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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월화 May 01. 2022

지금 이 순간

갑상선암의 원인


암에 걸리면 누구나 하는 생각 중에 하나는 '내가 왜 걸렸나' 하는 것이다.

갑상선암의 원인으로는 유전적 요인, 방사선 노출, 갑상선 질환의 병력, 요오드 결핍 또는 과잉, 여성호르몬 투약 및 출산력 등 많은 요인들이 제시되고 있으나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



갑상선암은 대부분 가족력과 무관하지만, 가족성 비 수질성 갑상선암과 같은 일부 갑상선암 환자에서는 가족력을 나타낸다.

방사선 조사와 갑상선암 발생에 대한 7개 연구를 종합한 분석에 의하면 15세 미만의 환자에서 두경부 방사선 조사량과 갑상선암 발생 사이에 강한 상관관계를 보였지만, 15세 이상에서는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Ron E, et, al., Thyroid cancer after exposure to external radiation: a pooled analysis of seven studies, Radiat Res 141:259-277, 1995)

방사선 조사에 의한 갑상선암은 대부분 유두암이며, 다중심성이고 림프절 전이가 흔히 동반됐다.

갑상선 질환의 병력, 요오드 섭취도 명확한 인과관계는 없다.

갑상선암이 여자에게 많기 때문에 여성호르몬 및 출산과의 인과관계도 많은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결과들은 일관되지 않게 나타났다.

결론적으로,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유가 없다는 말은, 잔인하다.

차라리 이유가 있었다면 억울하지 않았을 텐데.

잘못된 것도 없는데 왜 암 환자가 되었냔 말이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이유가 없다는 것이 나쁘지 않다.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에는 내가 의료기관 종사자이기 때문에 방사선 노출이 많아서 암에 걸렸으려나, 하고 생각하니 왠지 억울했다.

하지만 15세 이상에서 방사선 노출은 유의미한 원인이 되지 못한다는 보고들을 보니, 뭐야 역시 그것 때문이 아니었잖아, 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암의 원인이 되었다는 명목으로 나의 과거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원인이라는 것은 애초에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질병의 영역에서 뿐만이 아니라 세상 전반에서 모두가 원인을 참 궁금해한다.

서로 호감이 있는 사이에서는 내가 왜 좋아졌는지 궁금해하고,

무엇을 먹고 어디에 갈지의 선택에서도 이유를 들어봐야 하고,

사람들은 내게 왜 의사가 되었는지 묻는다.

원인이라는 것은 그다음 결정을 이어나가게 하는 발판 정도에 지나지 않아서, 시간이 흐르면 희미해진다.



우리 딸은 이제 막 28개월이 지났는데, 뭐든지 엄마가 해주는 것을 좋아한다.

남편과 셋이 깔깔거리며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


"다 먹었어요. 아가 내려갈래."


라고 하길래 아빠가 아기의자에서 꺼내 주려고 하자,


"엄마가! 엄마가!"


라고 한다.

평소에는 벌떡 일어나서 꺼내 주었는데,

그날은 나도 끊임없는 간택에 힘이 들어서 물었다.


"그런데 아빠가 꺼내 주는 거랑 엄마가 꺼내 주는 거랑 똑같잖아.

아빠가 꺼내 주면 안 돼?"


딸아이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 엄마가! 엄마가!"


"왜 엄마가 꺼내 줘야 해?

아가 생각을 이야기해봐."


했더니 붉어진 얼굴에서 눈물이 뚝뚝뚝 떨어진다.

분명 처음에는 이유가 있었을 텐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유는 기억나지 않고 엄마가 안아주지 않는다는 사실만 남은 것이다.

결국 내가 꺼내 주었다.



이유 따위, 뭐가 그리 중요하랴.

결국 모든 검사와 수술을 이겨내고 지금을 얻었는데.

궁금해하지도, 원망하지도 않을 것이다.

지금  순간만이 제일 중요한 우리 아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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