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수술을 앞두고 잠이 오지 않는다. 오전 11시에 기다리던 문자가 날아왔다. 1시까지 병원에 와서 입원수속을 밟으라는 내용이었다. 어제부터 오늘 아침까지 내내 짐을 싸느라 분주했다. 입원 준비보다 더 힘들었던 건 소은이의 짐을 챙기는 일이었다. 오늘부터 일주일 간, 친정에 소은이를 맡기기로 했다. 아이가 태어나 처음으로 부모와 떨어져있는 시간.
다행히 소은이는 "엄마, 병원 잘 다녀와."라고 쿨하게 인사를 해주었다. 놀랄만큼 울지도, 찡찡대지도 않고, 그렇게 엄마를 보내주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암진단을 받고, 이보다 더 최악은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진단을 받던 날, 아빠는 회사에 확진자가 발생하여 밀접접촉자가 되어 자가 격리가 되었다. 그렇게 강제로 2주간 떨어져있다보니 진단받고 부모님의 얼굴을 뵌 것도 오늘이 처음이었다. 엄마는 울음을 터트릴것 같은 얼굴이셨지만 나는 감정에 끈을 놓으면 엉엉 목놓아 울어버릴 것만 같아 아이를 부모님께 맡기고 서둘러 집을 빠져나왔다.
사건은 주차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입원수속을 해야 하는데 남편이 주차할 곳을 찾다 옆에 주차된 차의 범퍼를 긁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다 결국 차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어 차주를 만나 상황을 설명했다. 수술을 앞두고 하필 이런 일이 발생할까. 속상한 마음을 추스리기 어려웠다. 사람의 일은 정말 한치 앞을 내다볼 수가 없구나. 암 수술을 앞두고 교통사고라니. 보험회사를 불러 사고 처리를 하고, 마무리를 짓고 병실로 돌아온 남편에게 위로의 말을 건냈다.
"많이 놀랐지? 나도 아까 화내서 미안해. 우리 액땜했다고 생각하자."
수술을 하기 전 액땜으로 접촉사고가 일어난 거라고 말했지만 문득 암에 걸린 것이 예기치 못하게 찾아온 교통사고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통사고가 날 것을 아무도 미리 예측하지 못하는 것처럼, 인생을 살면서 자기가 암에 걸릴 거라고 예측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안젤리나 졸리처럼 자신이 암에 걸릴 가능성을 미리 알고 적극적 처치를 하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암을 진단받는다. 주변에 암 환자가 그리 많아도, 드라마와 영화 속에 수없이 등장하는 암 환자를 보면서도 그게 자신의 일이 될 거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않으니까.
나도 마찬가지였다. 주변에 암 환자가 많은데도 그게 내 일이 되리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교통사고로 한순간에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암을 진단받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건강을 회복하는 편이 훨씬 낫지 않을까 하는 어설픈 자기 위로도 해본다. '인생'이라는 길을 걷다가 '암'이라는 교통사고를 당하더라도, 오늘처럼 정신을 가다듬고 수습을 하면 되는 것이다.
잠자기 전 내일 수술이 잘되게 해달라고 프라그의 아기 예수님 상을 꺼내두고 기도를 했다. 프라그의 아기 예수님은 임신이 어려웠던 시절, 성지순례를 다닐 때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탄생지인 솔뫼성지를 갔다가 신부님의 권유로 알게 된 아기 예수님이다. 그 때 아기 예수님의 성상을 집으로 가지고 와 매일같이 기도를 했었다. 그리고 얼마 후 기적처럼 소은이를 갖게 되었고, 소은이가 뱃속에 있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프라그의 아기 예수님께 은총의 기도를 드렸었다. 우리 부부에게 있어서는 가장 소중한 보물인 셈이다. 그런데 기도를 마치고 성상을 옮기는 남편의 손이 미끄러지며 아기 예수님상이 바닥에 떨어져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나는 정말로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축성받은 성물이 파손되면 그 축복의 효력이 사라진다는데...' 불안한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나약한지 모르겠다. 중요한건 성물보다 거기에 내려진 하느님의 축복이고, 기도하는 우리의 마음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마음이 쉽사리 편해지지가 않는다. 남편 또한 얼마나 마음이 안좋을까 생각이 들지만, 중요한 시기에 계속 실수를 반복하는 남편이 잠시 원망스러운 걸 어찌할까. 한편으로는 평소 실수도 하지 않는 남편이 얼마나 정신이 없으면 이러할까 생각하니 마음이 애틋하고 측은해진다. 환자도 힘들지만 옆에 있는 보호자는 내색도 하지 못하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겠지. 내가 느끼는 두려움과 또 다른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입밖으로 말을 할 수 없지만 혹여나 아내가 잘못될까봐, 아이의 엄마가 잘못될까봐 이 사람도 속으로는 얼마나 무섭고 두려울까. 나는 애써 마음을 추스리고 잠이 들기를 청했지만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낼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이 또한 작은 해프닝으로 끝낼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