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위 Nov 15. 2024

새벽의 택시, 그리고 사직서

 너는 새벽까지 계속되는 술자리를 떠나지 않고 지켰다. 그렇게 해야 너에게도 '삶이 네 것이라는, 아니 네 의지대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자부심이 생길 것만 같았다. 감기는 눈을 억지로 부릅뜨면서 그들의 술잔에 술을 따르고 그들의 농담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수다에 말을 섞었다. 밤새도록 영업하는 술집을 옮겨 다니며 4차가 될 때까지도 그들은 헤어지지 않았다. 영원히 내일은 오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처럼 필사적으로 오늘을 버텼다. 아니 내일이면 모두가 죽어 없어질 것처럼 오늘을 아꼈다.


 그들은 술자리가 끝나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 늦잠을 자거나 숙취를 호소하며 하루를 허송세월해도 되는 백수들이었다. 정말로 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돈이 급할 때 잠깐씩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계약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에게 돈벌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너는 달랐다. 4대 보험이 되는 정규직 사원이었고 매일같이 출근을 해야 했다. 하루가 모자랄 만큼 일은 많았고 밀려 있는 일을 하고 나면 새로운 일이 눈앞에 다시 밀려들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너는 내일이 없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울 그들과 함께 오늘을 살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너는 오늘도 내일도 둘 다 가지고 싶었다.


 밝아오는 박명 앞에 더는 몸뚱이를 숨길 데가 없어지자 그들은 두 손을 맞잡고 서운함을 달래며 마치 영원히 헤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술자리를 파했다. '하루나 이틀 뒤면 다시 만나 똑같은 일을 되풀이할 거면서.' 너는 그들과 헤어질 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약간의 현실감각을 되찾고 삐딱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꾹꾹 눌러놓았던 피곤함과 졸음이 취기와 뒤섞여 한꺼번에 용수철이 되어 튀어 올랐다. 걸음걸이가 집게 하나가 잘려나간 게처럼 뒤뚱거렸다. 너는 화가 났지만 정말로 무엇에게 화가 나 있는 건지는 몰랐다. 헤어지는  아쉬워 화가 난 듯. 도저히 헤어질 순 없다며 질척거리면서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들은 너의 어색하고 과장된 연기를 눈치챌 게 뻔했. 너는 주연도 조연도 아닌 일개 엑스트라 배우였으니까.


 너는 택시를 탔다. 새벽에도 택시는 어김없이 달린다. 다리에서 다리를 건너고 골목에서 골목을 넘나 든다. 아파트 단지에서 단지로 빌라에서 빌라로 주택가에서 주택가로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닌다. 너는 믿음직한 택시의 뒷자리에 앉아서야 마침내 마음 놓고 졸 수 있었다. 고개를 꾸벅꾸벅 주억거리노라면, 이따금 도로를 밝히고 있던 불빛들이 탁 하고 꺼지며 눈앞에 어둠을 던졌다. 그러면 너는 화들짝 놀라 눈을 뜨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너는 네가 아직 살아있다는 엉뚱한 안도를 하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자는 것도 자지 않는 것도 아닌 상태로 몸을 잠시 뉘었다가 그대로 다시 일어나 출근을 했다. 머리는 깨질 것 같았고 눈앞은 뿌옜다. 너는 샷을 2개나 추가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 들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어제 야근했어? 얼굴이 엉망이네."

 주변 사람들의 인사에 대꾸 없이 입술만 뭉개며 아메리카노를 홀짝였다. 하루가 끝나지 않았는데 하루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그게 정말로 행복한지 자신에게 물었다. 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모니터 화면의 껌벅거리는 커서가 그럼 대체 네가 원하는 게 뭐냐며 따져 물었다. '삶이 내 것이라는, 내가 내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싶어.' 너의 대답에 커서가 벌건 눈을 신경질적으로 번뜩였다.


 너는 서랍에 넣어두었던 오래된 사직서를 꺼내 쳐다보았다. 사직서 위에 내려앉은 먼지를 털며 네가 되고 싶은 게 정녕 그들인지 생각했다. 그들처럼 자유롭고 싶은가?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마시고 싶을 때 마시고 좋아하는 연극만 실컷 하면서 살고 싶은 건가? 문득 너는 그것이 더는 네가 원하고 말고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삶이 '네 것이 아니고 네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니'라는 느낌, 그 자체가 문제일 뿐이었다. 문득 도로를 밝힌 가로등의 불빛들이 하나둘 꺼져가던, 새벽의 택시가 떠올랐다. 어둠과 빛을 쉼 없이 이어가면서 밤새도록 달리기만 하는.


 너는 오늘이 아까웠지만 그들처럼 사랑하진 않았다. 내일이 불안했지만 그들처럼 용감하진 않았다. 그들과 살을 섞었지만 그들처럼 진지하진 않았다. 너에겐 그들이 한낱 구경거리였을 뿐이다. 불꽃처럼, 찬란하게 터지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그들이 아름다웠지만 동경하진 않았다. 그걸 깨닫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가로등 하나가 피식하고 꺼져 버렸다. 너는 눈앞을 가리는 짙은 어둠 속에서 생각했다. 어쩌면 너는 영원히 '네 삶을 가지지도, 네 삶을 살지도 못하는' 삼류 연극배우에 머물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그러고는 사직서를 다시 서랍 안 깊숙한 곳에 넣어버렸다. 다시는 새벽의 택시를 타지 않겠다는 비겁한 다짐을 하면서.


 차갑게 식은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입에 머금고 너는 모니터에 알 수 없는 글자들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커서가 더는 너에게 눈길조차 줄 수 없도록 재빠르게....



출처 무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