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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May 01. 2023

태양과 나

삶의 필터

우리는 지구에 살고 있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은 무엇인가? 바로 태양이라는 항성이다. 태양계에서는 지구를 포함한 여러 행성들이 태양 둘레를 끊임없이 돌고 있다. 태양은 우리의 지향이자 근원이고 생명이자 사랑이다. 어머니와도 같은 태양은 그 크기도 어마어마하다. 지구의 109배이며 달의 400배에 달한다. 하지만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가 무려 1억 5천만 킬로미터나 되기 때문에 우리 눈에 보이는 태양은 아주 작다. 그렇다고 해서 태양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의 눈은 그 강렬하고 방대한 빛을 담아내기에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걸 아는가? 태양의 빛이 지구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8분 19초 정도라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는 태양은 늘 8분 19초 전의 태양의 빛일 뿐이다.


결국 우리는 태양과 영원히 같은 순간에 머무를 수 없으며,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도 없다. 태양은 우리의 지향이지만 무한히 다다를 수 없는 절대적인 그 무언가인 것이다.


출처  Pixabay


오늘 천체망원경으로 태양을 보았다. 망원경으로 태양을 보면 엄청나게 많은 빛이 동공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눈이 멀 정도로 매우 위험하다고 한다. 따라서 반드시 태양 필터를 사용해야 한다. 태양 필터란 태양을 망원경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그 빛의 양을 줄여주는 필터를 말한다. 필터를 장착한 망원경을 통해 본 태양은 손톱만큼 작았지만 붉게 이글거렸고 군데군데 흑점까지도 선명하게 보였다. 잠시지만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어쩌면 오늘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태양과 만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동안은 너무나 눈이 부셔서 눈가를 잔뜩 찡그린 채 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보곤 했기 때문이다. 오늘처럼 눈을 부릅뜨고 뚫어지게 바라본 것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태양처럼 우리가 늘 지향하면서도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인가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물음들에 대한 답일 것이다. 똑바로 직시하면 고통스럽고 적당히 빗겨서 바라보면 영원히 그 실체에는 다다르지 못하는 삶에 대한 근원적인 궁금증 같은 것들 말이다. 우리는 모두 사막과도 같은 이 생에서 진리에 목마른 상태로 살아간다. 살면서 누군가는 그 갈증을 해소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평생 동안 진리의 물 한 모금 마셔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나는 위대한 현자들처럼 생에 대한 깨달음을 한꺼번에 얻지는 못하더라도 평생을 눈먼 맹인처럼 살다가 죽기는 싫다. 그래서 생각한다. 잠시라도 태양을 바라보게 하는 망원경의 필터처럼 우리에게도 진리를 바라보게 하는 삶의 필터가 있다면 손톱만 한 진리라도 대면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출처 Pixabay

젊은 시절, 돌이켜보면 나는 늘 눈이 부셨다. 삶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어서 항상 찡그린 채로 반쯤 눈을 감고 살았다. 내 삶의 필터는 태양 빛의 절반도 거르지 못해 언제나 따가운 빛이 내 눈을 뚫고 들어왔다. 태양은 삶의 정수고, 태양빛은 강렬한 생의 감각이다. 삶에서 느끼는 모든 감각들이 날카로웠고 모든 감정들이 강렬했다. 그러니 살면서 부딪히는 모든 일들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볼 수조차 없었다. 내 삶의 필터는 너무나도 얇고 성긴 것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나의 필터가 두꺼워지고 촘촘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여전히 내 삶은 파도에 부서지고 바람에 흔들리기도 하지만 예전보다 훨씬 격동이 적어졌다. 사람들은 나이 듦에 대하여 씁쓸해하며 말한다. 나이가 들면 매사에 둔감해지는 거 같다고. 하지만 나는 그것이 불행하거나 서운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삶의 필터가 그만큼 단단해져가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강렬한 생의 감각을 줄여주는 필터는 요동치는 나의 마음을 잠재우는 대신 정제된 삶의 정수만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럼 삶의 필터란 도대체 무엇일까? 과거엔 한약재를 탕기에 달여 베 보자기에 넣은 후 쥐어짜서 거른 후에 먹었다. 필터란 이런 베보자기처럼 진액만을 걸러내 주는 역할을 한다. 나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과하게  덧입혀져 있는 색과 냄새, 맛 그리고 찌꺼기를 걸러내는 것이다. 한 차례 거르고 나면 쓰든 달든 그 안에 담긴 삶의 정수를 마주하게 될 수 있다.

그럼 이런 필터는 대체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살다 보니 저절로 생겼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이 든 사람들이 모두 같지다. 본인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부단히 노력해 온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감해지기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니다. 생의 모든 잡음들에 무던해지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알맹이만 빼고 모두 다 가라를 연습한 것이다.


그것은 경험의 다양성과 총량에도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한마디로 인생공부다. 나이가 들면 인생공부의 양도 늘고 그러니 삶의 필터도 좋아지고 인생이 뭔지도 조금씩 알아지는 것이다. 그럼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만이 삶의 지혜를 깨닫고 삶의 정수를 맛보는 걸까? 소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평생 고생 한 번 해보지 않고 안락하게 사는 사람은 깨달음의 수준이 올라가지 않는 걸까? 예외는 있겠지만 조금은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싯다르타를 생각해 보자. 귀한 신분임에도 모든 걸 버리고 고행 길에 나서서야 깨달음을 얻지 않았는가.  배부르고 등따수운 게 좋지만 다 좋은  아닌 이유다.


인생공부는 꼭 파란만장한 삶으로만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좋은 집안에서 편안히 살아가는 사람도 누구보다 높은 정신적 경지에 이른 경우가 있다. 그것은  직접 경험이 아닌 간접 경험으로 익힌 공부 덕분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안온한 일상에 머무르지 말고 책이라도 많이 읽어야 한다. 책 근처에 가지 않아도 폭풍우 치는 난파선 안에서 인생을 목숨 걸고 배우는 이들을 뒤쫓아가려면 말이다. 그리고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여, 잘난 체하지 말자. 눈에 보이지 않는 인생 성적표는 초라한 점수를 받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일부러 고행을 선택하여 정진할 만큼 난 사람은 못된다. 그렇다고 인생을 꽃길 위에서만 살아온 것도 아니었다. 그저 늘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삶의 필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아이를 키우는 것도 아픈 남편을 보살피는 것도 병든 엄마를 챙기는 것도 다 같은 맥락의 인생공부다.  삶의 필터가 멋지게 작동하여  삶의 진리와 정수를 똑바로 마주할 수 있게 될 을 고대한다. 오늘 잠시라도 태양을 본 것처럼!!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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