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살부터 늦잠을 자기 시작했을까
아기들은 이상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다시 자는 법이 없다.
백일이 조금 넘는 아기도 새벽에 눈을 떠 배 고프다고 낑낑거리고 배불리 먹여놓아도 한동안 놀아주어야 다시 잔다. 돌이 안 된 아기도 잠에서 깨면 옆에서 자고 있는 엄마 얼굴을 사정없이 뭉개며 기어 다니고 엄마는 난데없이 머리끄덩이를 잡히며 일어나게 된다. 서너 살이 되어서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장난감통으로 달려가 이것저것 꺼내어 놀다가 이내 자고 있는 엄마 배 위에 장난감을 올려놓고 떠들거나, 책을 들고 와 자고 있는 엄마에게 읽어달라고 보챈다.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4개월 차 둘째는 학교 가는 날이면 몸을 스스로 일으키는 법이 없는 아이다. 이런 아이가 주말에는 눈을 뜨자마자 벌떡 일어나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뭐가 신나는지 '호잇! 야앗~! 으하하!' 같은 소음으로 아침이라는 것을 알린다. 층간 소음이 걱정되는 엄마는 일어나면서부터 잔소리를 해야 한다.
그런데 첫째가 달라졌다. 2학년이 되면서부터인가, 어느샌가부터 주말에는 늦잠을 잔다. 학교 가는 날에는 일어나자는 말 한두 마디에 몸을 척 일으켜 식탁에 가서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아침 식사를 하는 아이다. 이런 아이가 주말에는 깨우지 않으면 10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 되어도 일어나지 않는다. 동생들이 아무리 시끄럽게 해도, 쩝쩝거리며 아침을 먹어도 꿈쩍하지 않는다. 이런 첫째를 보며 여러 생각이 든다.
나는 언제부터 늦잠을 잤을까. 아침에 일어나 소꿉놀이 장난감을, 예쁜 마론 인형을 주워 들던 나, 주말 아침마다 TV를 틀고 디즈니만화를 봤던 나는 몇 살이었나. 어느샌가 나도 주말 아침에는 이런 것들을 뒤로 미뤄놓고 실컷 잠자는 것을 택하게 되었다.
열심히 하루하루를 보낸 것에 대한 보상으로 주말에는 늦잠을 좀 자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고, 눈을 떠서 맞이하는 세상을 조금 미뤄두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가 깨어나지 않았다고 해가 늦게 뜰 리 없고, 그 시간에 안 하던 나의 최애 드라마가 갑자기 방영될 리도 없으며, 어제 먹다 남긴 피자가 사라질 리도 없다. 눈을 감고 있을 때 나를 스쳐가는 세상에 대해서는 이제 알만큼 알 나이가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며 설렘을 느끼는 시기가 인생의 중간중간 찾아오기도 한다. 새 학년으로 진급하면, 첫 직장에 출근하면, 뱃속의 아기가 세상에 나오면, 분양받은 새 아파트로 이사 가면, 원하던 동호회에 가입하면, 새 차를 구입하면, 내 식당을 차리면 등등. 하지만 대부분 3개월 정도가 지나면 이것도 일상이 되어 하루하루 피로를 적립하는 생활이 되기 쉽고 아침에 눈을 뜨면 다시 감고 늦잠을 자고 싶어 진다.
그러니 아침이 되었을 때 세상에 대한 기대감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치의 망설임 없이 이부자리를 박차며 나가는 이 시기가 가장 오래 지속되는 것은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어린 시절 그 어느 때까지라고 할 수 있는 것 같다.
아침에 눈이 떠지면 어제 가지고 놀던 장난감 먼저 생각나는 그런 나이는 언제까지일까. 오늘 아침에는 무슨 새로운 일을 벌여볼까 기대에 차서는 눈을 뜨기도 전에 벌써부터 반짝이는 그런 때는... 9살, 만 나이 8살 즈음이면 그런 때가 끝나는 걸까.
내 아이가 주말에 늦잠을 자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제 피로를 느끼는 걸까, 아니면 눈을 뜨자마자 맞이하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줄었다는 뜻일까. 어느 경우라 해도 어쩌면 어른들이 사는 세상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왠지 속이 상한다. 내가 너무 깊이 생각했을까. 아이가 늦잠을 자는 것이 속 상할 일이 맞나 싶기도 하다.
첫째는 여전히 눈을 뜨면 제법 길어진 팔과 다리로 팔딱거리고, 때로는 유치해 보이는 동생 장난감도 자기가 해보겠다며 아이다운 면모를 보란 듯이 내보이는 아이이긴 하다.
그러나 어쨌든 이 아이가 늦잠의 맛을 알아버린 것 같다.