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하루 중에 빠질 수 없는…

by 엘레니

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소중함을 느낀다.

커피에 관한 글이 이미 많은데 굳이 내가 하나 더 보태야 하나 싶긴 하다. 하지만 그만큼 커피가 많은 사람들에게(이 중에는 나를 포함하여) 사랑받는다는 의미이지 싶다. 사실 나는 커피의 향과 맛을 수준 있게 음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어쩌면 나에게는 커피 자체가 특별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커피가 나에게 주는 시간은 그러하다. 입구가 넓은 머그잔에 쪼르륵 내려지는 따끈하고 진한 갈색의 물. 그 안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과 함께 코 끝에 닿는 향긋한 커피 냄새. 그 순간 나에게는 여유의 향기가 느껴진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릴 하루를 준비하던 출근길에, 일에 육아에 치여 정신없이 점심을 해치우고 나서, 퇴근 후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저녁밥을 짓기 위해 쌀을 씻는 싱크대 앞에서,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고 억지로 몸을 일으킨 주말의 늦은 아침 그리고 일주일 동안 밀린 빨래와 청소로 혼돈 그 자체인 집안에서..


어디서든 언제든 향긋한 커피가 내려지면 잠시 신데렐라의 호박이 마차로 변하고 나를 위한 유리구두가 준비되는 마법의 시간이 다가온다. 컵에 커피가 차오르는 것을 가만히 기다렸다가 그 컵을 들어 올리는 그 순간부터 잠시 나는 멋있어진다.


바쁘고 정신없던 출근길도 커피 한 잔을 손에 드는 순간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고, 점심은 급하게 욱여넣었어도 커피를 조금씩 홀짝이며 의자에 앉으면 세상 여유를 다 가진 듯하다. 쌀을 씻고 빨래와 청소를 하던 억척스러운 아줌마도 커피 한 모금이면 우아하고 분위기 있는 귀부인이 되고, 부스스한 머리에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늦은 주말 아침을 맞이하는 허름한 모습이어도 무심하게 커피머신에 물을 채운 후 커피캡슐을 넣고 있는 나에게서는 왠지 모를 힙함이 느껴진다.


물론 나의 마법 유리구두는 커피를 다 마셔갈 때쯤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현실로 다시 나오면 커피 한 잔과 함께하는 그 짧은 시간이 그다지 실속이 없는 듯 보이기도 한다. 이런 것들은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영향이 가지 않는 나 혼자만의 느낌 같은 것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뭐 어떠랴. 그 순간 나는 작게 반짝인다. 그러니 조금 오글거리긴 하지만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는 허영 한 꼬집 정도는 그날의 커피에 첨가해 봐도 되지 않을까.


누군가에게는 커피가 단순히 카페인이 든 음료 정도로만 여겨질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게 그들에게는 더 효율적이고 필요한 의미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에게 커피는 볼품없던 어떤 순간에, 숨 쉴 틈조차 찾지 못한 어떤 하루에 슬며시 불어오는 기분 좋은 바람 같은 것이다. 별 것 없지만 왠지 기분 좋은 그런 것 말이다. 커피가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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