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월화 Mar 10. 2022

암환자에게 하면 안 되는 말들

갑상선암의 예후


글을 읽다가 즐겁다고 느끼는 순간은, 나 대신에 속 시원하게 누군가를 때려주는 듯한 사이다 구절을 발견했을 때가 아닐까?

오늘은 암환자를 대표해서(?) 암환자에게 하면 안 되는 말, 금기어를 몇 가지 선정했다.

살면서 암환자를 만나게 되는 일이 필연적으로 있을 테니, 많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다.

언급된 말들을 실제 나에게 한 지인분들이 있어서 글로 쓰기를 망설였는데,

앞으로 안 그러시면 되니 너무 죄책감 가지시지는 않았으면 한다.



1. 예언자 인척 금지


예시)

"그러게 내가 검사 좀 미리 받으라고 했잖아."

"그러게 밥 좀 잘 먹으라고 했잖아."

"그러게 운동 좀 하라고 했잖아."


금기어 선정 이유)

그럼 지금 내가 그 말을 안 들어서 암에 걸렸다는 건가?

그 말을 안 들은 나는 암에 걸려도 싼가?

그래, 백번 양보해서 그 말이 맞다한들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이미 암환자는 대부분 진단받은 순간 검사 잘 받고 밥 잘 먹고 운동 잘하고 있다.

환자의 마음만 무겁게 하는 말들일뿐이다.



2. 나도 주인공 되기 금지


예시)

"어쩐지 나도 몸이 여기저기가 안 좋아..."

"나도 전에 대장에 종양이 있어서 떼 내었는데, 암인 줄 알고 검사를 받았었는데 그때 내 기분이..."

"우리 엄마도 암으로 죽었는데..."


금기어 선정 이유)

지금 몸 어디가 안 좋든 암 진단받을 뻔했든 그런 얘기가 환자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상대는 현재 사망 가능성이 있는 암환자다.

개미 콧구멍만 한 질병(죄송합니다...) 가지고 와서 불행 배틀할 생각 하지 않길 바란다.



3. 너 안 죽는다 엄살 피지 마 금지


예시)

"그래도 착한 암이라는데..."

"그래도 1기라..."

"그래도 생존율이..."


금기어 선정 이유)

말 나온 김에 갑상선암의 예후에 대해 언급해 보려고 한다.

갑상선암의 생존율은 암세포의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의료기술을 발달에 따라 최근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미국 국립암연구소(National Cancer Institute)의 보고에 의하면(2005년) 갑상선암 전체의 5년 생존율은 97.3%, 10년 생존율은 95.2%, 20년 생존율은 93.4%로 높은 편이고, 우리나라는 이보다 더 높다.

하지만 내가 암 환자가 되면 생각이 달라진다.

내가 5년 안에 죽을 확률이 2.7%, 10년 안에 죽을 확률이 4.8%, 20년 안에 죽을 확률이 6.4%가 된다.

확률 0.0097%짜리 암도 걸렸는데, 사망률 2.7~6.4% 안에 내가 안 들어가리란 법 있나?

이러다 나 죽으면 그 말 무를 수 없으니 그런 말 말길 바란다.






사실 이런 식으로 쓰다 보면 끝도 없으니 암환자에게 해도 되는 말을 정리하는 게 더 편할 듯하다.

금기어에 해당하는 말을 한 번도 안 한 사람은 주변에 거의 없다.

그런데 정말 금기어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의외의(?) 인물이 있으니, 내 남편이다.



남편은 평소에 눈치가 없고 말을 툭툭 뱉어서 나에게 지적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남편은 내가 조직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허."


라고 외마디를 내뱉자 매우 당황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좀 지나서 내가 울자, 애초에 왜 울지 않았는지 이상했다고 한다.

내가 울면서 일을 줄이겠다고 하자, 일을 줄이라고 한다.

내가 억울하고 짜증 난다고 하자, 당연히 억울하고 짜증 나겠다고 한다.

남편은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는데 내가 하는 모든 말이 구구절절 옳다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한다.



나도 내 말이 정답이 아닌 것을 안다.

어떻게 내 감정이 다 맞고 내 결정이 다 옳을 수가 있나.

하지만 이때나마, 내가 다 바르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내 인생도 바르게 나아갈 것만 같았다.



이전 17화 왼손잡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