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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돈 워리 04화

테두리

소위의 토요 초단편소설 4

by 소위 김하진

‘지긋지긋하다.’

수연은 베개에 머리를 묻고 그 단어를 입안에 거품처럼 물고 이리저리 뒤척거렸다. 한참 만에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아서는 발끝을 쳐다보았다. 엄지발톱 하나가 빠질 것처럼 덜렁거리고 있었다. 발톱 가장자리에 빨간 핏물이 동그랗게 고랑을 따라 흐르듯 배어 있었다. 며칠 전 엄마를 태운 휠체어에 발가락을 심하게 찍었다. 그것이 끝내 빠지려는 모양이었다.


어릴 때 크레파스가 밑그림 밖으로 삐져 나가거나 물감이 삐뚤빼뚤하게 선 밖으로 퍼져 나가는 게 싫었다. 그래서 진한 사인펜으로 테두리를 그려 넣었다. 작은 실수를 감추기 위한 쉽고도 감쪽같은 속임수였다. 하지만 그림을 본 미술 선생님은 말했다.

“사인펜으로 테두리를 그리지 마세요.”

물감이 한치도 번지지 않게 하려면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했다. 그래도 물감은 어김없이 선 밖으로 번져 나갔다. 그러다 찾아낸 방법이 ‘그라데이션’이었다.

‘그래, 무조건 바깥으로 갈수록 더 진하게 칠해 버리자. 그럼 테두리가 생길 거야.’

하지만 미술 선생님은 또다시 지적했다.

“명암을 넣을 땐 빛과 그림자를 고려하세요. 빛이 있는 쪽을 어둡게 칠하면 안 됩니다. 물체는 평면이 아니니까요.”


얄팍한 잔꾀는 매번 들통이 났다. 그녀는 빛과 그림자 따윈 무시해 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빛의 방향에 따라 그림자는 수시로 바뀌는 법이니까. 명암을 그리는 건 얼마나 무의미한 짓인가? 발톱을 감싸고 있는 빈틈없는 빨간 테두리가 왠지 더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서둘러 엄마에게 가야 했다. 엄마를 목욕시킨 뒤 병원에 데리고 가는 날이었다. 머리 감기는 삼일에 한 번, 목욕은 일주일에 한 번이었다. 기력이 쇠할 대로 쇠한 엄마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숨이 차다며 헉헉거렸다. 이제 머리 감기는 일주일에 한 번, 목욕은 이 주일에 한 번으로 줄여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수연의 생각이나 의지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엄마와 그녀 사이엔 요구와 복종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원룸을 구한 건 이혼하면서였다. 만취한 남편은 오피스 와이프와 진짜 와이프를 헷갈렸고, 어둠 속에서 그녀를 덮쳤다. 절정에 치달았을 때 신음과 함께 이름을 뱉었다. 그런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지만 않았어도 남편의 바람 따위는 눈치채지 못했을 거였다. 섹스리스 부부였고 아이도 없었고 함께 모아놓은 재산도 없었다. 그러니 딱히 헤어지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이혼 도장을 찍고 혼자 살 집을 구하려 할 때 엄마는 당당히 요구했다.

“엄마 집 가까이에 방을 구해라. 그리고 나 좀 보살펴라.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니?”

다시 엄마 곁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지만 그런 생각들이 말이 되어 나오는 법은 없었다. 그녀는 위자료로 받은 삼천만 원으로 엄마 집 바로 옆에 허름한 원룸 전세를 구했다.


퉁퉁 부은 발가락 때문에 운동화에 발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앞이 뚫린 슬리퍼를 신고 바닥을 직직 끌면서 걸었다. 골목길을 빠져나와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앞이 엄마 집이었다. 그 집은 엄마, 아빠가 마련한 생애 첫 집이었다. 그녀의 방에는 연두색 바탕에 핑크색 꽃무늬가 그려져 있는 커튼이 달려 있었다. 그것은 잠자리의 날개처럼 투명하게 속이 비쳤다. 벗은 몸을 가려준다거나 추위를 막아주는 등의 기능적인 효과는 전혀 없었다. 단지 장식용으로만 존재했던 그 커튼은 그녀가 결혼해서 집을 나갈 때까지도 내내 그 방에 정물처럼 걸려 있었다.


*나머지 내용은 아래 링크한 '밀리의 서재' 에서 읽어 주세요. 이 단편집은 밀리의 서재 창작 지원 프로젝트에 당선되어 일부 비공개 처리하오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소설이 마음에 드신다면 '밀리의 서재'에서 좋아요와 댓글, 밀어주기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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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 이미지는 에드바르 뭉크 (Edvard Munch)의 The Dead Mother and the Child)입니다.




그리고 기쁜 소식 전합니다!!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소위의 '부사가 없는, 삶은 없다' 전자책에도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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