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술은 1차 수술보다 간단하여 낮 병동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낮 병동은 수술 당일 오전에 입원했다가 반나절이 지난 후 다시 퇴원하는 시스템이었다. 1차 수술이 암 센터 내의 수술실에서 이뤄진 것과 달리 낮 병동의 수술실은 암 환자뿐 아니라 갖가지 질병을 가진 환자들이 한데 뒤섞여 수술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소은이와 같은 어린아이도 있었다. 수술 전 피를 뽑기 위해 주사 바늘을 꽂는데 남자아이가 엉엉 큰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아니 비명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그 장면을 보고 있으니 그 아픔을 대신해줄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찢어질까 싶어 애처로웠다. 그리고 소은이가 아픈 게 아니라 내가 아픈 게 차라리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소은이가 태어나고 7개월쯤 되었을 무렵, 급성 신우신염으로 대학병원에 입원한 일이 있었다. 급성 신우신염인 걸 모르고 동네 소아과에서 계속 코감기 치료만 하며 항생제를 쓰지 않았다. 아이는 하루 10회 이상 설사를 하고 온 몸에 열이 펄펄 나기 시작했다. 소아과에서는 같은 처방만 반복하였고, 남편과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으로 좀 더 큰 종합병원으로 아이를 데려갔다. 의사는 급성 인두염 및 급성 위장염으로 입원해서 치료할 것을 권유했다. 병실을 배정받고, 환자복까지 갈아입혔지만 담당의가 자리를 비워 정밀 검사나 치료는 내일부터 들어간다고 했다. 우리는 직감적으로 이 병원에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를 안고 뛰쳐나와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아이의 열은 40도가 넘었고, 결국 신우신염을 진단받았다. 아이는 감기가 아니라 요로감염이었던 것이다. 초음파 결과 고열로 인해 왼쪽 신장이 부어 경미한 수신증이라는 소견을 듣고 얼마나 자책을 했는지 모른다. 신우신염에 한 번 걸렸다고 해서 신장이 손상되는 건 아니라지만 나는 아이의 신장에 문제가 생겼을까 봐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다. 바로 그 분야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교수를 찾아 대학병원을 예약하고, 여러 곳에 이메일을 보내 상담을 받았다. 다행히 한 번의 요로감염으로 끝이 났지만, 혹여나 재발할까 그 후로 몇 달을 마음고생하며 아가들 수신증 인터넷 카페에서 살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 2박 3일 대학병원에 입원했는데 그 기간이 정말 지옥과도 같았다. 아이가 너무 어려 엑스레이 하나를 찍는 것도 힘이 들었다. 어른에게는 쉬운 검사도 소은이에게는 힘이 들었다. 고사리 같은 손등에 주삿바늘을 꽂을 때 아이는 정말 죽을 듯이 울었다. 온종일 주사를 맞느라 혈관이 터져 다시 주삿바늘을 꽂아야 할 때 나는 차마 그 광경을 보지 못하고 흐느껴 울었다.
아이를 키워본 부모는 아마 한 두 번은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느낄 것이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아파야 한다면 그게 차라리 나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암을 치료할 수 있다면 그깟 주사 바늘 열 개도 꽂을 수 있는 강인한 엄마니까!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병상에 누워 남편과 인사를 나누었다. 수술을 한 번 해본 것도 큰 경험이라고 처음보다는 마음이 더 안정되었다. 처음 수술실의 분위기가 차갑고 무거웠던 것과 달리, 이곳 수술실의 분위기는 한결 가볍고 편안했다. 간호사들끼리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수술대 위의 그 차가운 촉감은 여전했다. 벽에 걸려있는 커다란 시계를 바라보며 두 번 다시는 이곳에 눕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지난번 수술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주치의는 보이지 않았다.
"S교수님이 수술하시는 거 맞죠?"
불안한 마음에 슬며시 질문을 던지자 곧 오실 거라는 대답과 함께 마취에 들어갔다. 그리고 기억이 없다. 나와서도 S교수님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간호사도, 의사도 그 누구도 수술이 어떻게 끝났다고는 얘기해주지 않았다. 드라마에서 수술이 끝나고 의사가 수술실을 나와 "수술 잘 되었습니다."라고 보호자에게 얘기하는 장면은 현실과는 많이 달랐다.
회복실로 옮겨져 금식 상태를 유지하며 반나절을 보낸 것 같다. 한 번 절개한 곳을 또다시 절개하면 더 아프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예전처럼 통증이 심하지는 않았다. 그럭저럭 참을 만했다. 수술이 끝나고 열심히 운동하며 근육을 회복시켰던 게 억울하긴 했지만 처음처럼 많이 아프지 않은 거에 위안을 삼았다. 간호사는 일주일 뒤로 진료 예약을 잡아주었다. 이제 수술이 끝났으니 다음 진료 때까지 몸을 회복시키고 과연 항암치료를 하게 될 것인지 마음의 준비를 할 일만 남았다.
(photo by olga_kononenko on up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