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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Dec 13. 2024

사라져 버린 남자들

 너의 아빠는 딴따라였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니 그게 아빠의 직업이라고 생각하 때도 있었다. '품바' 공연을 하러 다니던 아빠는 집안에 있을 때조차도 품바의 메소드를 벗지 않았다. 술에 취해 불그레해진 볼과 실핏줄이 터져 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쉬지 않고 노래를 불러댔다. 하지만 너는 아빠의 노랫소리에서 번도 울림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저러 만년 무명 품바지.' 너는 뒤에서 몰래 한숨을 내쉬곤 다. 


 중학생 때였다. 봄꽃들이 얌전히 물러나 여름꽃들이 하나둘 거리로 뛰쳐나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아빠는 이름도 생소한 전라도의 어느 군민 행사공연을 하러 간다면서 집을 나갔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빠를 아는 사람들은 죄다 똑같이 말했다. 촌구석 어두컴컴한 주점에 앉아 껌이나 씹고 있는 무지렁이 아가씨 하나를 꼬셔서 기둥서방으로 눌러앉았을 거라고. 늙고 병든 엄마를 버리고 젊고 싱싱한 여자로 숙주를 갈아탄 기생충 같은 놈이라고. 젊은 시절, 시골 다방 레지였던 엄마는 그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할 수가 없었다. 너는 아빠의 부재가 실감 나지 않았다. 한 가지 의문여름밤 모기처럼 쉬지 않고 너를 괴롭혔다. '막내딸을 무척 사랑하는 것처럼 떠들어대더니 어째서 하루아침에 인사도 없이 사라져 버까?' 하지만 남자를 궁금해하지 않는 것만이 네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복수였기에 서둘러 무심해져 버렸다.


 가출한 아빠와 넋이 나간 엄마를 대신해 오빠가 가장 노릇을 했다. 그래봤자 겨우 고등학교 2학년 짜리 어린애였다. 오빠는 새벽까지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공부를 꽤 잘하는 우등생이었지만 학교에 빠지는 날이 늘어갈수록 성적은 수직으로 추락갔다. 오빠는 오래된 연필 자국처럼 서서히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반듯하고 진해서 잘나 보였 글씨가 실수로 휘갈긴 낙서처럼 존재감이 없어지는 데에는 그다지 긴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결국 오빠는 흔적도 없이 지워 버렸다.


 자신은 죽어 없어질 거면서 너에게는 '잘 살아야 한다.'는 말을 대책도 없이 남겨 놓았다. 사라져 버린 오빠에게 화를 내다가  이내 너는 스스로가 의심스러워졌다. 오빠가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끝내 모른 척해버렸것은 아닌지. 아빠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제 집에는 병든 엄마와 너 단 둘만이 남게 되었다. 그때부터였다. 너는 사라지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무능남자들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미칠 듯이 갈망하고 그리워했다. 그들이 곁에 없다는 사실에 견딜 수 없는 한기를 느끼면서.


 수면제 한 주먹을 집어삼킨 엄마가 위 세척을 한  살아 돌아왔을 때, 너는 아빠의 손길이 닿았던 물건들은 죄다 쓰레기봉투에 담아 내다버렸다. 너의 방에는 아빠가 전국의 행사들을 돌아다니며 구해온 갖가지 기념품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가지만은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다. 눈부신 황금빛 모래가 담겨 있는 유리로 된 모래시계였다. 너는 모래시계를 뒤집어놓고 금빛 모래들이 아래로 다  흘러내릴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한 적도 많았다.


 너는 그것을 보고 있으 시간이 멈추고 세상이 정지해 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네 눈엔 황금빛 모래가 수천수만의 금빛 천사들이 날개를 포개고 누워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고개를 들고일어나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서로의 날개에 부딪히고 찢기면서 모두 함께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곤 했다. 모래시계 속에 갇혀 하늘과 땅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면서도, 영원히 날아갈 수는 없는 천사들이 금빛 먼지를 내뿜으며 아우성치고 있었다. 너는 그 모래시계 안에 갇힌 희망과 절망을  보고 있으 이상하게도 마음이 고요해졌다.


 너를 사랑한다고 말했던 남자들은  사라져 버렸다. 그들과 함께했던 모든 시간들은 단지 사라져 가는 과정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한꺼번에 무의미해졌다. 너는 그들이 사라진 이후로, 다시는 사람에게서 기쁨을 않기로 했다. 누군가의 눈동자를 깊게 응시하는 따위의 감상적인 행동도 하지 않기로 다. 너는  구경꾼이 되어 마음이 공갈빵처럼 제멋대로 부풀어 올랐다 맥없이 파사삭 부서져 버리는 것을 냉연히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아무에게도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만약 누군가 너의 곁으로 다가오는 게 보이면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아나버렸다. 그래야만 안심할 수 있었다. 그들은 네게 다가왔다 뿌연 유리벽 앞에 서한참을 서성이곤 했다. 그러다 포기한 듯 등을 돌리고 멀어져 갔다. 너는 그 모습을 서늘하게 바라보았다. 모래시계 속의 금빛 천사가 되어 가만히 날개를 바닥에 널브러뜨리고 숨죽인 채 누워만 있었다. 그러면 더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 듯했고 고통도 커지지 않았다. 너는 모래시계 밖에서 너를 들여다보는 동시에 모래시계 안에 갇혀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너는 너이면서 동시에 네가 아닌 무언가가 되어 정지해 있었다.


 다비드는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너를 궁금해하는 신입사원과도 가까워지고 싶지 않았다. 그의 웃는 얼굴이 이따금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걸리적거렸지만 침을 한 번 크게 삼켜버리면 그만일 거였다. 사실 너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사라져 버릴까 봐. 아니 끔찍할 정도로 무서웠다.

 누군가 또다시 죽어버릴까 봐. 너의 곁에서.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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