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4년 전, '싸구려 커피'를 처음 들었을 때의 당황스러움을 기억하는가? 점심시간마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는 게 일상이던 시절이었지만, 왠지 이 노래를 들으면 달달한 봉지 커피 하나를 종이컵에 뜯어 넣고 봉지 끝으로 휘휘 저어 마셔야 할 것만 같은 유혹이 느껴졌다. 여름 장마에 끈적끈적해진 장판에 발바닥이 쩍쩍 달라붙는 단칸방 안에서 바퀴벌레를 벗 삼아 빈둥빈둥 굴러다니는 백수가 된 것만 같은 그런 칙칙하고도 우중충한 느낌. 싸구려 감상을 자극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애처로운 분위기가 짙게 풍기는 이 노래에 사람들은 열광했었다. 뽀송뽀송한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어 하는 나의 허영 가득한 얼굴에 찬물 한 잔을 훅 끼얹는 듯한, '리얼리즘'의 극치를 뽐내는 노래였다. '싸구려 커피'와 '장기하' 둘 다 그랬다. 낯선 듯 친숙한, 아름답지는 않지만 날카롭게 정곡을 찔러대는 존재. 그렇게 사람들 이면의 솔직한 감성을 건드린 '장기하와 얼굴들'은 오랫동안 그만의 독특한 개성을 지닌 노래로 우리 곁에 있었다. 대중 가수라는 이름으로.
그런 장기하가 '장기하와 얼굴들'을 십 년 만에 그만두고, 존재의 이유와도 같던 음악을 멈춘 채 1년 동안 한 일이 있으니 바로 책을 쓰는 일이었다. 그가 쓴 생애 최초의 산문집 제목은 '상관없는 거 아닌가?'이다. 나는 모든 음악인들 중 싱어송라이터를 가장 숭배한다.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싱어송라이터가 되어 살아보고 싶을 정도이다. 장기하도 김윤아도 아이유도 그런 면에서 내겐 최고의 예술가들이다. 장기하는 이미 자신의 음악을 통해 우리말을 다루는 능수능란한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가 쓴 산문 역시 술술 잘 읽힌다. 소소한 일상과 그에 담긴 그만의 가치관이나 삶에 대한 시각이 잘 드러나 있다. 누가 읽더라도 충분히 공감할 만한, 평범하면서도 조금은 유쾌한 내용의 산문집이었다.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상관없는 거 아닌가?'라는 주제를 관통하는 여러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책 읽는 걸 좋아하지만 이상하게 읽고 나면 제대로 기억나지도 않고, 누군가에게 내용을 전달해 주지도 못한다는 장기하의 말에 큰 동질감을 느꼈다. 나 역시 책의 내용을 완전히 새까맣게 잊어버리니 누군가에게 전달하라고 하면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밀려오곤 했다. 그것이처음 블로그에 리뷰를 쓰기 시작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저러나 '상관없는 거 아닌가?' 책을 잘근잘근 씹어 먹듯 읽는 사람이 있는 반면, 술술 읽고 한두 문장도 기억을 못 하거나 그냥 책의 느낌만 기억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아무러하든 '상관없는 거 아닌가?' 독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왈가왈부하는 소리에 휘둘리느니 읽고 싶은 책 내 맘대로 실컷 읽기나하는 게 낫지 않은가?
나는 이 책의 제목이 무척이나 통쾌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늘 무엇인가에 신경 쓰고 상관하면서 사는 삶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상관'이라는 단어는 무심함의 정 반대편에 서 있는 것만 같다. 나는 세심함이라는 감투를 쓰기 위해 오만 가지 일들에 서로 얽혀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감정과 생각의 연결 고리들을 일일이 파악하느라애쓰곤 한다. 그런 노력들이 참으로 피곤하고 무용하게 느껴질 때도많다. '상관없는 거 아닌가?'라는 말 한마디에 담겨 있는 장기하의 자유가 내심 부러웠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장기하의 자유를 시샘하면서 내게도 있을 자유의 여지를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그가 유명 연예인이라서 누리지 못하는 자유와 감당해야 할 '상관'들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기만의 삶을 여유롭게 꾸려나가며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선 맘껏 자유롭게 살고 있다. '상관없는 거 아닌가?'라고 당당하게 외치면서 말이다. 나 역시 삶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와 감당해야 할 '상관'들을 떠올려 본다. 유명인도 아닌 내가 뭐 그리 신경 쓰고 상관하며 살았나 싶다. 상관없는 일에는 되도록 상관하지 않으면서 그저 나답게 살아가고 싶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들에 대해 써보려 한다. 나를 괴롭혀온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들.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해서 간단히 극복하거나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 같은 것은 나는 모른다. 뾰족한 수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마치 한 단어를 반복해서 되뇌면 그 의미가 불확실해지는 기분이 들듯이,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들을 죄다 끌어내 써보는 것만으로도 그것들의 힘이 좀 약해지지 않을까 하는 정도의 기대는 하고 있다.
출처 상관없는 거 아닌가? , 장기하
현재의 내가 가장 민감하게 상관하고 있는 것은, 달리 말해 나를 가장 괴롭히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진로 문제일 것이다. 그간 여러 번 직업을 바꿔왔지만 이제 오십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또다시 새롭게 도전한다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한 고민이 있다. 그것도 두 번째 공무원 생활을 청산하려는 나를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볼 것인가? 가까이에 있는 부모님과 남편, 자식에게조차도 눈치가 보인다. 작가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하지만, 내가 이 나이에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할 대단한 작가가 될 것도 아니고 애송이 초보 작가에 간신히 입적만 해도 다행일 것이다. 그럼에도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싶은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 괴로움의 대부분은 타인의 눈에 신경 쓰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평가와 비판이 미리부터 겁이 나는 것이다. 처음 교사를 그만둘 때 나는 그 어떤 것도 상관하지 않았다. 오로지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내린 선택이었다. 그리고 이만큼 세월이 흘렀고 나는 나이 들었다. 나이 듦이란 상관없는 일에도 지나치게 상관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일까? 씁쓸한 일이다. 물론 젊을 때보다 여생이 많이 남아 있지 않기에 선택의 기로에서 좀 더 신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자꾸만 주눅이 드는 까닭은 아무래도 상관하지 않아도 될 일들에 상관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장기하의 나이도 이제 40대 중반은 되었다. 끝없이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도전하며 살아온 사람은 이렇게 당당하게 '상관없는 거 아닌가?'라고 말할 수 있나 보다. 물론 결혼을 하고 아이도 있는 나와는 동일시할 수 없는 자유인의 처지이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휴직 기간 동안 내 삶에서 정말로 상관있는 일들과 상관없는 일들을 구분하는 지혜를 길러 보려고 한다. 물론제 아무리 최선의 선택을 한다 해도 누군가의 눈엔 한없이어리석어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럼 뭐어떤가, '상관없는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