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혼했습니다.

#31

by Liz


바쁜 업무 중에 지한이 아빠에게 메시지가 온다.


'이번 주 지한이 보러 들어가는데 토요일 픽업을 금요일로 바꾸려고 해.

일정 맞춰줘.'


'금요일은 우리도 약속이 있어.

기존 대로 토요일에 봐야 할 거 같으니 참고해 줘.'


'무슨 약속?'


'선약이야. 기존 일정대로 부탁할게.'


'그럼 내가 중간에 지한이 하원시키고 잠시 놀아줄게.

퇴근하면서 지한이 데리고 가.'


'아니 지한이 당신이랑 헤어지는 거 힘들어하는 거 알잖아.

다음 일정에 지장 있으니 그냥 토요일에 보는 걸로 하자.'


'왜 내가 지한이 보는 걸 방해해?

나도 지한이 볼 권리가 있어.'


'그래 그 권리 누가 없대?

다음 일정에 지장이 있으니 이번에는 그냥 원래대로 하자는 거잖아.'


'아니 왜 협조 안 하고 막냐고? 나와 지한이 면접교섭이잖아?


‘막는 게 아니라 지한이가 당신이랑 떨어지는 거 힘들어하잖아. 회사 로비에서 그런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일 수가 없잖아.

그리고 지한이 당신이랑 헤어지고 나면 한참을 소리 지르고 운단 말이야.’


‘그럼 다른 곳으로 픽업 와.

나는 지한이 볼 거야.‘


지한이 아빠와의 도돌이표인 대화가 시작되었다. 대화라고 할 수도 없다. 지긋지긋하게 본인만 아는 이 사람. 바람은 본인이 펴놓고 본인이 힘들다며 해외파견을 신청해서 떠난 사람이다. 본인 스스로 지한이를 자주 볼 기회를 버리고 떠난 사람. 회사에서 시작된 들끓는 욕망의 감정을 더럽게 배출하며 가정을 버린 사람. 지한이 아빠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사람. 이 사람은 나에게는 그런 사람이다. 사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도 모자란 사람이다. 지한이 아빠이기에 거지 같은 소통을 하고 있을 뿐 내게는 너무나도 쓰레기 같은 사람.


매일매일 그 사실에 속 아팠던 나날들.

열불이 나게 억울했던 그 수많은 밤들.

그리고 우리 지한이가 잃게 된 것들에 대한 절망 같은 것들.


그런 힘든 것들이 이 사람과 소통을 할 때면 내게 다시 다가온다.


이미 이혼한 사실을 애써 평온하게 받아들이려고 하지만 이 사람은 너무 상식밖이다. 애초에 상식적인 생각을 못 하는 인간이니 그런 짓을 저질렀겠지만 말이다.


당신이 과연 알기나 할까. 우리 지한이가 잃게 된 것 말이다.


아빠의 끝없는 사랑.

아빠와 같이 보내는 시간.

아빠와 함께 잠드는 시간.


그 말로 담을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왜 우리 집은 남들과 다른가 하는, 그 잘 모르겠다는 지한이의 눈동자를 당신이 알까.


그 혼란의 눈동자 말이다.


친구들의 엄마 아빠가 둘이서 함께 어린이집으로 하원을 하러 올 때면 자리에 우두커니 가만히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지한이의 그 멍한 눈을 당신이 알까.


그러면서도 가장 사랑하는 엄마에게 차마 물어보지 못하는 그 말 말이다. 말하지 않아도 나는 너무나 잘 알 것 같은 그 말. 내 귓속으로 쉴 틈 없이 쳐들어 오는 그 공포의 그 말.


'엄마, 우린 왜 아빠랑 같이 안 살아?'


지한아빠.


아이가 모를 것 같니.

아이가 느끼지 못할 것 같니.

이혼이란 단어와 그 뜻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 집의 모양은 친구들 집과는 다르다는 걸 말이야.


그 가정의 다름을 우리 지한이가 눈치채지 못할까 과연? 당신은 그럴 거라고 생각해?


나는 지한이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

내가 아빠를 지한이한테 뺏어버린 것 같아서 말이야.

내가 그 기회를 내 손으로 녹여버린 것 같아서 말이야.


지한이가 그걸 손에 쥘 수도 없게 내가 그렇게 한 거야 내가. 아니 혹시 내가 참았으면 됐을까. 내가 그냥 나 혼자 죽겠다고 견뎌내 버렸으면 됐을까. 그랬다면 우리가 행복했을까. 우리가 이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을까.


제발 평생 속죄하고 살아줘.

당신의 행동이 우리 지한에게 어떤 절망을 주게 만들었는지 말이야.

우리 지한이가 무엇을 잃었는지 말이야. 당신 때문에 당신의 그 욕망 때문에.


그러니 제발 나 좀 놔줘.

나를 건드리지 말아 줘.


나도 죽을 듯한 책임감으로 내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잖아. 지한이에게 아빠를 뺏어버린 죄책감에 나도 매일매일을 소름 돋게 벌 받고 있잖아.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