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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Dec 06. 2024

명왕성, 태양계로부터의 탈출

 태양은 항성이다.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 다른 말로 별이다. 태양계는 항성인 태양과 그 중력에 이끌려 있는 주변 천체가 이루는 체계를 말한다. 항성을 가운데 두고 여러 행성들이 일정한 궤도 안에서 끊임없이 돌고 있는 것이다.  너는 극단에 가면, 태양인 다비드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그의 주변을 돌고 있는 수많은 행성들을 목격하곤 했다. 태양과 그들 사이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도 멀어지지도 않았다.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우주의 질서와도 같았다. 행성들 중에서 가장 멀리 있으면 눈에도 띄지 않는 존재가 바로 '너'였다. 이제는 태양계에서 퇴출당해 버린 외딴 행성.  명왕성이 되어 득한 눈으로 태양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다비드는 주연 배우이자 연출가였다. 그는 세상의 중심이 되기에 마땅한 능력과 자질가지고 있었다. 얼굴과 몸의 생김생김이 태양으로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태양의 흑점을 닮은 눈동자와 뜨거운 열기를 토해내는 목소리는 무대를 단숨에 장악해 버리고도 남았다. 따뜻한 듯 서늘한, 수수께끼 같은 표정은 사람들을 그의 발밑에 무릎 꿇게 다. 태양신 아톤처럼 그에게서 뻗어 나오는 빛들이 여러 갈래의 손으로 나뉘어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의 심장을 쓰다듬고 뜨겁게 덥혔다. 하지만 명왕성인 너에게 오는 온기는 미미하기 짝이 없었다.


 그의 전화를 처음 받은 건, 산더미같이 밀려드는 업무에 치여 한동안 극단에 나가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너는 한참을 휴대전화에 찍힌 이름을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다 화들짝 놀라 벨소리가 끊기기 직전에 전화를 받았다.

 "누나, 왜 이렇게 안 나와요? 다들 걱정해요."

 "누나..라고....? 나를 걱정... 해? 왜?"

 너는 당황한 나머지 말까지 벅거렸다. 전화를  게 다비드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였다. '우주의 질서가 하루아침에 재편되었을 리는 없을 텐데.' 너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음 날 바로 극단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모두가 자기 일에 바빠 인사를 건네는 사람조차 없었다. 다비드 역시 주연배우들과 연기 연습을 하느라 너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날, 극단을 나서려 할 때 동호회 총무가 머뭇거리며 너에게 말을 걸었다.

 "누나, 두 달째 회비가 밀려 있어서요. 공연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예산이 많이 부족하네요. 좀 부탁할게요."

 너는 그 자리에 선 채로 곧장 회비를 입금해 주었다.


 그날 저녁 먹다 만 샌드위치를 싱크대에 던져버리고 방바닥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어릴 적 지구과학 시간에 배운 태양계를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태양을 중심으로 하나하나 동그란 궤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에 이르렀을 때 이미 천장엔 궤도를 그릴 공간이 빠듯해졌다. 해왕성에 서는 궤도가 천장을 뚫고 건물 밖으로까지 뻗어나갔다. 명왕성의 궤도는 애초에 이 작은 원룸 천장 안담을 수조차 없을 만큼 멀리 있는 거였다. 어릴 땐 명왕성도 태양계라고 배웠는데... 순간 너는 수치스러운 건지 슬픈 건지 헷갈렸다.

 

 태양의 중력과 행성들의 원심력이 서로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힘의 균형이 깨진다태양계는 공멸하고 것이다. 다시 말해 명왕성이 어느 날 갑자기 궤도를 옮겨가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말이다.  차라리 태양의 손아귀에서 완전히 벗어나 다른 은하로 날아가는 쪽이 현명할지도 몰랐다. 밤새 뒤척이기만 하던 너는, 박명이 밝아오는 즈음에야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탱탱하게 당겨져 있던 태양과의 줄을 스스로 끊어버리기로.  아무런 빛도 온기도 허락되지 않는 태양계에서 더 멀리 탈출 버리기로. 쫓겨나기 전에 스스로 나가버리기로.


 그들은 대부분 백수였고 가난했다. 특히 주연배우들은 상태가 더 심각했다. 공연을 올리기 위해선 몇 달이고 연습에 매진해야 했기에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질 수가 없었다. 공연과 공연 사이 잠깐의 공백기에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생계게 전부였다. 무대에선 눈부신 주인공이던 그들이 무대 밖에선 초라하기 짝이 없는 엑스트라였다.  처음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너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었다. 다비드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빛과 열이 피식하고 사그라드것만 같았다.


 주연배우들 중 동호회 회비를 제대로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동호회 살림을 책임지는 건 연극에 두 발을 다 담그지 않아도 되는 엑스트라나 보조 스텝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너처럼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는 정규직 사원들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극단에서 가장 열외에 있는 자들극단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고귀한 태양의 불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 자신들이 땀 흘려 번 돈을 기꺼이 불쏘시개로 바치고 있었다. 지금까지 너도 그들 중 하나였다.


 다비드가 그날 전화만 하지 않았더라도 너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을  지켜주고 싶었으니까. 그들이 만들어낸 우주의 질서 속에  또한 순순히 편입되 싶었으니까. 텅 빈 너에겐 숭배할 무언가가 필요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가 너를 누나라고 부르는 순간, 너의 가슴은 한순간에 어붙고 말았다.  아무런 빛도 온기도 느껴지질 않았다. 차갑게 식어버린 태양을 위해 더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대보름 달집처럼 활활 불타올랐다. 다비드는 언제까지나 태양의 자리에 있어야 했다. 산산조각 나버린 태양의 작은 파편들이 너의 심장을 차갑게 파고들었다.


 극단에서 오는 전화를 한동안 받지 않았다. 어차피 너는 한두 달이면 흔적도 없이 잊힐 존재라고 생각해서였. 그런데  다비드에게서 문자 하나가 왔다.

 "누나, 많이 바쁜가 봐요. 공연에 참여는 못하더라 꼭 보러는 와요. 다들 기다리고 있으니까."

 문득 너는 그동안 네가 해온 가짜 연극완벽한 피날레를 위해선 그들의 진짜 연극을 보러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연극을 보고 싶다고 했던 신입사원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쳤다.

 '극을 같이 보러 가자고 할까?'


출처. Pixabay

 " 태양계의 정의는 위키백과를 참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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