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라는 로망스

유키 구라모토의 '로망스'와 순백의 '너'

by 소위 김하진


이른 아침,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는 길.

오늘은 아이가 문득 차에 놓여 있던 CD 한 장을 들고 물어본다.


"엄마, 이건 어떻게 끼우는 거야?"


CD가 생소한 아들은 앞과 뒤 어느 방향으로 넣어야 하는지 모르는 모양이다.


"그건 투명한 바닥이 아래로 가게 해서 입구와 수평을 맞춰 반듯하게 넣으면 돼."


하면서 CD를 보니.....

유키 구라모토의 오래전 음반이다.


'로망스'


집중해서 CD를 꽂는 아들

이내 차 안 가득 퍼져 나오는 유키 구라모토의 피아노 선율.....


https://youtu.be/6Bg-Hpe41sM


우리 집은 도시의 외곽에 있기 때문에

아이의 초등학교로 가는 길은 차로 20여 분 정도가 걸린다.

평소엔 차 속에서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데

오늘따라 아이는 말 한마디 없이 고요하다.


곁눈으로 흘깃 본 아이는

외투에 두 손을 꼭 집어넣은 채

무얼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하지만 한껏 진지한 표정이다.

차 안에는 유키 구라모토의 피아노 선율이 울려 퍼지고

차창 밖으로 달음질치는 산과 들 곳곳에 음악의 잔해가 흩뿌려질 때....

나는 어느새 2000년대의 그 어디쯤을 헤매고 있다.

20대의 나는 이 음악을 들으며 걷고 울다 가끔은 주저앉곤 했었지.

나는 울컥 눈가부터 젖는다.

그 감정의 명확한 형체를 말로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슬프지 않아도 눈물은 나는 법이니까.


나는 아이에게 보일까 두려워 눈물을 거두고 물었다.


"너는 이 음악이 좋니? 왜 좋은 거야?"

"엄마는?"

"응, 좋아. 엄마는 좋으니까 이 음반을 이렇게 오래 간직하면서 듣고 또 듣지."

"응, 그래서 나도... 좋아."


·········


나는 학교에 도착해 아이와 헤어질 때까지

아무 말도 더는 할 수 없었다.

가만히 아이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었을 뿐이다.

8살짜리 너에게

이 음악이 어떤 감흥이 있을 것인가.


엄마를 위한

아니면 엄마와 함께 하기 위한

너의 작지만 간절한 바람의 한 가닥에 닿자마자

나는 속절없이 부스러지고 만다.


'너'라는 로망스 앞에서...


남아있던 지난 어둠의 흔적들까지도

말끔히 지워내고야 마는 '너'라는

순백의 로망스


오늘 유키 구라모토의 '로망스'는

네가 되어 내린다.

하 얗 게.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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