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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Nov 29. 2024

'너'를 궁금해하는 사람

 다비드의 전화를 받지 않고 다시 하루가 흘렀다.  알 수 없는 불안과 조바심 온몸에 들러붙은 선인장 가시처럼 움직일 때마다 살갗을 콕콕 찔러댔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벗어나기로 다짐하지 않았나. 모든 부질없는 망과  흘러가버릴 열정으로부터. 최대한 너를 차갑게 식히고 얼려서 네가 있는 그 자리에 석고상처럼 그대로 굳혀버리고 싶었다.  그것은 어쩌면 강력마음의 반작용일지도 몰랐다. 너무 좋으면 급기야 미워지간절히 원하 결국 외면하게 되는 것처럼 너는 미치도록 흔들리고 있었지만 끝내 무심해지려 했다.


 너는 누구 하고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어차피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몇 달을 함께 근무하다  헤어지는 이들은 이름도 얼굴도 기억에 남지 않았다. 그들은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행인 2, 행인 3이 되어 다시 마주쳤겠지만 몇 초 동안의 망설임만을 남긴 채 가볍게 뒤돌아섰을 것이다. 너는 피차 무관심해 주는 것만 호의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너 자신이 그걸 원했으므로. 사람들의 관심은 대체로 과도하거나 부적절하거나 삐딱해지기 쉬웠고 때로는 악의에 가까울 때가 많았으니까.


 입사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그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아니 살짝 불편했을지도 몰랐다. 너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그는 지나치게 표정이 밝았고 자주 웃음소리가 간을 넘나들었.  그가 달을 넘기지 못하고 곳을 떠날 거라며 혼자서 혀를 차곤 했다. 지금까지 너의 예측은 자주 맞아떨어졌었다.  너나 이 대리 같은 사람만이 '남아 있는 자'가 될 자격이 있었다. 좀처럼 웃지도 울지도 않고,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으며,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는 그런 사람들만이.


 "대리님 목소리가 참 좋더라고요. 사람들이 그러던데 연극도 하신다면서요?"

 그가 난데없이 너에게 말을 걸어왔을 때, 너는 멍하니 그의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와 발그레한 볼과 대답을 기다리는 듯 살짝 깨문 입술을 응시했다. 기분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지만 분명 너는 놀라고 있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네 하며 몸을 돌렸다. 어디 급히 갈 데라도 있는 사람처럼. 그러고 보니 저 사람 벌써 석 달째 여기 있네? 너는 빗나가지 않으리라 믿었던 화살이 과녁을 완전히 벗어나버린 양궁 선수처럼 당혹스러워하며 그의 얼굴을 다시 돌아보았다. 너도 모르게. 그는 여전히 희맑게 웃고 있었다.


 "대리님 맨날 야근하시더라고요. 힘들지 않으세요?"

 그가 두 번째로 말을 걸어왔을 때, 너는 약간 화가 나는 것도 같았다. 오래 공들여 쌓아 온 탑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불안이 너를 향해 방향을 틀고 성큼  내딛고 있었다. 사실 너는 이미 오래전부터 설렘과 불안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는데, 그게 무슨 장애라도 되는  등 뒤로 몰래 감추다녔었다. 그런데 무구하웃는 그가 무례하게도 단단히 덮어놓은 너의 치부를 들춰내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대에서도 직장에서도 너는 관심받지 못해서 부담스럽지 않았고 혼자여서 도리어  다. 엑스트라이길 그토록 거부하면서도 실은 엑스트라여서 다행이었다. 그런 너의 이중적인 마음이 누군가의 뜬금없는 관심 앞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돌부리에 걸린  휘청거리고 있었다.


 "대리님 공연이 언제예요? 보러 가도 될까요?"

그가 세 번째로 말을 걸어왔을 때, 더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웃음소리가 예전보다 더 크게 그리고 더 자주 너의 공간을 침범하곤 했기 때문이었다.

  "공연 같은 건 하지 않아요. 연극 그만뒀어요."

 너는 평소보다 두 배는 빠른 목소리로 뱉어내듯 말하고는 돌아서버렸다. 그러자 왜요?라는 그의 외마디가 총알처럼 뒤통수로 날아와 박혔다. 너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자리로 돌아가 다시 벽을 보고 일하기 시작했다. 밤이 되도록 아니 밤이 닳아 없어지도록. 그날따라 어둠은 더욱 더디게만 깔렸다.


 왜요? 그의 목소리가 귓가를 계속 맴돌았다. 왜를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너는 늘 너의 생각과 감정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복종하면서 살아왔다. 그것을 의심하게 하는 것들로부터 최대한 멀리 내달리고 도망치기만 하면서.  너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그는 너보다 다섯 살이나 어리므로 아직 뭘  모르는 거겠지 하며 그의 목소리를 애써 지워버렸다. 하지만 머릿속엔 너에 대한 의심이 먹다 만 아메리카노처럼  미적지근하게 남아 있었다. 떨떠름한 기분을 도저히 떨칠 수가 없었다.


 너를 오래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의 호기심은 너의 차가움과 무심함 앞에서 생각보다 쉽고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누군가와 멀어진다는 것은 가까워졌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에 너에게 자주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외롭다는 것은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감정이므로 네게는 묘연다. 그리고 너는 그렇게 생겨먹은 너에 대해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고 살았다. 너는 왜 그 모든 걸 당연시했을까? 그의 목소리로 변형된 갖가지 물음들이 시도 때도 없이 머릿속을 들쑤셔댔.


 끝나지 않는 물음들이 세포분열 하듯 꼬리에 꼬리를 물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가뜩이나 터질 것 같았던  머릿속은 이제 한 치의 틈도 없이 빵빵한 풍선이 되어버렸다. 누군가 바늘로 한 번 콕 찌르기만 해도 단박에 터져서 산산조각 나 버릴 것만 같았다. 도저히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쪽은 왜 자꾸 내게 뭘 묻는 거죠?"

 "그야 궁금하니까요."

 그의 뻔한 대답에 너는 그만 헛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그는 언제나처럼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맹물같은 눈동자로 웃고 있을 뿐이었다. 순간 웃고 싶으면 웃고 묻고 싶으면  그의 당당함과  없음 처음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너의 가슴으로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묘한 해방감이 먹물처럼 서서히 번져나갔. 너는, 네가 궁금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너를 궁금해하는 사람을 눈앞에 맞닥뜨린 거였. 낯설만 오래 그리워했던 무언가가 미세하게 공기를 흔들며 너의 가슴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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