수렁에 빠져들어 허우적거리고 있는 나를 어떻게든 '지금 여기'로 끌어내 위해 발버둥 쳤다. 걷잡을 수 없는 불안이나 우울, 슬픔 같은 것들이 내 마음을 장악하고 더 나아가 내 삶까지 야금야금 침범해가고 있을 때,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라는 말은 마법의 주문처럼 넘어지려던 나를 붙들어 주었고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뒷덜미를 잡아 주었다. 그렇게 아슬아슬하지만 아주 망해버리지는 않게, 내 삶을 지탱해 준 말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였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지금 괴로운 것은 과거나 미래에 종속되어 있는 내 마음 탓이니...




 요즘 나는 또다시 내 존재가 닿아 있는 '지금 여기'에 머물지 못하고, 수시로 먼 과거에서부터 미래까지를 정처 없이 배회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슬픔이나 원망, 죄의식이 지금의 나를 괴롭히고, 미래에도 이러한 고통들이 끊임없이 지속되리라는 두려움이 나를 잠식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새 나는 '지금 여기'를 서서히 잃어버리고 있었다. 내 존재가 위기를 감지한 탓일까? 나는 자석에 이끌리듯 책장 앞으로 다가가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를  또다시 꺼내 들었다. 눈밭 위에 첫 발자국을 내딛는 심정으로 한 글자 한 글자를 눈으로 꾹꾹 눌러가며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야 나는 반성문이기도 다짐문이기도 한 이 글을 쓰기 시작할 수 있었다.

 

 "마음이 그 고통을 이용해서 당신 자신을 희생자로 만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신세 한탄을 하고 넋두리를 늘어놓으면, 계속해서 고통 속에 처박혀 있게 될 것입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며 신세 한탄을 여러 사람에게 늘어놓지도 않는 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주저리주저리 고통의 파편들을 말로 뱉어낼 때가 있는데, 그러고 나면 스스로도 비참하고 부끄러워져서 한동안 몸 둘 바를 모르게 된다. 수치스러움의 이유는 내가 나를 철저히 희생자로 만들어 놓고 연민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나의 고통은 실재했고 희생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나간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희생자 코스프레만을 반복하며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나의 의지와는 달리 오래된 마음의 습관이 좀처럼 바뀌질 않는다는 데에 있다. 고통과 불행 속에 던져진 삶만이 내게 주어진 운명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는 말이다.

 "과거를 답습하는 마음은 언제나 이미 알고 있고 익숙한 것을 되풀이하려고 합니다. 고통스럽지만 적어도 익숙하기는 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언제나 알고 있는 것에 집착합니다."


 평생 내 뒤를 따라다닌 고통은 가장 사랑받아야 할 존재로부터 사랑받지 못했다는 절망감이었다. 누군가는 반백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아직도 부모를 원망하냐고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엔 전혀 다른 상황이나 조건에 놓여서 괴로웠을 때에도 그 이면을 파고 또 파고 들어가다 보면 결국 다다르는 종착지에는 '사랑받지 못했다'는 절망감과 '사랑받지 못할 것이다'라는 두려움이 숨어 있었다. 그것은 내가 살아온 삶의 길이와 상관없이 심연 저 깊숙한 곳에 빠지지 않는 가시가 되어 박혀 있는 것이었. 에크하르트 톨레는 그런 고통을 이제 그만 인정하고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고통에 대해 더 이상 캐묻지도 저항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은 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고통을 느끼는 나를 나라는 존체 자체와 분리시켜 바라보는 것! 그것만이 진정한 '내맡김'이고 내면의 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방법이며 '지금 여기'로 나라는 존재를 데려올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말이다.


 나는 왜 사랑받지 못했을까? 그럼에도 왜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일까? 이런 서러움과 원망, 불만이 나와 내 인생을 좀먹었던 게 사실이다. 한때는 모든 걸 초월한 듯 태연하게 굴기도 했지만, 어떨 때는 이 모든 고통이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라도 되는 양 치를 떨며 거부하고 몸부림치기도 했었다. 그렇게 양 극단을 오가는 변덕스러운 마음을 등에 짊어진 채 두 발이 푹푹 빠져가면서 진흙탕 길을 힘겹게 걸어온 것이다. 하지만 에크하르트 톨레 뫼비우스의 띠 같은 이런 비극의 드라마를 제발 그만 멈추라고 경고한다. 스스로 비극의 주인공이 되기를 자초하면서 동시에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해 안달복달한다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불행해질 때마다 마음을 잘 살펴보라. 당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고 믿는 믿음이 바로 불행이다. 불행한 마음자리에는 항상 그런 무의식적인 믿음이 깔려 있다."

 내가 사랑받아야 한다는 기대, 아니 사랑받았어야 한다는 믿음이 불행의 씨앗임을 인정한다. 그것은 부모로부터 시작해 인간관계 전반으로 퍼져 나갔고 매번 나를 비슷한 서사에 말려들게 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을 때마다 매번 자각하고 반성하고 다짐해 왔다. 온전한 나로 '지금 여기'에 있기 위해서는 현재의 모든 상황과 감정에 스스로를 저항 없이 내맡기고 쓸데없는 감정의 동요 없이 내가 할 일을 묵묵히 해나가야만 한다. 물론 현실을 바꿔야 한다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행동을 시도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도저히 바꾸기 힘들다면 있는 그대로 나를 내맡기는 게 필요하다. 핵심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잡음들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나란 존재를 에고의 요란한 쇼에 휘말리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나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진 것을 느낄 때, 당신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평화롭게 존재할 수는 있습니다. 슬프고 눈물이 나겠지만 저항하는 마음을 버린다면, 그 슬픔 아래서 깊은 평화와 고요, 그리고 신성한 현존을 느낄 것입니다." 행복하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오는 불행이 생각보다 크다. 하지만 인생의 행불행은 수시로 왔다 갔다 하는 상태일 뿐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지금 아무리 행복하지 않더라도 내면이 평화로울 수는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쁨이나 슬픔, 환희나 허무가 가만히 나를 통과해 가도록 내버려 두어야만 한다. 그것이 진정한 내맡김이며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과거의 망령에 진저리 치며 쫓겨 다니지도 말고 미래의 허상을 숨 가쁘게 좇지도 않으면서 '지금 여기'에서 살아 숨 쉬는 것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우리는 평화와 고요 속에서 현존할 수 있다.


 여름이 끝나가는 시간이자 가을이 지척에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 지금. 공기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지기 시작했고 밤이면 어딘가에서 소리 없이 다가오는 미풍이 온몸을 부드럽게 간지럽히고 있다. 지독했던 난여름의 열기와 함께 나 아닌 나의 마음들은 이제 그만 떠나보내고 '지금' 여기에서 다시 나로 돌아와 가을을 맞이할 수 있기를...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나를 온전히 내맡기고 지금 여기에 존재하라.


출처 Pixabay

 

" " 안에 있는 문장들은 에크하르트 톨레의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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