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외과 여섯번째 진료 : 항암 패스

2021년 6월 1일.

by 강진경

암 환자에게 있어서 어쩌면 가장 두려운 것은 항암 치료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암에 걸리기 전에는 정말 어리석게도 몸에 있는 혹을 떼어내면 암이 치료되는 줄 알았다. 항암 치료는 수술이 불가능한 말기 환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인 줄 알았으니.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때 수술 후 항암 치료를 해야 할 수도 있다는 유방외과 의사의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수술하면 암이 없어지는 게 아니에요?"


암 환자가 되고나서야 그게 얼마나 단순한 생각인지 알게 되었다. 암 세포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종양을 떼어내더라도 주변에 암이 존재할 수 있고, 언제든 전이와 재발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게 암이 무서운 이유이다. 통상 수술이 최후의 선택인 것과 달리, 유방암에 있어서 수술은 기본이요, 시작인 셈이고 항암 치료라는 무시무시한 산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나는 항암치료를 안할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수백만원에 달하는 유전자 검사를 진행했고, 오늘이 드디어 그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다.


"저위험군으로 나왔어요. 방사선 치료 일정 잡아드릴게요."


주치의의 말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저위험군이란 유전자 검사를 통해 암의 재발 가능성을 가늠했을 때 항암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낮은 위험군을 말한다. 엄밀히 말하면 항암 치료를 했을 때의 효과보다 항암 치료가 주는 부작용이 더 크므로 굳이 항암 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항암 치료는 표적 치료와 달리 암 세포 외의 정상 세포도 공격하므로 신중을 기해야 한다.


"항암 치료를 정말 안해도 되나요? 혹시 환자가 원하면 치료하기도 하나요?"


나의 질문에 주치의는

"아뇨. 내 마음대로 할 거에요." 라고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 어떤 대답보다 훌륭한 대답이었다. 만일 나에게 선택권을 주었다면 나는 엄청나게 고민을 했을 것이다. '정말 항암 치료를 안해도 되는 걸까'하는 불안감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항암 패스라는 성적표를 받으니 그 동안의 걱정과 두려움이 절반은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진단 받았을 때도 울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병실 문을 나오는 순간 눈물이 줄줄 흘렀다. 암을 진단받고 씩씩한 척, 괜찮은 척 했지만 사실 내가 정말 항암 치료를 이겨낼 수 있을까 두려웠나 보다. 입원하기 전 날 ,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귀밑가지 싹둑 자르면서 사실은 미용실 원장님에게 머리를 더 짧게 잘라달라고 부탁했었다. 2기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항암 치료를 할 것이라 생각했고 항암 치료의 대표적인 부작용인 탈모를 미리 염두해 둔 선택이었다. 그런데 막상 항암 치료를 안해도 된다고 하니 기분이 얼떨떨하고 가슴이 먹먹했다.


간호사가 2주 뒤 산부인과 진료와 복약상담 스케줄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16일 뒤, 방사선 치료를 위한 방사선과 진료가 잡혔다. 한 달 정도 방사선 치료가 예정되어 있었다. 자세한 방사선 일정은 방사선과 교수님과 면담 후 결정된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 최소 5년, 길게는 10년 동안 항호르몬 치료 요법을 하기로 했다. 쉽게 말하면 약물로 호르몬을 차단하여 암의 먹이를 차단시키는 것이다. '타목시펜'과 '베라실'이라는 약물을 매일 같은 시간 복용하고, 3개월에 1번은 '졸라덱스'라는 배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와야했다. 호르몬 양성 유방암 환자에게 너무나 유명한 '타목시펜', 그리고 이름처럼 졸라(?) 아프기로 유명하다는 '졸라덱스', '타목시펜'의 부작용으로 혈전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베라실'까지. 오늘부터 약국에서 처방약을 구입하여 복용하고, 앞으로 6개월에 1번씩 정기 검진을 받으며 추적 관찰을 하는 것으로 '유방암'의 치료 스케줄이 일단락되었다.


그 동안 향후 치료 일정을 몰라 얼마나 답답했던가. 뿌옇게 깔린 안개가 조금씩 걷히는 기분이었다. 방사선치료와 항호르몬 치료에도 부작용이 따르겠지만 항암 치료의 부작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방사선 치료를 준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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