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라는 로망스
유키 구라모토의 '로망스'와 순백의 '너'
이른 아침,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는 길.
오늘은 아이가 문득 차에 놓여 있던 CD 한 장을 들고 물어본다.
"엄마, 이건 어떻게 끼우는 거야?"
CD가 생소한 아들은 앞과 뒤 어느 방향으로 넣어야 하는지 모르는 모양이다.
"그건 투명한 바닥이 아래로 가게 해서 입구와 수평을 맞춰 반듯하게 넣으면 돼."
하면서 CD를 보니.....
유키 구라모토의 오래전 음반이다.
'로망스'
집중해서 CD를 꽂는 아들
이내 차 안 가득 퍼져 나오는 유키 구라모토의 피아노 선율.....
우리 집은 도시의 외곽에 있기 때문에
아이의 초등학교로 가는 길은 차로 20여 분 정도가 걸린다.
평소엔 차 속에서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데
오늘따라 아이는 말 한마디 없이 고요하다.
곁눈으로 흘깃 본 아이는
외투에 두 손을 꼭 집어넣은 채
무얼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하지만 한껏 진지한 표정이다.
차 안에는 유키 구라모토의 피아노 선율이 울려 퍼지고
차창 밖으로 달음질치는 산과 들 곳곳에 음악의 잔해가 흩뿌려질 때....
나는 어느새 2000년대의 그 어디쯤을 헤매고 있다.
20대의 나는 이 음악을 들으며 걷고 울다 가끔은 주저앉곤 했었지.
나는 울컥 눈가부터 젖는다.
그 감정의 명확한 형체를 말로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슬프지 않아도 눈물은 나는 법이니까.
나는 아이에게 보일까 두려워 눈물을 거두고 물었다.
"너는 이 음악이 좋니? 왜 좋은 거야?"
"엄마는?"
"응, 좋아. 엄마는 좋으니까 이 음반을 이렇게 오래 간직하면서 듣고 또 듣지."
"응, 그래서 나도... 좋아."
·········
나는 학교에 도착해 아이와 헤어질 때까지
아무 말도 더는 할 수 없었다.
가만히 아이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었을 뿐이다.
8살짜리 너에게
이 음악이 어떤 감흥이 있을 것인가.
엄마를 위한
아니면 엄마와 함께 하기 위한
너의 작지만 간절한 바람의 한 가닥에 닿자마자
나는 속절없이 부스러지고 만다.
'너'라는 로망스 앞에서...
남아있던 지난 어둠의 흔적들까지도
말끔히 지워내고야 마는 '너'라는
순백의 로망스
오늘 유키 구라모토의 '로망스'는
네가 되어 내린다.
하 얗 게.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